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적이다, 잊지 말자

2025.08.09 율이 생후 432일의 기록

by 곰곰

보이는 결과가 ‘단면’이라면 그 옆엔 내가 보지 못했던 다른 면이 있다는 걸 알아간다. 다른 면을 보는 순간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그 윗면도 알게 된다. 그렇게 다른 면들이 이어질 테다.


정사각형의 단면이라 여겨졌던 삶이 정육면체라는 입체감을 띠고 정다면체로 면들이 점점 늘어 마침내 ‘하나의 구’처럼 여겨질 때, 마주하는 삶은 공처럼 더 매끄럽게 굴러간다는 것을 알아간다.


나의 기준으로 한쪽 면만 보고 상대를 탓하다 다른 면을 발견해 이해했을 때, 일상이 수월히 풀린다는 것을 경험하는 요즘이다.


지난 남편과의 말다툼에서 내가 미쳐보지 못한 건 남편은 회사 생활로 힘듦이 누적된 상태였다는 것이었다. 그 면을 마주했을 땐 모든 것이 이해되는 마음이었다. 내가 옳다며 각을 세우던 장면은 정사각형의 뾰족한 모서리에 걸려 그대로 멈출 것 같았지만 이해되는 순간 다시 둥그렇게 일상이 굴러갔다.


어제는 율이가 저녁잠에 들기 전 아주 심하게 울었다. 평소에 울음이 길지 않은 편이고 안아주거나 애착 워머를 쥐어주면 이내 진정되곤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낮잠을 짧게 자서 입면이 어려웠던 영향도 있겠지만, 정말 만만치가 않았다. 율이를 안고 토닥이며 겨우 진정이 됐다 싶어 눕혔는데 다시 강성 울음이 시작됐다.

그때 눈에 들어온 건 문 틈 사이의 불빛이었다. 율이는 불빛을 향해 손을 가리키며 거실로 나가자는 손짓을 했다. 순간 ‘아... 불 좀 제대로 꺼주지...’하며 남편을 향해 날을 세웠다. 겨우겨우 달래서 재운 후 거실로 나와 물을 마시러 갔을 때 깜짝 놀랐다. 정수기에서 나오는 빛을 앞치마로 가려놓았던 것이었다. 거실에 있는 서랍장 위에 핸드폰을 충전하려고 보니 멀티탭의 버튼들도 다 꺼져있었다. 어떻게든 불빛을 막아보려고 했던 노력이 보였다.


“애기가 계속 울길 래 어떻게든 재워보려고 했지”


남편도 거실의 이곳저곳을 보며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입면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내가 보지 못하는 면들이 존재한다. 이 면들을 알게 되면 ‘이해’의 영역이 늘어난다. 앞으로도 내 식대로 보고 판단하다 수많은 오해를 만들고 수많은 갈등이 일어날 테다. 그래서 잊지 않도록 적어본다.



20250809_입체적이다_432일.JPG 발끝마저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