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울증의 반대는 활력

이중섭 거리, 동구 도서관 책마루 전망대, 성북 전통시장

by 키키 리리

나 혼자 걸으려고 신발을 신으면 마음은 항상 저만치 달려갔다. 집과 직장에 연결된 온갖 것들을 등 뒤에 내려놓고 길을 나서는 참이었다. 아이들, 집안일, 아마 휴직이 아니었다면 머릿속을 가득 채울 업무와 수업 준비, 삐걱거리는 인간관계. 그 모든 것들로부터 멀어질 수 있어서 나는 집을 나설 때마다 생기가 넘쳤다. 가방에 물통 하나와 지갑만 있으면 그 길로 지구 끝까지 걸어갈 태세였다.


집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처럼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목적지와 대중교통 차편 정도만 머릿속에 넣어두고 오늘은 부산 범일동에 위치한 이중섭 거리로 향했다.




타인의 슬픔을 읽는 일



이중섭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부산으로 피난 왔으나 전세가 심각해지자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로 가서 11개월 정도 살았다. 그러다가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고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은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중섭은 가난과 영양실조 등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며 그림에 몰두하였다. 그리고 가족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1956년에 세상을 떴다.

이중섭은 범일동에 머물면서 <범일동 풍경>이라는 작품을 남겼다.


벽에 걸린 이중섭의 일대기를 햇살이 환한 4월의 어느 날에 평화롭게 읽고 있으니 마음이 조금씩 들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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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만이 느꼈을 고된 감정과 평온하고 무탈한 내 삶이 대비되어 왠지 모를 서러움이 솟구쳤다. 굶주림도, 예술에 대한 열정도, 가족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도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상상으로도 느낄 수 없는 슬픔. 어쩌면 내가 영영 알지 못할 그 감정은 도대체 어떤 종류의 슬픔이었을까? 신형철 평론가는 타인의 슬픔을 온전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그 자체가 한계라는 말을 했다. 덧붙여 이 한계를 인정하되 긍정하지는 못하겠다는 말도.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존재라는 그의 말을 곱씹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다음 편지에서 기어이 눈물이 차올랐다.

"아빠는 태현이가 보낸 편지를 매일매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고, 엄마가 보내준 사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20220415_095418.jpg 이중섭은 가족들과 헤어진 뒤 수많은 편지를 보냈고 지금까지 60여 통이 남아 있다.


우습게도 난 내 새끼들을 떠올렸다. 어미가 새끼들을 1년이고 2년이고 보지 못한다면 도대체 어떤 심정일까?

결코 알고 싶지 않은 상황 속에 나를 던져놓자 내 슬픔이 위로 떠올랐고, 그의 슬픔은 깊이 가라앉고 말았다.

누군가의 슬픔을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란 결국은 불가능하다. 이 쓸쓸한 감정이 그래도 비참하지는 않은 이유는 내가 다른 이의 슬픔을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거리 미술관과 희망의 100계단을 느릿느릿 걸으며 이중섭 전망대를 향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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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 담벼락에 그의 작품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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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100계단(사실 100개가 훌쩍 넘는다. 180개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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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전망대



20220415_100545.jpg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이중섭 전망대에서 앉아서 풍경을 바라보는데 말년의 그가 아내가 보낸 편지를 읽지 않고, 밥도 거부하면서 스스로 괴롭혔다는 대목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의 절망과 슬픔을 읽고, 바라보는 일이 나에게 버거웠던 걸까?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일 때면 나는 자주 걷는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야겠다.




지도를 보지 않는 마음



나는 걷기를 굉장히 사랑한다.


2013년에 우울증 판정을 받았고 2016년부터 치료를 받았다. 약도 수 년째 먹고 있는데 평소에는 이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내 첫 번째 의사는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했고, 이때까지 만난 모든 의사들이 운동을 권했다. 필라테스나 요가, 헬스 따위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가뜩이나 사람들과 만나는 걸 꺼리는데 누가 내 모습을 지켜본다는 생각만 해도 몸서리쳤다.


혼자 다니면 누군가와 보폭을 맞춘다거나 그의 심사를 고려해서 뭔가 하지 않아서 좋았다. 마음대로 앉아서 쉬었고, 걸었고, 때론 뛰었다. 혼잣말을 가끔 했고, 노래도 흥얼거렸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로웠다.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내 의지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우울증 치료를 받기 시작했을 때부터 잠깐씩 걸었고, 5년이 지난 지금은 오래 걷는다.


자, 이제 어디로 가지?


이중섭 거리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았다.


내가 만난 정신과 의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점이 있다. "당신에게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요."

2013년에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믿지 않았다. 완벽한 사람이라면 업무 능력이 좋고, 직장에서 두루 인정받으며 일과 가정 모두 잘 영위한다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어땠는가? 학교 일에 항상 허덕였고, 담임으로서는 꽝이었다. 갓난쟁이 육아를 혼자 하지 못해 벌벌 떨었다.


돌이켜보면 그들의 진단이 맞았다. 모든 순위에서 나 자신은 항상 맨 아래였다. 나를 소진시켜 아이를 돌보고, 직장일과 집안일을 했다. 그렇지만 다른 이의 손을 빌리지 않았다. 도와달라고 말하는 법을 애초에 익힌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 같으면 진작에 못 한다고 두 손 들고나갔을 거예요."


의사에게 이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라니. 지금까지 강도 높은 인내력과 자학에 가까운 인내심으로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병원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이제는 뭐든 대충, 되는 대로 하려고 한다. 내가 하루씩 계획한 걷기 여행도 마찬가지다.


다시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자, 이제 어디로 가지?


혼자 낯선 곳을 걸을 때면 지도 앱을 켜지 않는다. 머릿속에 공간을 그려보고, 표지판과 도로명 안내판을 보고 어림짐작해서 헤맸다. 짐작대로 대상이 거기 있을 때는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무언가에 의지 하지 않고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이었다. 이런 경험이 자꾸 쌓여서 낯선 곳을 걸어도 두렵거나 긴장하지 않는다.


이중섭 전망대에서 도로를 따라 조금 걸으니 동구 도서관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있는 곳보단 더 위에 있었다. 길을 몰라 위를 향해 무작정 걸었다. 가다가 '책마루 길'이라고 적힌 계단을 만났는데 직감적으로 도서관과 연결되어 있으리라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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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헤맨 길과 풍경. 헤맸지만 결국 도착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좁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 마침내 도서관 건물을 봤을 때, 나도 모르게 "이야, 있다, 있어!"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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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우측에 책마루 전망대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봤다. 한 무리의 고등학생이 현장체험학습의 일환으로 나왔는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들이 떠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버튼을 꾹 눌렀다.


20220415_102318.jpg 엘리베이터에 내리자 마주한 풍경


전망대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었다.


나는 혼자 씽긋 웃고는 가볍게 제자리에서 뛰었다. 이중섭 거리에서 느낀 슬픔은 어느새 휘발되어 사라졌다.



내 세상이다.

내 세상이다

내 세상이다.



탁 트인 사방을 바라보는데 쉴 새 없이 말이 터져 나왔다. "여기 오길 잘했어, 정말 잘했어." 이런 말이 아니었다. "살아 있길 잘했어. 정말 잘했어."였다.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전망대 이곳저곳을 바쁘게 돌아다녔다. 양팔을 번쩍 들어 기지개를 켜거나 바닥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리고 별안간 벌떡 일어나 도움닫기를 해서 새처럼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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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날아오르고 싶었다.




삶이 주는 의외성


전망대에서 내려와 잠깐 도서관을 구경한 다음 점심을 해결할 식당을 찾았다. 이번에는 책마루 계단이 아니라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로 쭈욱 내려갔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걸어온 길을 다시 걷지 않는다. 다른 길로 가면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몇 미터 안 왔는데 세상에, 시장이 나타났다. 그것도 만화 속 장면 같은 시장 말이다.


부산 성북전통시장(웹툰이바구길)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조성되었다.
작가들을 초청해 건물 외벽에 그림을 그리고, 가게 간판도 특색에 맞게 바꾸었다. 사진 찍기 명소로 차츰 알려져서 사람들의 방문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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횟집 그림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눈을 둥그렇게 뜬 채 연신 사진을 찍으며 걸어 다녔다. 신기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지만 내가 이 거리에 서 있다는 사실이 더 신기했다. 같은 길을 걷지 않겠다는 단순한 생각이, 지도를 보지 않고 헤매고 다니면 된다는 우스꽝스러운 결심이, 발길 닿는 대로 이리저리 걸어 다니겠다는 의지가 재미난 시장을 구경할 기회를 준 것이다.


『한낮의 우울』의 저자인 앤드류 솔로몬은 우울증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활력이라고 했다. 나는 우울증 때문에 걷기를 시작했고, 걸으면서 생의 활기를 되찾았다. 중증 우울증 환자가 아무것도 못하고 무기력한 것만은 아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삶을 위해 걷기 시작하고 그 경험을 글로 남긴다. 인간이란 이토록 복잡한 정신세계와 신비한 회복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내가 다시 복직했을 때는 지금처럼 걷기 힘들 테고, 별 스트레스 없이 살기 힘들지도 모른다. 아마 약을 오랫동안 더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분명한 점은 이 고난을 통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삶을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리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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