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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gom Dec 15. 2017

늘 똑같은 날의 고백

늘 그렇듯,

아침엔 가벼운 생존신고

점심엔 안부인사,

저녁엔 화상통화로 이어지는 우리 부부의 평일.


남편에게 안전운전해 귀가하라는 당부는 남기고 통화 종료를 눌렀다.

늘 똑같은 날밤,

나는 당신에게 고백을 한다.


특별한 날에 하는 고백은, 마치 특별한 날이기 때문에, 선물을 받아서, 혹은 감상에 도취되어서 라는 핑계를 될 수 있으므로 아무일도 없었던 날에 나는 고백을 읊는다.




사랑하는 당신,

나의 남편이자,

내 인생의 나침반이자,

서로의 울타리이며,

기쁨의 근원인 당신


오늘도 나는 당신에게서 비롯된 기쁨과 응원으로 하루를 잘 매듭지었습니다.

늘 똑같은 날이 반복되지만, 남편의 오동통한 볼살과 그에 비례하지 않는 크기인듯한 쪼꼬만 두 손. 볼록나온 배와 예쁜 웃음. 나는 남편에게 다시 한번 더 반하고 맙니다.

사실 남편이 그린 그림 속의 인물들은 무서워요. 나는 원체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감정의 날것이 드러난 표정을 지은 사람들은 더욱 무섭습니다. 당신 붓 속에서 나타났을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판 속의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이에 치기어린 시절, 목구멍에 걸린 가시같은 글을 쓰리라 했던 다짐이 얼마나 풋내나는 것이었는지 다시금 깨닫습니다.


남편,

나는 오늘도 당신과 한달, 일주일, 하루를 버티기 위한 글을 썼습니다. 대충 쓴 문장도 있고 어설프게 끼워다 놓은 단어도 있습니다. 반복되는 어휘와 문구속에 지쳐 끝내 외면했습니다. 월급에 부끄럽지 않지만, 나에게 부끄러운 글을 하루의 마감 4시 전이 되면 쓰레기통에 비우듯 모니터에 쏟아버렸습니다.

그 글은 기사라는 부끄러운 명칭을 달고, 새벽녘 잠을 잊은 사람들의 노동력으로 인쇄소에서 불려나갈 것이며, 셀 수 없는 종이는 신문이라는 이름 하에 사람들의 손에 놓일 것입니다.


나를 위한 글을 쓸 수 있으리라는 믿음, 그것은 사실 시간적인 여유가 아니라 내 잠재력과 재능에서 찾아야 할 여유가 아니었을런지요.

조금만 잠을 늦게 자도 나는 이렇듯 당신을 향한 글을 쓰듯이, 몇 자 좀 더 쓰다 잠들 수 있을텐데. 천성적인 게으름은 늘 몸을 무겁게 합니다. 


남편은 나의 글을 칭찬합니다. 주어 서술어가 맞는지, 문장간 문맥이 맞는지, 허투루한 교정에 날밝으면 다시 부끄러워지는 나도 당신의 칭찬에는 뻔뻔하게 기뻐합니다. 남편의 칭찬은 피로회복제 같고, 지난해 링겔 주사 같거든요.


부지런히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 돈을 버는 일을 하면서, 본인의 미래를 고민하는 남편이 매일 밤 악몽을 꾼다는 것을 듣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남편은 8살 어린 아내에게 내색하지 않은 것이겠죠. 아무렇지 않은듯이 웃고, 아이를 어르듯 투정을 받아주며 그렇게 어른인 남편은 주말을 보냈던거죠. 그래서 더 미안하고, 더 슬프고 더 힘을 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은 좀 더 글다운 기사글을 쓰리라 늘 그렇게 다짐만 합니다. 내일은 좀 더, 좀 더 만족할 수 있도록, 손톱만치라도 발전을 보이리.


싸구려 글을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은, 남편과의 만남에서 더욱 커졌습니다. 남편의 그림은 없는 시간을 쪼개내어 그리는 남편만의 것. 나의 글은 데드라인을 핑계로 덕지덕지 테이프를 붙여 연결한 누더기임이 확연히 보여서, 나는 남편의 옆에서 좀 더 내 글을 써야겠다는 욕구가 커집니다.


당신이 내게 원하는 글만 쓸 수 있게 해줄께 라는 고백을

어느날은 내가 원하는 그림만 그릴 수 있게 만들어 되돌려주고 싶습니다.



그대,

하느님이 연결해주신 나의 인연,

너무 보고싶어서,

그 까슬한 볼에 손바닥을 올리고 싶어서 오늘 밤은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먼길을 한달음 달려왔을 내일

금요일 밤의 재회에는

당신의 냄새에 코를 묻고, 킁킁이 왔구나 하는 소리에 다시 한번더 들숨과 날숨을 뱉으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꼬옥 안아 말없이 고백할께요.


사랑해요.

내가 오늘 읊는 것 보다 더 많은 양으로다가,

진심과 나의 존재를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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