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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gom Mar 05. 2022

섹스가 생식이 아닌 위로의 목적이 될 수 있음을.

빈 아기집을 품고

7주 3일.

아이의 심장소리를 듣지 않으면 이상이 있는 주이다.

간혹 수정이 늦게 되어서 예상보다 아이가 늦게 생길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초음파로 배란일까지 받아가며 임신 준비를 한거라, 오차가 없었다. 산부인과 의사는 자신의 작은 수첩을 몇번이나 뒤적거리며 계산의 오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몸짓을 보였다. 이후에 다른 일자 관계는 없었는지 묻고 또 물었다. 손짓이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 애처로웠다.

 

오늘은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한 번 들어봅시다!

초음파에서 보이는 텅 빈 아기집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빈 아기집을 계류유산의 일종으로 본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아마도 이유일 수도 있겠고. 또 그런 환경이 많이 작용했을테고.


내 마음은 자책으로 물밀듯이 채워졌다. 내 아이의 생명보다 일을 우선으로 한 것. 1년 3개월의 돈을 더 바라본 것. 스트레스를 폭탄으로 투여한 것.


유산은 90%의 확률이라고 했고, 한주만 더 있다가 봐도 될까요의 물음은, 그래요. 엄마 마음이 그러면 그렇게 해야지. 라는 인자한 대답으로 마무리됐다. 오히려 그 대답이, 아. 정말 내가 아이를 잃은 것이로구나. 답을 주었다. 정부에서 호기롭게 올려 준 백만원의 바우처는 98만원대의 잔액은 오로지 유산을 위한 행위로 사용되기 위해 남겨졌고. 결제를 하는 순간부터 엉엉 눈물이 났다. 차안에서는 통곡을 했다. 만삭인 산모들 사이를 걸으며, 나는 그냥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감정은 가끔 쏟아내고 쏟아내고 또 퍼부어대어도, 끊임없이 샘솟아버린다. 눈물보다 빨리 차오르는 건 죄책감. 나에 대한 미움. 어떻게 가진 아이인데.


백호를 놓아주려는 마음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생기지가 않았다. 사람들의 단톡방 웃음소리가, 평온한 일상이 괴로워지고 미움의 감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 사람 저 사람을 향했다. 물론 표현을 했단 것은 아니지만 다음 날 출근을 하면 국장 얼굴에 물건이라도 집어던질 것만 같은 기분이라서, 이걸 바랐냐고 악이라도 쓸 것 같아서. 연차를 내고 쉬었다. 남편은 일을 마치고 돌아왔고 홀로 견딘 내 시간을 위로했다. 고생했다고 했다. 아이를 품느라 고생했다는 말이다. 잔인하게도 입덧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아기집은 텅빈 아이의 공간임을 알아채지 못하고 이순간까지도 호르몬을 끌어당겨쓰며 견고하게도 사이즈를 키우고 있다. 울렁거리는 속을 재우는 것은 차갑게 식은 머리였다. 너 임신 중 아니야. 아이 없어. 입덧하지마. 스스로 되뇌여도, 입덧은 계속 됐다. 참,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간만에 마신 카페인 든 커피는 팽팽 돌게했다. 속이 뒤집어지는 느낌이었다.


낮에는 찻집을 갔다. 삶의 오랜 시간 상담일로 채워오신 티룸 대표는 두시간 내내 차를 내려주며 정말 지금 상황에서 내가 봐야할 것과 내 결정은 내가 해야하는 것임을 넌지시 일러줬다. 맞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아이를 잃은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행동은 마지막까지 나의 결정으로 후회없이 이 인생을 살아가는 것.


얼마 전 밀리의 서재로 읽은 소설 중, 계류유산의 소파술 절차가 낙태와 다를 것 없다는 표현으로 섬뜩하게 읽은 적있다. 맞는 말이지. 그 안에 있는 아이가 진행형이냐 아니냐일뿐일테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의사도 나도 잘못된 판단을 하면 어쩌지. 아기집이 크고있는데. 아이가 숨어있는건 아닐까.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생각. 망상.


결국 가족. 딸의 얼굴을 보며 위로를 받고, 남편의 품안에서 안도한다. 오늘 밤은 아무 말도 없다. 위로가 목적인 관계는 우리 결혼 생활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몇달 내내 배란테스트기를 매일같이 적셔가며 마치 생식만을 위한 목적으로 살아가는 동물같았던 내가, 지금은 인간이구나 생각한다.


인생에서 이순간을 떠올리면 계속 따끔거리겠지. 앞으로 결정해야 할 것이 많은 갈래길에서 지금 나는 잠시 떠난 아이를 애도한다. 기대고 슬퍼한다. 텅 빈 집에서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무작정 기다릴 수 없겠지만, 그래도 한주간은 백호 너만을 생각하겠다. 하얀 호랑이가 아빠 꿈에 나와서 호랑이 모양 케이크를 자르며 더없이 행복해했던 시간들을. 그순간 만큼은 네가 주인공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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