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8 율이 생후 339일의 기록
"이유식 만만치 않지?"
언젠가 아는 언니를 만나러 갔을 때 나에게 했던 질문이었다. 이유식을 시작한 후 처음 듣는 이 질문에 나는 오래도록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냈었다. 어느새 11개월이 된 율이는 '후기이유식'에 돌입했다. 초기 이유식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도통 모르겠다. 힘차게 흐르는 시간의 물결은 거침없이 빠르게 흘러 다음 달이 돌이 되는 시점까지 데려다주었다. 정신없이 헤매던 날들을 넘고 넘어 여기까지 왔다는 게 그저 감사하다. 이유식은 한 끼당 170g 정도로 양도 많이 늘었다. 양은 늘었고, 그만큼 자기주장도 늘었다.
사실 요 며칠 '이유식 먹이기'가 상당히 난이도가 높아졌다. 상중하로 말하자면 아주 '상상'이다. 솔직히 하루 중 가장 진이 빠지는 시간이 되었다. 이유식을 먹다가 무언가를 가리키며 소리를 크게 내기도 하는데 내가 못 알아듣고 요구가 들어지지 않으면 얼굴이 새빨개질 때까지 크게 소리를 낸다. "율아, 물?" 하며 물을 주면 이내 잠잠해질 때도 있지만 원하는 것이 물이 아닐 때도 아주 많다. 스무고개처럼 율이가 원하는 것을 "율아 이거? 이거?" 하며 찾아내려고 하지만 그러다 보면 나도 진이 빠진다.
양이 늘어난 만큼 앉아있는 시간도 길어지기에 집중력이 떨어지는 건가 싶어서 핑거푸드를 급하게 준비하기도 했다. 핑거푸드 전략이 통했다 싶어서 다음날은 '당근, 오이, 파프리카'를 핑거푸드로 준비했다. 이 전략은 폭싹 실패했다. 그나마 잘 먹었던 당근도 쥐었다가 놓아버렸고, 입에 넣고선 한참을 씹고 삼키질 않았다. 잘 먹을 줄 알고 4끼나 되는 분량을 한꺼번에 찌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는데 먹일 때마다 이유식 씨름을 했다. 그러고 보니 모두 씹기 힘든 야채였다. 야채 슬라이스 기를 급하게 꺼내 커다란 핑거푸드들을 모두 넣고 다져서 주었는데도, 율이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핑거푸드, 전략적 실패를 인정합니다'
하루 종일 이유식 시간마다 진을 빼고 나니 다음번 이유식이 막막했다. 율이가 좋아할 만한 야채들을 다시 샀고 '애호박, 양배추, 고구마'를 부랴부랴 준비했다. 오랜만에 준비한 양배추를 바로 손으로 집어먹는 걸 보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럼에도 참으로 이유식 진행이 어려웠다. 처음엔 잘 먹는가 싶었는데 입에 넣고는, 씹고는, 삼키질 않는 거다.
"율아... 그동안 잘 먹어줘서 진짜 고맙다... 처음부터 잘 안 먹었으면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
먹이면서 다음번 이유식을 생각했다.
'들깨! 들깨가루를 쓰자!'
또 언젠가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들깨가루를 넣어서 해주면 아주 잘 먹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가지, 양파, 당근을 송송 썰고 보글보글 끓이다가 얼려둔 소고기 육수를 넉넉히 넣고 오트밀, 밥을 넣어 죽을 만든 후 들깨가루를 넣었다. 아주 한 솥 끓여놓은 들깨죽을 보는데 든든했다. 왠지 들깨가루 전략이 통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핑거푸드로 집어먹을 애호박도 준비하고, 미리 만들어둔 소고기도 해동해서 모처럼 자신 있게 이유식을 차렸다.
'먹는다. 어쭈. 먹는다!'
한 숟갈, 한 숟갈을 사정하는 마음으로 율이 비위를 맞춰가며 먹였다. 이유식 중간부터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컵을 향해 얼굴이 빨개져라 소리를 냈다. 컵을 주니 자기 손으로 먹겠다며, 힘을 줬다.
"율아, 율이가 마셔봐"
손으로 쥔 물컵의 방향을 입 쪽으로 잘 맞추어주니 어느새 두 손으로 컵을 잡고 마셨다. 컵을 이리저리 움직이자 물이 그대로 옷으로 쏟아졌는데, 그래도 입에 들어간 물이 있는 건지 고개를 들고 나를 보더니 씩 웃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으로 컵으로 물을 마신 날이 되었다. 비록 거진 다 쏟았지만 말이다. 물이 입으로 들어간 게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또 이내 나를 보고 웃었다.
사실 어제는 친정 엄마 앞에서 힘든 티를 내고 싶었다. 율이를 보며 괜히 "강율 이놈!" 하니 엄마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셨다. 요즘 이유식 먹이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니 클수록 더 먹이기 힘들 것이라고, 나중엔 쫓아다니면서 먹이게 될 수도 있다고 하셨다. 강율 이놈이 아니라 이유식 이놈이다.
'사람은 그냥 크는 게 아니다' 싶다. 오늘은 어버이날인데 그러고 보니 나도 어버이날의 당사자가 되었다. 율이 에게 장난 삼아 "율아,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봐" 라고 했는데 정말이지 부모가 된다는건 만만치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