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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공여사 Nov 21. 2019

남편이 나보고
꼰대라 한다

[불안의 진짜 이유] 꼰대 후유증이 크긴 크다

카페에서 남편과 두 시간을 버텨야 할 일이 생겼다. 논술 시험을 보러 고사장에 들어간 딸내미를 기다린다. 우리는 라테 한 잔씩을 앞에 놓고 카페 구석에서 두 시간을 보낸다. 난 책을 읽고, 남편은 음악을 듣는다. 


옆 테이블의 여학생들은 2배속으로 쉼표도 없이 말을 뱉는다. 들어도 뭔 말인지 모를 용어들을 그렇게 빠른 속도로 이해하고 반응하다니 놀랍다.


맞은편 테이블에는 세 명의 남학생들이 척추를 무너뜨리고 엉덩이를 의자 깊숙이 걸치고 핸드폰을 한다. 가끔 생각난 듯 얘기도 한다. 대화의 주제도 없고, 깊이는 물론 맥락도 없다. 수시 예비 1번 받고도 못 들어갔다는 입시 경험담부터 골목에 새로 생긴 카페까지 대화가 널을 뛴다. 두 시간 내내 그런다. 비 내리는 일요일 오후였다. 


난 작은 목소리로 남편에게 속삭였다. 

“남편! 우리 앞에 있는 남자애들 셋 말이야. 뭔 쓸데없는 소리를 저리 오래 하고 있냐? 시간 아깝게. 그 시간에 책을 읽든, 뭘 배우든 하면 좋을 텐데….”


남편은 나를 잠깐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말했다.

“그게 바로 꼰대의 사고방식이야.”


고개나 끄덕여주길 바랐던 난 따끔한 침을 맞는다. 뭐? 꼰대의 사고방식? 그럼, 내가…. 남편이 나보고 꼰.대.라.한.다 

     

저번 주에 다녀온 독서 모임에서, 30대 초반의 멤버들이 나처럼 나이 들고 싶다고 나를 추켜세웠다. 우쭐해서 올라간 어깨가 아직 꺼지기도 전인데…. 뭐라고? 내가 꼰대라고? 


기분 나쁜 티 나지 않게 얼굴을 정돈하고, 다음 얘기나 들어보고 버럭 화를 내기로 한다. 현명한 남편이 절대 헛소리를 지껄였을 리가 없으니.

“쟤들은 지금 노는 거야. 즐거운 시간 보내는 거라고. 너처럼 책 읽고, 쓸데 있는 얘기만 하면 그게 일이지. 놀이냐?”


듣고 보니 맞는 얘기다. 내가 꼰대가 아닌 척했을 뿐이다. 난 나도 모르게 자기 생각이나 가치관을 주변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꼰대가 되고 말았다. 쓸데없이 시간 보내지 말고,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써야 한다는 나의 ‘성장주도형’ 가치관을 그들에게 밀어붙인  꼴이다. 내가 한 말의 적나라한 꼰대 버전은 다음과 같다. 


요즘 젊은것들은 하는 짓이 저게 뭐냐? 아직 어린놈들이 카페에 죽치고 앉아 시간이나 죽이고 있고. 나 때는 말이야 시간 아껴가며 얼마나 성장하려고 노력했는데 말이야. 너희들 그렇게 살면 망한다.”


만약 나의 꼰대 버전을 그들이 들었다면, 그다음에 벌어질 재앙은….

“뭔 상관이에요? 미쳤나? 이 아줌마가?”


“어디서 감히,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 너 학교 어디 다녀? 이 자식들이 어디다 대고 어른에게 대들어? 내가 너 친구냐? 어른들이 말씀하시면 그냥 ‘네.’하는 거야. 어린놈이 뭘 안다고. 너 그렇게 살면 사회생활 못 한다. 부모님이 너 그렇게 하라고 가르쳤나?"

아~ 그런 일이 생기면, 난 부끄러워 지구 맨틀 깨고, 핵 파고 있을 거다.


불안하다. 왜?

불안하다내가 꼰대라 불릴까 봐. 이미 불렸다. 불안의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내가 꼰대라 불릴까 봐. 내가 꼰대인 줄도 모르고 살다 외로울까 봐.

     

‘꼰대’ 소리 안 듣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 잘 안다.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은 갖되남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다.” 

자꾸 잊어버려 탈이다. 그 ‘남’에는 남편, 자식, 부모, 친구, 동료, 낯선 사람도 모두 포함이다. ‘어떻게 이래라저래라 안 해요? 가족인데….’ 가족이니까 더욱 하면 안 된다. 


“우산 가져가라.” 말고.

“오후에 비 온다. 우산 여기 있다.”

“일찍 좀 일어나라.” 말고

“아침 9시다.”

“그놈과 사귀지 마라.” 말고

“세상에 남자는 많다.”

“엄마, 나에게 잔소리 좀 하지 마.” 말고

“엄마, 잔소리는 나의 뇌세포를 죽입니다.”라고.


명령문을 모두 평서문으로 바꿔서 말하면 관계가 훨씬 부드럽다.

감탄문으로 바꿔도 괜찮다. ‘오호~ 오후에 비 온대!’ ‘오호~ 아침 9시네!’ ‘오호~ 세상에 남자가 참 많네!’처럼. 감탄문은 듣는 상대가 쉽게 싫증을 낼 수도 있다. 가끔 사람들은 자기가 '이래라저래라'해서 상대가 이러고저러는 줄 아는데, 아니다. 그냥 때가 돼서 그러는 거다.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좀 하지 마!

“우리 아들 미치겠다. 난 3년 내내 걔 뒤통수만 보고 있어.”

영재 학교에 들어간 조카에게, 미국 사는 동생은 불만이 많다.

“뒤통수라도 보여주는 게 어디냐? 우리나라 부모들은 공부 잘하는 애들 기숙사 넣어두고 뒤통수도 못 본다.”

“그런가?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밥 차려놓고 아무리 밥 먹으라  말해도 게임하느라 안 먹는다.”

“밥만 차려놓고, 밥 차려놨다. 그렇게 말하고, 밥 먹으라고 하지 마.”

“뭐?”

“밥 먹으라는 말도 하지 말라고. 네가 말한다고 게임하다 끊고 와서 밥 먹는다고 살 되는 거 아니야. 식더라도 내비둬.”

“….”


동생에게는 이렇게 쿨한 조언을 하고, 난 '꼰대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한다. 자꾸 잊어서 탈이라니까.


이래라저래라 하는 마음에는 타인에 대한 나의 욕망, 기대, 필요가 다 들어있고, 듣는 사람도 다 느낀다.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을 자신에 대한 ‘사랑’이나 ‘관심’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정말 초긍정 자아를 가졌다. 아무리 어린아이여도, 그 나이에 걸맞은 감정도 느끼고 생각도 다 한다. ‘내가 살아보니~’ 하는 말로 아는 체, 있는 체, 깨달은 체하지 말아야 한다. 


‘뭐, 내 말이 맞으니 그렇게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명령문 아니고 평서문이다.'


꼰대 소리 한 번 듣고 나니 사람 참, 소심해진다. 

꼰대 후유증이 크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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