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싸고 잘 자주어 고마워

2024. 08. 16 율이 생후 74일의 기록

by 곰곰

요즘 율이가 1회 수유 시 먹는 양은 150-160cc이다. 어제는 60cc를 먹다 말고, 90cc를 먹다 말기도 하는 식으로 먹었다. 산후마사지를 받고 집으로 오는 택시에서 예전에 언뜻 보았던 ‘분태기’라는 말이 떠올랐다. 혹시나 ‘분태기인가? 젖꼭지 사이즈가 또 안 맞나?’라는 생각을 하며 자주 들어가는 육아정보카페에 글을 올렸다.

집에 와서 다시 기록들을 보니 수유 후 얼마 안 있다가 응가를 했거나 수유 중 응가를 한 기록들이 보였다. 어제는 응가를 5번이나 했다. 하루 총 수유 양도 적절해서 ‘응가 이슈로 그랬구나’ 이해가 됐던 하루.

오늘은 일어나서 첫 수유를 하는데 160cc를 잘 먹는 것이었다. 어제 갑자기 수유양이 적어졌던 것들이 신경이 쓰이긴 했나 보다. 160cc을 잘 먹는 모습이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는 눈물이 찔끔 났다.

난 어릴 때 밥을 진짜로 안 먹는 아이였는데 엄마 아빠는 이걸로 무진장 신경을 쓰셨겠구나, 그 마음이 떠올라 눈물이 살짝 났다. 그냥 온전히 이해되는 마음.


어린아이였던 그때의 나는 너무나도 먹기가 싫었는데...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밥을 먹기 싫었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감자밥인지 양파밥인지 밥 안에 무언가 들어있는데 그 느낌과 맛이 너무 싫었고 입에 들어온 밥알들을 삼키기가 힘들었다. 싫어서 어쩌지를 못하겠는데 앞에 떡하니 날 보고 있어서 참으로 난처했던 기억이 있다.

또 한 번은 가족들이랑 간 식당에서 순두부찌개였던가 빨간 국물에 만 밥이 먹기 싫었다. 엄마와 아빠는 계속 먹이려고 하는 상황에서 자리를 뛰쳐나가고 싶었던 적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집에서 국에다 밥을 말아먹는데 다 먹기가 힘들었다. 남긴 것을 안 들키려고 남은 그대로 냄비에 부어 숨기려고 했던 기억도 난다. 이런 에피소드들은 더 나열할 수 있다.


밥을 안 먹는다고 집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 울면서 바깥문에 매달려있는데 하필 그때 앞집 아줌마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쫓겨난 내 모습을 본 게 수치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땐 마음에 상처가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다 이해되는 마음이다.


돌아보면 나는 참 감각에 예민했던 아이였던 것 같다. 맛뿐만이 아니라 재료의 식감 등 여러 가지를 맞춰 줘야 하는 까다로운 아이. 나 스스로 편식이 개선됐다고 느꼈던 때는 19살 겨울 방학에 다녀온 인도 해외봉사 이후다. 그때서야 가지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예민함과는 거리가 아주 아주 먼 ‘먹짱 순둥이 아가’가 와주었다는 게 놀랍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율이를 낳고 키워보니 ‘뱃속에 품는 것’ 자체부터가 그저 감사해야 할 일이다. 부모님께서 낳고, 키워주시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감사 그 자체. 여기에 화목한 가정이라는 환경을 만들어주신 것은 매일 엎드려 절을 해도 부족하다.


우리 세 식구의 모습은 마치 어릴 적 과학시간에 배웠던 지구의 단면을 떠올리게 한다. 세 식구의 핵심인 율이는 지구의 내핵처럼 가족들의 사랑에 켜켜이 둘러싸여 충분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고 있다.


율이가 건강히 자라고 있는 것은 내 덕이 아니라 나에게 잘해주는 남편이 있고 마치 품앗이 육아처럼 율이를 케어해 주는 가족들 덕분이다. ‘언제나 언제나 사랑해’라는 책이 드디어 도착했다. 빨리 내일이 와서 읽어주고 싶다.


아가야, 오늘도 건강히 자라주어 고마워. 방긋방긋 웃어줄 때마다 얼마나 기쁜지 알고 있니. 율이가 태어나고 온 가족이 진한 행복을 매일매일 느끼고 있단다. 표정, 몸짓 하나하나에 웃곤 해. 율아 곧 있으면 100일이야. 엄마랑 율이가 뱃속에 있던 시간까지 합치면 약 1년의 시간이란다. 평생 못 잊을 1년이야. 이건 우리 둘만 느낄 수 있는 거겠지? 율아. 엄마 아빠를 선택해 주어 고마워. 우리 가족을 선택해 주어 고마워. 아기들도 꿈을 꾼다는데 우리 율이 좋은 꿈 꾸고 사랑의 감정이 차곡차곡 쌓이길 바라.


20240817.jpg 율이의 몸짓 하나하나에 웃게 된다



이전 15화효도베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