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길 잃은 천사가 우리에게 왔나?

2024. 09. 02 율이 생후 91일의 기록

by 곰곰


율이가 나를 확실히 인지하는 게 느껴진다. 율이에게 말을 걸다가 자리를 이동하면 율이의 시선이 달라지고 나를 응시한다. 생후 88일에 했던 낯가림을 통해 율이가 나를 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보다 섬세하게 캐치되는듯하다.


집안일을 하려고 잠깐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오면 정말 좋아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특히나 스킨십을 해주면 팔다리가 난리가 난다. ‘인간에게 사랑이 이토록 중요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 유용하게 사용하는 게 천으로 된 아기띠다. 아기띠를 하고 있다 보면 어느새 율이가 잠들어 있을 때가 많다. 오늘은 율이 귀가 정확히 내 심장 쪽에 위치하는 자세로 잠이 들었다. 순간 내 심장 소리가 크게 뛰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율이가 내 심장소리를 듣고 더 큰 안정감을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


완전 자기중심적이었던 내가 이렇게나 타인을 생각한다니, 타인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도 거리감이 느껴지니 다시! 내가 아닌 존재를 이토록 나보다 더 귀하게 생각한다니. 가끔 내가 ‘율이를 위해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모든 것’.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 남편을 향한 내 고집을 비롯해서.


가족들과 페이스톡을 하다 언니가 장난스럽게 율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사’라는 표현을 했다. 나는 순간 ‘내가 배 아파서 낳았다’며 맞받아치려고 했으나 타이밍을 놓쳤다. 그런데 페이스톡을 마친 후 그 말이 맴돌았다. 맞는 것 같아서!


오늘은 벌써 생리 3일째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한 번도 생리 주기가 맞은 적이 없었다. 시작한 이후로 언제나 불규칙이었기에 주기가 딱딱 맞는 친구들이 그날을 예측하며 여행도 계획하고 어떤 일들을 계획하는 게 그저 신기했다.


생리통은 대학생 때까진 없었는데 첫 직장생활을 하며 미칠듯한 스트레스에 심한 생리통이 생겼다. 출근하다 배가 몹시 아파서 역무원에 1시간 동안 누워 있다가 출근했던 적도 있고 등짝이 다 젖을 정도의 식은땀이 나기도 했었다. 연속으로 토하는 등 작년 5월까지도 손꼽을만한 통증들이 많았다.


이와 같은 일들이 있다 보니 내 몸 상태에 자신이 없었는데 자녀 계획을 세운 후 ‘한 번에 율이가 찾아와 준 건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기저귀 갈이대에서 율이에게 "율아, 진짜로 율이가 하늘에서 와준 천사가 아닐까?"라는 말을 하며 "우리 율이는 그냥 율이가 아니야, 수많은 인연이 켜켜이 켜켜이 쌓여서 여기까지 온 귀한 보물이야"라는 말을 해주었다.


우리 율이를 만나기까지, 그리고 우리 율이를 이토록 편안한 마음과 행복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데 있어, 지금까지의 나의 행보들이 감사할 뿐이다. 만약 정말로 내가 템플스테이를 하며, 수없이 거친 마음의 훈련들이 즐거운 육아의 발판이 된 것이라면 나는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그 선택을 할 것이다. 그 시간들 동안 비록 경제적인 활동이 멈췄다 해도.


사실 율이 덕에 난 요즘 큰 변화를 또 느끼고 있다. 그 시작은 삼촌의 선물로부터.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율이를 생각하니까 공부를 해야겠다 싶었다. 선물은 해외주식이었는데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았다. ‘율이껀데 적어도 망치진 말자.’하는 책임감이 든다.


그렇게 아침 루틴으로 경제뉴스 듣기가 추가됐다. 남편에게 “나 이쪽으로 공부해 볼까?” 하니 지금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남편에게 물어본 날은 내가 "노트북 전원이 어딨 지? 어디였지?? 어떡해! 기억이 안 나...!! 하던 날이었다. 전원 버튼이 노트북 사이드에 있었는지 정면이었는지 헷갈렸다. 방은 어두웠었고 말이다.


내가 정신이 들면 책도 볼 예정이다. 율이 덕에 이렇게 또 달라진다.


20240902.jpg 율천사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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