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불안한지 이유나 알자.
“명상을 배우러 갔는데, 첫날 선생님이 그러는 거예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서, 자기가 뭘 원하는지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고요.”
“그래서?”
“그래서 내가 뭘 원하나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게임기가 너무 사고 싶은 거예요.”
나와 대화를 나누는 A는 대졸 20대 후반 취준생이다.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자 결심하고, 큰 맘먹고 통장 털어 게임기를 샀어요. 정말 사고 싶었던 게임기를 사니 세상 다 얻은 것 같고, 날아갈 것 같더라고요. 며칠 동안 잠도 안 자고 공부도 다 던져버리고 미친 듯이 게임만 했어요.”
“좋았어?”
“너무 좋았어요. 명상하길 잘했다. 이렇게 나를 힐링시켜 주는구나. 그런데 일주일쯤 지나니까, 정신이 돌아온 거예요. 내가 뭔 짓을 했나 싶고. 통장에 잔고는 3,410원 남아있고, 난 여전히 가난한 취준생인 거예요. 그놈의 명상 수업이 날 말아먹었어요.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라고? 개떡 같은 소리 하고 앉아있네.”
A는 분에 못 이겨 씩씩댔다.
불안하다. 그 이유는?
불안하다. 왜 불안한지 이유도 모르고 있을까 봐.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왜 불안한지 이유도 모르고 있을까 봐. 직면할 용기도 못 내고 불안 속에 계속 살까 봐.
자신의 삶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불안의 씨앗이다. 그 씨앗은 햇볕도 바람도 물도 필요 없다. 혼자 순식간에 자라고, 하룻밤 사이에 숲을 이룬다.
삶의 취약한 부분이 ‘돈’이면, 쓰는 돈마다 이걸 써도 되나 신경이 쓰이고, 큰돈 들어갈 일이 생길까 조마조마하다. 취약한 부분이 인간관계이면, 꼬투리 잡혀 사이 더 나빠질까 전전긍긍한다. 취약한 부분이 ‘직장’이면, 주말에 친구 만나 술 마시고, 수영도 영어회화도 배우는데 왠지 초조하고 불안하다.
A에게 취약한 부분은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인정을 보장하는 직장이었다. 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게임만 하고 있었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지금 직장 힘들다고 때려치우고 세계여행 간다고 불안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1~2년 뒤 가진 돈 다 쓰고 돌아오면 내가 피했던 그 상황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삶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을 살펴보고, 보강할 노력을 계속해나가야 불안의 씨앗이 숲을 이루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사람이 되려면 현재의 내 모습을 기꺼이 포기해야 한다. -아인슈타인
내 삶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가치를 정하고 그 방향으로 움직여가되, 지금 자신의 몸과 마음을 계속 살피면서 조정해 나가야 한다. 내비게이션에 내가 가야 할 목적지는 찍지만, 가다 막히면 돌아가고, 길 없으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하고, 차 고장 나면 차 버리고 버스나 지하철 타고 가야 한다.
비바람 만나면 다른 사람 우산 속으로 뛰어들 수도 있고, 지치고 병들면 한 템포 쉬어갈 수도 있다. 친구나 연인을 만나 행복할 수도, 그들을 잃어 힘들 수도 있다. 그 모든 순간이 다 인생이다. 우리는 어디를 가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정한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해도, 우리가 보낸 시간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새해에는 ‘결심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어느새 내 손에는 ‘1분 영어 말하기’ 책이 들려있다. 새해부터 이러고 있는 걸 보니, 이게 내 인생의 취약한 부분인가?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는다: 한국식 토종 발음으로 버벅거리더라도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다한다. 목적지 찍었으니, 요렇게도 저렇게도 다 해보기로 한다. 요즘 놀러 다니느라 코빼기 보기도 힘든 딸내미는 예외고, 매일 얼굴 마주 보는 남편과 댕댕이 까뭉이가 또 나의 희생양이다.
남편에게는 볼 때마다 매번 이렇게 우렁차게 외친다.
“When I want to eat out, I send a text message to my husband. (외식하고 싶을 땐, 나는 남편에게 문자를 보낸다)”
영어로도 좋은 말이다.
까뭉이에게도 하루에 수십 번씩 이렇게 외친다.
“There is no food at home.(우리 집에 먹을 거 없어요.)”
까뭉이가 못 알아들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