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추천 'River'
"아직도 아무 일 안 일어난 거야?"
어둠 속에서 눈만 껌뻑이며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고 있던 나에게 남편이 슬쩍 지나가며 묻는다.
"응."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고?"
"원래 이 드라마는 뭔 일이 빵빵 터지는 내용이 아니야."
난 그사이에 스토리라도 놓칠세라 TV에 눈을 고정시키고, 남편이 더 이상 캐묻지 않길 바라며 빠르게 대꾸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핑계로 어둠 속에서 넷플릭스와 매일 만난다.
불안하다. 그 이유는?
불안하다. 내 아까운 시간 넷플릭스에 다 쓸까 봐. 불안의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내 아까운 시간 넷플릭스에 다 쓸까 봐. 그런 시간 보낸 걸 후회하게 될까 봐.
난 일상생활에서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뭘 싫어하는지는 잘 안다. 그건 웬만해서는 양보 안 한다. 영화나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1. 피 튀기는 장면 안 좋아한다.
보고 나면 후유증 남는다. 엄청 많이 죽는데, 빨간 피는 안 튀는 어벤저스 시리즈는 그래서 볼만하다.
2. 납치, 성폭행당하는 주제 안 좋아한다.
딸내미 독립을 코앞에 두고 있는 엄마인지라, 그런 것 보고 있으면 불안하다. 집 떠나보내기 전에 호신술 기능이라도 탑재해서 보내야 하나 고민된다. 뭐가 좋을까? 가라테, 무에타이, 주짓수는 너무 이국적인가? 그럼 택견이나 활쏘기, 씨름도 괜찮은데…. 몇 년 동안 추리닝에 삼선 쓰레빠만 신고 다녔던 아이에게 넓적다리에 샅바 차고 모래판에 나가라는 얘기는…. 평생 딸에게 '미움받을 용기'내지 않고는 못할 말이다.
3.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스릴러 공포 안 좋아한다.
내가 언제쯤 죽을 차례가 되나? 하는 영화는 안 본다. 고등학교 때 단체관람으로 '13일의 금요일'을 700명이 동시에 비명 질러가며 봤다. 대낮에 후들거리는 다리로 집에 겨우 들어간 후로는 그런 장르는 사양한다.
4.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미래 SF 영화도 안 좋아한다.
스타워즈나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끝까지 본 영화가 없다. 딸내미는 코로나 때문에 홀로 방에 칩거하며 해리포터 원서 읽고 영화를 한 장면씩 흡입 중이다. 내가 낳았지만 아무래도 딸내미 세대에서, 종이 변화를 겪고 있지 않나 의심스럽다.
싫은 것 다 빼고 볼 영화도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찾아보면 있다. 넷플리스 영드 '리버 River'. 강은 안 나온다. 남자 주인공 이름이 River다. 인생, 강물처럼 흘러가고, 흘러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는 상징이 들어있지 않나 과하게 추측해본다.
스웨덴계 늙은 형사 리버(River)가 16년을 함께 한 파트너 여형사 스티비(Stevie)를 잃고, 사건을 조사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이야기이다.
내가 이 영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1. 자신에게 지금 중요한 사람,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하게 한다.
주인공 리버는 죽은 파트너에게 마음을 온통 빼앗겨, 아랍계 남자 파트너로 새로 왔는데 거들떠도 안 본다. 그러다 그 파트너가 혼자 구타를 당하고 병원에 실려오자, 그 부인이 나타나 리버에게 소리친다.
"당신 맘에 들려고 매시간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데! 집까지 서류를 들고 와서 저녁 먹다 곯아떨어진다고요. 근데 당신은 말도 안 섞고 잘 쳐다보지도 않잖아요. 난 이 사람만 보여요! 내 파트너니까, 아내이고. 그러니까 제발…. 이 사람은 제게 아주 귀한 사람이에요. 중요한 사람이라고요. 아셨어요? 다음 주에 식사하러 오세요."
난 이 장면이 참 좋다. 서로에게 중요한 사람, 소중한 사람을 자신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이야기가 드라마 전체를 아우른다.
2. 갑자기 떠나버린 소중한 사람이 얼마나 그리운지 느끼게 한다.
스티비는 죽었지만 여전히 리버 옆에서 노래하고 감자칩을 먹고, 리버에게 노래하라고 부추긴다. 함께 할 때는 소중한 줄 모르다, 죽음으로 상실감을 겪을 때 우리는 알게 된다. 얼마나 그 시간이 소중했는지,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그리운지.
"갑자기 떠나버린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요. 얼마나 그리운지 말할래요. 그들이 떠난 순간 숨이 턱 막혀서 다시는 예전처럼 숨을 온전히 쉴 수도 없다고요."
3. 외로움이 뭔지 느끼게 한다.
"고립감이 뭔지 잘 알잖아요. 날 끼워 맞추려고 부단히 애쓰는 기분이요. 그냥 나답기가 얼마나 힘들지 잘 알죠...우린 홀로 태어나서 홀로 죽는대요. 오로지 사랑과 우정을 통해서 우린 혼자가 아니라는 순간의 환상을 만들 수 있죠."
리버는 친구가 한 명도 없고, 단 한 명의 친구인 스티비를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조금만 마음을 열고 주위를 둘러봤더라면 친구들이 보였을 게다. 여자 상관도, 새롭게 부임한 파트너도, 정신과 상담 의사도 모두 리버의 친구였다.
4. 너무 늦기 전에 춤추고 노래하고 사랑하라는 말을 내 귀에 꽂아놓는다.
리버가 스티비를 안고 이렇게 말한다.
"I love you. I love you more than life. 내 목숨보다 널 사랑해."
"Sing! you nutter, sing 노래해요. 괴짜 양반. 어서요."
한 번도 스티비 앞에서 노래하고 춤춘 적 없던 리버가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다.
외롭고 힘든 인생, 답은 없겠지만 굳이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하라면, LOVE라는 오글거리는 답을 내본다. 너무 늦지는 않게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을 오늘, 지금 사랑한다 말하기, 다정하게 안아주기.
남편과 딸내미가 왜 이리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그래도 하기. 후드득 몸을 털며 나를 귀찮게 쳐다봐도 우리 집 댕댕이 시컴둥이도 안아주기. 영드 한편 보고 할 말이 이리 많으니, 나는 '왜 내가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은 당분간 안 해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