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천문화마을
자갈치 역에서 1-1 마을버스를 타고 감천문화마을에 내렸을 때, 산허리에 계단식으로 자리 잡은 집들의 질서 정연한 모습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우두커니 서서 풍경을 바라보니 예닐곱 살 때 살던 집이 떠올랐다. 주인집은 마당을 향해 난 넓은 문으로 들어갔고 그 집에 세 들어 살던 우리 가족은 마당에서 왼쪽으로 향하는 좁은 길로 들어가야 했다. 그 작고 좁은 집에서 살던 날들. 라디오 앞에 엎드려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던 동화를 듣던 오후와 마당에 있는 화장실에 혼자 가기 무서워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가던 밤과 태풍 때문에 집이 무너질까 봐 꼬박 밤을 새우고 새롭게 맞이하던 아침. 그 모든 시간이 긴 세월을 건너 나를 기다린 것 같았다.
고향 이타카로 돌아온 오디세우스의 심정이 이랬을까?
벅찬 환희로 가슴이 부풀어서 쉽게 발을 뗄 수 없었다. 제자리에 서서 어디부터 가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같은 버스에서 내린 외국인 2명은 어느새 사라졌다.
가방에서 모자를 꺼냈다.
눈이 부셨다.
마을 진입로에서 제법 큰길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마치 내 운명이라도 되는 듯 성큼성큼 걸었는데 방문객들이 너도나도 손에 지도를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는 발걸음을 돌려 작은박물관으로 향했다. 지도는 2000원. 직원은 지도 판매 수익금과 마을 기업 수익금으로 감천 마을 주민에게 다양한 편의,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했다. 그는 내가 산 지도를 펼치더니 감천문화마을을 다닐 수 있는 3가지 코스를 소개했다. 이어서 도장을 꺼내 '작은박물관' 칸에다 꾹 눌렀다. 근처에 있는 하늘마루에 가면 기념엽서를 받을 수 있다는 말도 남겼다.
이게 뭐지?
난 애초에 도장을 모을 생각 따윈 없었다.
왜냐고?
평소 나는 "선착순입니다."라는 소리를 들으면 뛰어가는 사람의 등만 멀거니 바라본다. 저 멀리 횡단보도가 보이는데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뀔 때, 타야 할 버스가 정류장을 향해 다가갈 때도 마찬가지다. 대학 다닐 때는 동기들 사이의 묘한 긴장감이 싫어서 시험기간에는 도서관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긴장, 긴박감, 승부욕, 무언가 이루겠다는 결심, 기필코 완성하겠다는 의지 따위는 제로에 수렴한다.
그런데 지도에 찍힌 도장을 보는 순간 '까짓것, 한 번 해보지, 뭐.'라고 생각했다. 뜻밖의 선택이었다. 내가 칸트가 될 리 만무하니 스스로 정한 규칙 따윈 지키지 않아도 된다.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지도를 들고 도장을 모두 모을 수 있는 제일 긴 C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예상 소요시간은 2시간이었다. 감천문화마을에 오전 10시 30분에 도착했으니 늦게 않게 점심을 먹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직원이 일러준 대로 먼저 하늘마루로 갔다. 사무실에 들어가 지도를 내미니 그곳 직원이 도장을 찍었다. 그는 '참 잘했어요' 도장을 겹쳐 찍으며 기념엽서를 주었다.
오, 이런 맘이구나.
잘했다는 뿌듯함과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도장 하나 덕분에 생겼다.
전망대로 올라가자, 아무도 없는 그곳이 나를 조용히 기다렸다.
벤치에 앉아서 4월의 햇살을 만끽했다.
곧 열기가 한여름의 뙤약볕처럼 느껴져서 서둘러 내려왔다.
지도를 보며 계속 걸었다.
사진을 찍고, 앉아서 쉬고, 또 걸었다. 그러나 도장 찍는 걸 깜빡하고 지나칠 때가 많았다. 도장 찍는 스탬프를 놓아둔 공간도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도장을 모두 모아야겠다는 결심 때문에 온 길을 다시 돌아가야 했다. 길이 멀고 경사가 급할수록 마음이 다급했다.
굽이굽이 펼쳐진 골목길, 아래와 위를 연결하는 좁고 가파른 계단은 알록달록한 집들의 외관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볼거리가 많아서 즐겁게만 돌아다닐 공간은 아니라는 사실을 골목길과 셀 수 없이 많은 계단을 걸으며 깨달았다.
감천동은 한국전쟁 당시 힘겨운 삶의 터전으로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민족 근현대사의 흔적과 기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옥녀봉에서 천마산에 이르는 산자락을 따라 질서 정연하게 늘어선 독특한 계단식 집단 주거형태는 감천동만의 독특한 장소성을 보여주고 있다. 뒷집을 가리지 않게 지어진 주택의 미덕이 살아 있는 감천동은 현대의 도시인들에게 예전의 추억을 회상하고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
-'감천문화마을 스탬프 지도'에서 인용
계단에 털썩 주저앉아 땀을 닦고 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몹시 불편한 거동으로 힘들게 계단을 오르고 계셨다. 계단에 설치해둔 난간에 매달리다시피 해서 걸음을 옮기셨다. 그가 간 곳은 계단 중턱에 위치한 작은 가게였고 입구에 설치해둔 벨을 누르니 방 안에 있던 주인이 뭐가 필요한지 물었다. 그는 담배 한 갑을 달라고 했다. 그에게 관광객은 익숙한 대상이었다.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주인이 담배를 가져오기까지 계단에 눕다시피 앉으셨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그를 지나쳤다.
좁은 골목길을 걷고 또 걸었다. 고개만 돌리면 주민들이 살고 있는 가정집이 보였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밥 짓는 소리,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 가족과 나누는 대화가 창문 사이로 흘러나왔다. 혹시나 그들의 삶을 무단 침입하는 존재가 될까 봐 서둘렀다.
골목길을 걸어야만 만날 수 있는 몇몇 스탬프 장소는 점점 부담이 되었다.
배가 고팠고, 지도에 남은 빈칸은 여전히 많았고, 걸어야 할 길은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감내 아랫길로 내려와 식당 몇 군데를 지나쳤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다시 걸으면 되지만 도장을 다 모으기 전까지는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이미 10km 정도를 걸은 뒤였다. 지쳤고 목이 말랐다. 물통은 바닥을 드러냈다.
딱 한 칸.
마지막 한 칸만 채우면 완성이다.
더 힘이 빠지기 전에,
더 배가 고프기 전에,
더 목이 마르기 전에
그 한 칸을 채우고 싶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수 없었다. 길 건너편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안경이 없어서 지도가 잘 안 보인다는 그는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계속 걸어가라고 말했다.
그가 알려준 대로 깎아지른 듯한 오르막길을 20분 정도 거슬러 올라갔다. 걸으면 걸을수록 이상하다는 생각에 다시 돌아오니 내가 처음 헤맨 지점에
'STAMP ZONE'이 보였다.
마스크 사이로 쓴웃음이 흘러나왔는데 흘러내린 땀을 닦아내고 싶지 않을 만큼 기운이 빠졌다.
내가 무얼 찾느라 밥도 물도 먹지 않고 이리 돌아다녔지?
왜 이걸 눈 뜨고도 보지 못했지?
머릿속에서 질문이 펑펑 터지는데 감당이 안 되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기 위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면서 손에 든 지도를 쳐다봤다.
마지막 한 칸을 그냥 비워둘걸.
눈 뜨고도 보지 못한 무언가가, 엉뚱한 길로 걷고 걸은 길들이, 기어이 도장을 찍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툴툴거리며 거슬러간 모든 거리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나는 영 개운치 않은 표정으로 창밖의 태양을 바라보았다.
눈이 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