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아 오늘의 감사함을 기억하자

2024. 09. 10 율이 생후 99일의 기록

by 곰곰

율이는 아침 7시 30분경 깼는데, 일어난 후 다시 잠이 들었다. "왜 다시 자지? 어제 많이 먹어서 그런가?“ 하며 출근은 잘 했는지 남편에게 연락했다. 남편은 출근 준비를 하며 마침 깬 율이를 봤는데 율이가 웃어주었다고 했다. 일어난 후 다시 잔 적은 없었는데 어딘지 찜찜해서 바로 열을 쟀다. ‘완전 정상’

그렇게 율이는 1시간 30분 가량을 다시 자다 깼다. 아침 인사를 나누고 기저귀를 갈아줬다. 그 후 얼마 안 있다가 기저귀 소변 알림줄 색이 살짝 변하는 게 보였다.


새 기저귀를 밑에 받치고 소변을 본 기저귀를 열었는데 기저귀에 빨간 점 같은 게 찍혀있었다. 크기가 작았는데 자세히 보니 피 같았다. 사진을 찍고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는 소아과를 어플로 예약하고 혹시 몰라 전화를 해서 소변검사가 되는지 확인했다. 남편에게 오전 11시에 예약했다고 하니 그래도 준비되는 대로 그전에 가면 좋겠다고 해서 나갈 채비를 했다.


여차하면 바로 택시를 타고 응급실에 갈 생각으로 분유가루, 보온병, 젖병 등등 한보따리 짐을 싸고 율이 옷을 갈아입혔다. 정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침착하려고 했다.

소아과에 갔는데 2팀 정도 있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진료를 본 후 간이 소변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율이의 컨디션을 살폈다. 열은 없었고 발차기도 힘차게 하며 평소랑 달라 보이지 않았다.

요로감염이 재발이 잦다는 건 급성신우신엽으로 입원했을 때 수차례 검색을 통해 알고 있긴 했다. 재발하지 않는 경우들도 있기에 율이는 피해가길 바랬다. 재발하지 않은 케이스들을 알아보며 관리 수칙들을 정해 최대한 지키려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재발을 비켜가리라 생각했고 거의 40일 만에, 이토록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소변검사 결과는 재발인 것 같다며 지난 번 입원했던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하셨다. 수납을 하고 의뢰서를 가져가는데 너무도 담담한 간호사님들의 태도에 오히려 차분해지는 마음이었다. ‘그래. 얼마나 많은 사례가 있었겠나, 별일 아닌 거다.’


택시를 잡으려고 했는데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마침 남편에게 전화가 왔고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집에 오는 길에 율이는 품 안에서 잠이 들었고 잠든 율이를 눕혀놓고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부랴부랴 젖병들을 씻었다.

씻으면서 ‘왜 재발했을까’ 여러 이유들을 분석하려했지만 그 분석은 엉터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한 행동들 중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없었다. 순간 똑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이 아닌 것을 가지고 그래서 아팠다는 유추를 하며 너무 괴로워했던 율이 1차 입원 생활. 그때 교수님이 그러셨다. ‘그냥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이라고’


율이가 열이 없었기에 기저귀에 찍혀있는 피를 보지 못했다면 조치가 늦어졌을 것 같단 생각에 아찔했다. 이렇게 눈이 보이는 증상으로 빠른 처리가 가능했던 것이 감사했다.


남편과 함께 응급실에 가서 접수했는데 요즘 같은 파업 상황에서 무사히 접수되고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것도 감사했다. 소변검사 결과는 소변이 지저분하다는 것. 다행히도 피검사 결과는 양호했다.

남편은 다시 회사로 가개 돼서 응급실에는 내가 율이를 케어하는 상황이 되었다. 응급실 담당의는 입원 여부는 내 선택이지만 이곳에 왔을 때 미열이 있었고 소변검사 결과도 고려해서 하루 이틀 입원하여 지켜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6인실로 배정이 됐는데 생후 58일 율이와 99일이 된 율이는 발달상 너무도 큰 차이가 있었고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58일 때는 너무 어려서였는지 한 번도 자지러지게 운적은 없었다. 자지러지게는 커녕 정말 배고플 때 빼고는 운적이 거의 없었다. 간호사님들은 율이를 보며 어떻게 이렇게 순하냐며 자리를 떠나기 전 한 번씩 만지고 가셨었다.


이젠 정말 귀가 야무지게 트였나보다. 수유 후 15분 정도 단잠에 빠져있었는데 마침 옆 침대 아이가 검사를 마치고 와서 울었다. 율이는 그 소리에 깨서 배앓이 때보다 심하게 울었다. 겨우 겨우 진정시켰는데 또 다른 아기의 울음 소리에 어마어마하게 울었다. 다음 주 금요일에 청력 정밀 재검사 일정이 있는데 야무지게 귀가 트인 것을 이렇게 확인했다.

6인실에서 강성울음은 너무 눈치가 보였다. 서럽게 우는 율이를 보는데 안쓰러웠다. ‘이렇게 잠 못 들면 안 되는데, 빨리 나으려면 잘 자야 되는데...’ 호출벨을 누르니 간호사님이 오셨고 방울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여쭈니 2인실이 마침 비었다고 하셨다.


정신없이 이동했는데 그곳엔 천사 엄마가 있었다..... 내가 너무 정신이 없어보였는지 본인이 율이를 안고 있을 테니 짐정리를 하라며 먼저 손을 내밀어주셨다. 그리고는 아기가 배고파하는 것 같다며 내가 분유를 타는 동안 계속 안아주시고 짐을 부리라며 수유까지 대신해주셨다.

옆 침대에 누워있는 아들을 향해 애기 맘마 먹는 거 보라며 침대 사이의 커텐도 열어놓으시더니 수유를 마치고 아들한테 가서는 "아, 귀여워"

아들이 그 얘기를 듣고 "애기?"하니 "아니 너, 너가 세상에서 제일 귀여워" 라며! 천사 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 정도로 보였는데 이런 말을 한다는 게 너무 인상 깊었다. 그러고서는 둘이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가는데 깔깔거리는 웃음 소리가 자주 들렸다.


미래의 율이와 나의 관계도 저랬으면! 율이와의 관계에 대한 첫 그림을 그려보게 된 시간이었다. ‘이 장면을 보려고 여기에 왔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또 하나는 선행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 나중에 만약 애기 엄마가 도움이 필요해보이면 나도 꼭 도움을 줘야지! 그렇게 천사엄마가 옆 침대로 이동하고 율이를 바라보는데 눈에 눈물이 차기 시작했다. ‘안 돼. 율이가 알거야.’ 눈은 우는데 입은 웃는 요상한 얼굴.


‘아프면 치료 받으면 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지’하며 상황을 탓할 이유가 없다. ‘치료하면 되는’ 심플한 상황이다. 다만 나의 속상한 마음은 받아주자. 놀란 마음은 받아주자. 율이가 커가느라 성장통을 겪는 모습을 토닥여주자. 고생하는 율이를 안아주자. 더 따뜻하게 사랑스럽게 바라봐주자.


속상하고 놀랐던 마음. ‘그랬던 거야. 그래 맞아.’ 어제 저녁까지도 컨디션이 좋았는데 하루 아침에 생각지도 못하게 입원이라니. 기저귀에 피를 보며 놀란 마음. ‘그래, 내가 놀랐구나, 속상했구나.’ 율이는 백프로 치료되니 얼마나 감사한일인가. 치료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일인가. 이만하길 다행입니다. 이만하길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율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가장 소중한 선물은 ‘마음이 편안한 엄마로 율이와 함께하는 것’ 이다. 크나큰 배움이 있는 하루. 감사합니다.

율아, 수많은 사람들의 공덕으로 무사히 지내고 있단다. 율이가 인생에서 힘든 일이 있다면 뒤집기 영상을 꼭 보여주고 싶었거든. 그리고 오늘의 일들을 말해주고 싶어. 율아 사랑해. 얼른 집에 가자



20240910.jpg 옆 침대 천사 엄마가 대신 수유를 해주었다. 그저 감사했다. 또 하나, 아들과의 친밀한 관계도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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