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mgom Mar 23. 2022

글쓰기로 돈 벌기는 어렵다

내 삶도 어렵다


기자의 역할을 놓은 지 딱 한 달이 됐다.

애초에 내가 기자였나? 의문을 가져본 것이 8년간 한순간도 의심이 들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래도 길거리의 누군가에게 가장 가까운 신문이자, 글이었기에 그에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했다. 무가지의 가치는 어디, 누구에게나 읽을 수 있는 평등함에서 온다고 봤다. 내 글을 읽는 장소는 약국의 어느 대기 소파였고 붕어빵 장사의 손 위였다. 아무튼 그래서 즐거웠다. 사람들은 모른 채로 나를 좋아해 줬고, 나는 가장 낮은 위치에서 권위 없는 기자직을 한다는 상황이 재미있었다. 그러니까 계속했다. 때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막 썼고, 때론 패널을 모아가며 어려운 시도를 했다. 나의 일들은 정말 내 스스로 찾아가야 했기에, 즐거웠고 한편 괴로웠다.


어찌 됐든 지난 2월 8년 차의 마침표를 찍었다.


'글 써서 밥 벌어먹기'의 어려움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 일에서 멀어졌기에 비로소 알 수 있는 일이다.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렇기에 글쓰기로 돈을 벌어 밥 먹는 일이 되려면 한없이 깊어져야 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보자. 세 돌도 되기 전부터 아이들은 온갖 미술적 재능이 길러지는데, 순수미술로 돈을 벌어 밥 먹기가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 세상인지. 그건 아무래도 동굴 속에서 배부르고 등따셔서 한가로운 김에 그림 그렸던 원시인 시절부터 알 수 있었을 테다. 그림 그려서 먹고살 수 없다고. 글 써서 먹고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뭐, 내 옆 사람을 생각하면 그는 국내 톱클래스의 사람이고, 나는 한없이 발에 채일만큼의 쥐꼬리 같은 얕은 재능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하니  지금의 현상황이 영 이해가 되지 않을 일은 아니다. (자조적인 부분처럼 들리겠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나는 정말로 자존감이 센 사람이라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짓을 혐오하고, 남편은 정말로 천부적인 미술적 재능을 지닌 사람이다. 당연히 객관적으로 비교가 된다.)


정신승리라고 하는데, 나는 실업급여 대신 잠시 군상의 면면을 보고 싶었다. 그것도 멀리 봤을 때 인간 수업이라고 생각했다. 콜센터는 인간의 민낯이 드러나기 좋은 곳인데, 우선 전화받는 사람의 학력이나 재능이 평균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는듯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그러니까 그런 일이나 하지'라는 아주 전형적인 멘트를 들어봤는데, 꽤 놀랍고 재밌었다. 정말 내가 거쳐온 일들에선 한 번도 들을 수 없는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로 했던 검정고시 학원의 교사만 해도 그렇다. 그런 멘트를 들을 만한 자리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기에, 상담원들의 고충을 텍스트로만 이해했지, 그 깊이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여기에서 상처를 받거나 하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한 잘못으로 그런 얘길 들은 것도 아니고, 어차피 멀리 봐서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이랄까. 뭐 아무튼 그 이후로도 종종 옆 사람의 실수 때문에 욕먹은 경우가 있긴 했지만, 옆 사람의 늘 친절한 교육과정 덕분에선가 타격감은 크지 않아 다행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지속한다면 갑자기 팀장급이 되어도 될 만큼 많은 업무를 숙지하게 되는 아찔한 속도랄까.


오미크론은 세명 중 두 명이 집에 가버리게 만드는 초유의 사태를 만들었다. 심지어 사무실에 나 혼자 앉아있는 상황이 발생했다. 입사초 20명 가까이 우글거리던 회사는 어디 갔나 싶었다. 그래서 결국 남은 것은 나 혼자?라는 생각에 웃기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숙달되기에는 아찔한 상황이 필요한 거구나. 한 시간 일찍 출근해 한 시간 늦게 퇴근. 화장실, 밥 빼고는 온종일 일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글을 쥐어짜 내느라 머리를 쓰지 않아서 그 안락함이 좋긴 한데 문제는 머리를 쓰지 않는 대신에 몸이 괴로운 일이 되어버린 것.


세상의 흐름이 나를 힘들게 하지만, 지금 이렇게 순응하는 이유는 뭘지 스스로도 생각해봤다. 회사가 나를 길들인 것인가, 내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것인가. 아무튼 지쳤다. 뭐가됐든, 다 그만두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그래도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집에 있으면 정말 소멸될 것 같아서다. 뭐가? 내 존재가.


지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아내가 주부의 역할마저 버리면, 도대체 직장은 왜 그만둔 것인가. 알고 있다. 회사를 그만두면 집과 직장의 거리는 없어지고 모든 게 내 일이 되어버리는 그런 상황이 온다는 것쯤은. 어찌 됐든 지금의 나는 최선을 다해 성실한 척을 해대고 있고 그 이유는 생각하기 지쳐서임을 알고 있다. 글을 쓰는 일은 결국 다시 시작하겠지만, 이로 다시 돈 벌기를 시작할 것을 생각하면 답답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미래 같기도 하다.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 엄마가 되는 일. 그것만 생각하고 있는데 현실이 너무 고단하다.


다이빙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에 걸터앉아 필리핀의 잊을 수 없는 색의 바닷물에 발목까지 담그며 '이 순간을 한평생 잊지 못하겠구나'싶었던 그날, 그 마음을 요즘 자주 꺼내본다. 세상의 해방감이 다 내 품에 있었던 그 시간. 이제는 인연과 인연에 얽혀 천방지축 벌거숭이로 살 수 없음을 안다. 이는 무겁고 뜻한 겨울이불이라는 것을 안다. 여름의 순간이 오면 짐처럼 느껴지고, 겨울의 순간이 오면 세상 든든하겠지. 인생이 지나가며 얽힌 나의 인연들, 그러니 내일도 일어나 아이의 밥을 챙기고 수저와 물통 고리수건을 꾸려 유치원 가방을 챙겨주겠다. 하루살이처럼 달려드는 잠시의 인연들에게 친절히 대해주겠다. 나를 바라보기엔 앞에 할 일이 너무 많은 서른다섯, 그래도 오늘 밤은 게으름을 떨치고 몇 자 적다 잔다.

매거진의 이전글 섹스가 생식이 아닌 위로의 목적이 될 수 있음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