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20 율이 생후 351일의 기록
오전엔 울었고, 오후엔 웃었고, 저녁엔 다시 울었다. 정확히 말하면 눈물이 핑, 또 다시 핑.
율이는 창문 앞 커튼 속에서 놀다가 그대로 뒤통수를 거실 바닥에 찧었다. 쿵. 아주 큰소리로 쿵하는 소리가 났다. 최근엔 중심을 잃고 넘어져도 머리가 아니라 어깨쪽으로 넘어지길래 이렇게 또 성장하나보다 했었다. 머리를 보호하는 모자도 씌우지 않은 지 꽤 지난 상태였다. 씌우면 기어이 벗겨냈고, 어렵게 씌워도 금방 땀이차서 나 역시 굳이 씌우려 하지 않았다.
이번엔 쿵 소리가 너무 컸다. 뒤로 발라당 넘어진 율이를 안고 달랬는데 다행히도 울음은 5분 내로 그쳤고 이내 오전 수유 시간이 되어 분유도 잘 먹었다. 분유를 먹고 난 후엔 아주 빠르게, 잠에 들려고 했다. 평상시와는 다르게, 몹시 피곤해하는 느낌이었다. 역류방지쿠션에서 혼자 젖병을 들고 먹은 후, 다 먹으면 옆으로 몸을 돌려 빠져 나오곤 했었는데 양치를 하려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율이는 그 자세 그대로였다. 눈꺼풀이 무거운 건지, 멍한 표정이었다. 양치질을 할 때면 칫솔을 가져가느라 손이 바빴는데, 이번엔 맥없이 양치도 순순히 하고 빠르게 잠이 들었다.
율이가 잠든 사이 '머리를 심하게 쿵'이라는 검색어로 여러 글들을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검색할 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졸음'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평소와는 확연히 달랐던 졸음의 강도 때문이었다. 검색해보니 뇌진탕과 관련한 증상 중 졸음에 대한 것이 있었다.
평소엔 오전 낮잠을 1시간 30분 정도 자고 일어났는데 1시간 30분이 지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율이가 자는 방에 들어가려다가 어떤 변화가 있는 지 살피기 위해 참았다. 율이가 잠에서 깨길 기다리는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부엌으로 가서 식탁 위에 있던 먹다 남은 오이를 씹으며 괜히 왔다갔다 했다. 그렇게 30분이 더 지났을 때 율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방으로 가보니 율이가 깨서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율아, 율아...! 율아 잘 잤어?" 눈물이 핑 돈채로.
타이밍 좋게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남편은 먹는 양이 감소하는 것도 증상 중에 하나라고 알려주었고 이유식 먹는 것을 잘 살펴야겠다 싶었다. 다행히도 이유식도 잘 먹었다. 율이는 괜찮은 것 같아서 소아과를 가야할지 안가는게 나을지 고민하는데 남편은 아무래도 가보는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은 고맙게도 오후 반차를 내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소아과에 갔고 의사선생님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아주 꼼꼼하게 율이를 살폈다. 어깨, 팔 관절을 세심히 눌러보고 막대기를 쥐게끔하며 율이를 세우기도 하고 눕히기도 하며 말이다. 소아과 진료를 본 후, 율이와 자주 가던 도서관 책놀이터에 갔다. 평상시처럼 율이는 동요가 나오는 튤립 장난감이 있는 쪽으로 빠르게 기어갔고 장난감을 집었다. '율이가 괜찮구나!' 또 다시 안도하는 마음.
집에와서 율이는 분유를 먹고 낮잠을 잔 후 이유식을 먹었다. 오전에 머리를 부딪힌 것이 아주 먼 과거의 일이 된것처럼 잘 먹고 잘 놀았다. 남편이 저녁에 외식을 하자고 제안했고 율이의 옷을 갈아입혔는데 남편 품에 있던 율이가 내게로 왔다. 뒤뚱뒤뚱하며 말이다. 스스로 4걸음이나! 얼마전 친정에 갔을 때 혼자 한걸음을 내딛는 모습을 처음으로 봤다. 오늘 다시 걸음마를 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기특한지 눈물이 핑돌았다. 마지막 수유 땐 양치를 시키려다 윗니가 새롭게 나오는 것을 봤다.
울었다가, 웃었다가. 오늘 여러번 마음이 들썩였다. 오전엔 뇌진탕 걱정으로 가득했는데, 율이의 걸음마는 고된 마음을 모두 뛰어넘었다. 오늘 하루가 여러가지 씬으로 나뉜다면 그 순간은 감정의 클라이막스.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육아, 그래서 더 매력적인. 사실 소아과 진료를 마친 뒤 친정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엄마는 율이의 상황을 듣고 “그러면서 크는겨”라고 하셨다. 속으로 이렇게 답했다. '내가 큰다 커!'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에 율이는 사람을 구경하느라 바빴다. 손님을 보면서도 웃고, 직원을 보면서도 웃었다. 하루가 참으로 여러 씬으로 나뉘는 육아. 율이가 크느라고 고생이 많다. 율이도 크고 있고 나도, 남편도 그렇다.
율이를 재운 후 우린 거실 매트를 부랴부랴 주문했다. 그 모습은 어쩐지 정신없는 오늘을 꼭 닮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