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마음

by 키키 리리

책장을 정리하다가 오래전 병원을 옮길 때 받았던 의사 소견서를 발견했다. 내 첫 번째 의사가 써준 소견서였다. 우울, 불안, 과민성, 소화의 어려움, 구토……. 이런 내용을 읽으니 옛날부터 참 많이 걸었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우울증도 심했지만 먹고 토하는 행동을 반복했던 탓에 위장과 식도는 정상이 아니었다. 토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걸어야만 했다.


나는 2013년에 처음 우울증을 진단받았으나 치료를 받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나을 거라고 믿었다.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 치료를 미룬 탓도 있다. 이런 믿음이 무색하게 우울증은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2016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했고 정신과 의사는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그걸 실행에 옮기라고 말도 덧붙였다.


일단 걷기 시작했다.


처음 집을 나섰을 때 겨우 10분 정도 걷고는 집 근처 위치한 돈가스 집에 들어갔다. 매번 급하게 밥을 먹느라 가스활명수와 소화제를 달고 살던 나에게는 오랜만에 여유 있게 먹는 첫 식사였다. 늦은 저녁이었다. 며칠 전 막 개업한 가게엔 한바탕 손님이 휩쓸고 지나갔다. 나 외엔 사람이 없었다. 저녁 8시였으니 당연했다. 노랗고 어두운 불빛이 가게를 채우고 있었는데 그게 왜 그렇게 따뜻하게 보였는지 모른다.


이윽고 돈가스가 나왔다.


먹기 좋게 썰어서 입 안에 한 점 집어넣었다. 역한 기름 냄새가 올라왔다. 당시 먹고 토하고 굶길 반복하던 위장이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기름진 음식이었다. 토할 것 같았다. 그런데 돈이 아까워서, 혼자 보낸 소중한 내 시간이 안타까워서 꾸역꾸역 먹었다. 절반 정도 먹고는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애들을 곧 재울 시간이라서 집으로 돌아갈까 고민하다가 잠시 더 걷기로 했다. 속은 더부룩하고 부대껴서 몇 분 안에 토할 것 같았다. 뛰어서 근처 대형 마트에 갔다. 화장실로 직행해서는 다 토했다. 돈 몇 천 원과 혼자 보낸 짧은 시간이 변기 속으로 사라지자 눈물이 찔끔 났다.


고향인 부산에 돌아와서는 주로 토요일 새벽에 집을 나섰다. 간헐적 구토 외에는 안정적으로 상태를 유지한 덕에 의무감을 갖고 걸을 필요는 없었지만 한산한 버스를 타고 세상 구경하는 것이 참 좋았다. 버스 제일 뒷좌석에 앉아서 나를 스쳐가는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럴 때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애들 생각, 집 생각, 끼니 걱정, 직장 일 그리고 우울.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행복했고, 그 행복함을 잊지 못해 주말마다 길 위에 섰다.


2019년 잠잠하던 우울증이 다시 재발했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하루 한 끼만 먹던 날이었다. 1~2개월 만에 살이 7kg 가까이 빠졌다. 매일 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다음 날이면 멀쩡하게 눈을 떠서 출근을 했다. 학교에 가서 수업을 하고 업무를 보고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육아와 집안일이 나를 기다렸다. 쓰러질 것 같았지만 나를 갉아먹는 책임감으로 버텼다. 결국 병원에서 여러 가지 심리검사를 한 끝에 중증 우울증과 사회불안장애를 판정받았다.


약을 복용하면서 서서히 기력이 올라왔다. 2020년부터 걷는 일과 글쓰기를 병행했다.


비가 조금 오는 날에는 비를 맞으며 걷고,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우산을 쓰고 걷고, 우산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면 계단을 올라갔다. 걸으면서 내 우울이 비에 희석되거나, 비에 씻겨 내려가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걷는 즐거움이 컸다. 발바닥 밑으로 번지는 물을 밟거나 질척한 몸 위로 끝없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 이상하게도 생에 대한 기이한 의지로 불타올라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내가 나를 움직인다기보다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끝없이 나를 걷게 만들었다. 오히려 화창하고 햇볕이 내리쬐는 쾌청한 날보다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 훨씬 걷기 좋았다.


출퇴근도 걸어서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운전해서 가나 걸어서 가나 별 반 차이가 없었다. 폭염과 폭우로 걷기가 무척 힘들었던 7월을 제외하곤 늘 걸었다.


도심 한 복판에 걷기 좋은 길이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늘 시멘트 바닥만 밟다가 흙길, 산길을 걸으니 다른 존재가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숲길에 들어서면 나는 콧노래를 불렀다. 두 팔을 번쩍 들어 기지개도 켜고, 실없이 달리기도 했으며, 길고양이 급식소를 지나칠 때마다 만나는 녀석들에게 조그맣게 “안녕”하고 인사를 했다. 특히, 말없이 나를 반겨주던 이름 모를 무덤을 볼 때마다 윤동주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났고, 자랑처럼 풀이 무성해질 무렵이면 내 우울도 끝을 볼 수 있을까, 슬쩍 기대했다.


2022년 육아휴직을 했고 이제는 범위를 넓혀서 부산 이곳저곳을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우울을 떨쳐 보냈고 걸으면서 나를 긍정했다. 누군가가 부러울 때, 자신이 너무 싫을 때, 나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할 때도 걸었다.


수년을 걸었지만 우울은 여전히 내 곁에 있고, 기대한 바는 이뤄지지 않았다.


요즘의 나는 토하기 않기 위해, 우울을 떨쳐버리기 위해 걷지 않는다. 그저 걷는 행위가 좋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땅의 굴곡을 느끼며,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채 즉흥적으로 방향을 정하며 뛰고 걷고를 반복하고, 마스크와 모자로 나를 최대한 가린 채, 그저 어떤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어서 나는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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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과 4월 그리고 5월의 퇴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