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내내 아슬아슬했다. 미친 듯이 애를 쓰며 외면했지만 내 안의 어떤 부분이 서서히 말라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바싹 말라서 피는 증발하고 살은 쪼그라들며 뼈에는 구멍이 숭숭 뚫렸다. 모조리 바스러졌다. 회색, 흰색, 검은색 재로 내려앉았다.
그러다가 완전히 무너진 날이 찾아왔다.
B가 부탁을 하더니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나를 때리겠다는 말을 했다.
농담이었을까? 물론 그랬겠지. 하지만 참을 수 없었다. B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성별도 다르다.
잠시 뒤, 그를 찾아가서 기분이 좋지 않다는 말을 했다. 감정의 온도가 명백히 다르다는 사실을 느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사과를 듣고 건물 뒤편 주차장 벽에 머리를 박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체육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소란한 소리가 들렸다. 목덜미 위로 여름날의 햇살이 쏟아졌다. 지척엔 반짝거리는 생의 목소리가 운동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불과 몇십 미터 떨어진 곳에는 비참한 감정을 느끼는 내가 서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났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그가 먼저 한 적은 없다. 내가 고개를 숙이면 그는 고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아주 살짝만 숙인 채 재빨리 지나갔다. 나를 만날 때마다 협박과 으름장으로 포장한 재미없는 농담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농담을 할 때마다 내가 제대로 대답을 할 때까지 몇 번이나 확인하던 말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나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완전히 그 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를 예전과 달리 대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나를 무시하거나 외면한다기보다는 그저 자신이 또 실수를 할까 봐, 내게 무언가 잘못을 저지를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입을 닫았을까?
B가 어떤 의도로 더 이상 내게 말을 하지 않는지 알 것 같아서 2학기 개학한 이후로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가늘고 느슨한 고리로 이어진 인간관계에서, 언제든지 끊겨도 아무렇지 않을 사람 사이에서 그의 약한 면을 알아차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사실 별다른 의미는 없다. 이미 답을 알고 있지 않나-
당장 내 곁에서 사라져도 아무렇지 않을 사람이라 그가 강하든 강하지 않든, 약하든 약하지 않든 그건 나와 상관없을 일인데 이상하게도 그의 약한 면 앞에서 한 없이 생각이 많아졌다. 그도 나도 인간관계에서 극단적인 무언가를 행동 패턴으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게다가 그의 행동이 더 미숙하게 느껴진다면 내가 가진 오만함 탓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
그는 늘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왔을 터였다. 피하거나 외면하거나 도망치거나 내 일이 아니라고 치부하는 식으로. 나도 한 때 그랬으며 여전히 그런 면을 가지고 있고, 어쩌면 영원히 변하지 않을 행동일 수 있었다.
그에서 발견한 약함은 아마 나의 약함이었고,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터였다.
나도 그도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그가 나를 바라볼 때마다 느낄 당혹스러움이 전해져서,
그의 인생이 그런 식으로 흘러왔을지도 모른다는 섣부른 짐작 때문에,
그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약한 면을 자신과는 아주 멀고 먼 다른 존재가 알아차렸다는 기막힌 사실 때문에,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슬픔이 느껴져서,
나도 그도 그런 종류의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체념 때문에
딱하고 가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