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스카이웨이 전망대, 금수사
8년 전의 일이다.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데다가 직업도 같아서 타향살이에 지친 내게는 소중한 인연이 있었다. 연락을 몇 번씩 주고받다가 그의 집을 방문했고 우리는 각자의 아이들과 함께 서너 시간을 보냈다. 헤어지면서 "다음에 우리 집에 놀러세요."라는 말을 남겼지만 그는 이후에 내 연락을 피했다. 불행히도 첫 만남이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이유는 모른다. 그에게 무슨 사정이 생겼는지 혹은 내가 그에게 무슨 실수를 했는지 말이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내가 그에게 환영받지 못한 존재가 되었다는 비이성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워했다.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한 관계는 자주 내 머릿속을 헤집었다. 몹시 좋아하던 동료 선생님도 그랬다. 그가 나를 알기 전부터 나는 그를 알았다. 우린 같은 동네에 살았다. 대학시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서 전공 서적을 무릎 위에 올려둔 그를 종종 보았다. 그가 버스에서 내릴 때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우리는 4년을 함께 근무했다. 그는 나보다 어렸지만 언니 같았다. 우리는 시간이 흘러 서서히 멀어졌다. 내가 먼저 연락을 했지만 늘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그들을 종종 떠올리는 까닭은 내가 하지 못한 말과 듣지 못한 말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 때문에 우울한 회상에 젖어 있을 때면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그들을 다시 만나 그때 왜 그랬냐고 확인해야지만 관계가 정리될 것 같았다. 어리석은 고집이고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혼자 걷는 여행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4월 초량 이바구길과 망양로를 걸으며 미처 가 보지 못한 장소가 계속 생각났다. 유치환 우체통 앞에 있던 나무로 만들어진 전망대와 금수사. 그 길에서 채 만나지 못한 장소들이 나를 그곳으로 잡아끌었다. 기어이 그곳에 다시 가야만 초량 이바구길 여행이 완성될 것 같았다. 만약 보지 못한다면 나는 그 장소에게 발목이 붙잡혀 계속 괴로워하리라.
이것 역시 미련한 고집일까?
다행히 장소들은 사람과 달라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볼 수 있다.
범내골 앞에서 86번 버스를 탔다.
내가 좋아하는 버스는 86번이다. 버스에 편히 앉아 성북고개에서 시작하는 산복도로 풍경과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 언젠가 카페 인기글에서 '부산 버스의 위엄'이라는 짧은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쉽게 올라갈 수 없을 만큼 경사가 급한 곳을 몸집이 큰 버스가 자유자재로 내달렸다. 86번 버스가 그런 길을 달린다.
버스를 타고 부산컴퓨터과학고 앞에서 내렸다. 먼저 하늘길 전망대로 향했다. 나무 난간으로 만들어진 전망대의 원래 이름은 친환경 스카이웨이 전망대다. 나는 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맘대로 바꿔서 불렀다.
나무 난간은 제법 길고 몇 층으로 이루어졌다. 원래 그곳에 살던 나무들을 최대한 두고 전망대를 만든 모양이다. 녹음이 짙은 나무 그늘 아래 벤치까지 있어서 아침 식사를 끝낸 동네 어르신들이 많이 나와 계셨다.
그들이 울타리 위에 팔을 올리고 몸을 기댄 곳에서 나 역시 똑같은 자세로 풍경을 바라보고 싶었다. 낯선 관광객의 소망을 알지 못한 채 어르신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한담을 나눴다. 나는 그들을 과감하게 뚫고 걸어갈 수 없어서 옆에 조용히 섰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각양각색의 지붕과 바다와 부산항대교가 눈에 들어왔다.
원하는 장소가 불과 몇 미터 옆에 떨어져 있었지만 지금 여기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전망대 아래에서 보는 것과 전망대에 올라서 보는 풍경이 별 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내게 묘한 위안이 되었다.
발길을 돌려 금수사로 향했다. 지도 앱을 켜지 않았다. 표지판만 보고 절 옆으로 난 돌계단을 한참 올라갔다. 석가탄신일을 기념하기 위해 달아 놓은 연등 때문에 오랜 시간 계단을 걸어 올라가서야 내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은 공원이 눈앞에 나타나자 아이쿠 하고 다시 내려와 절로 들어가는 길을 찾았다.
금수사는 절이라기보다는 아담한 한옥 같았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절을 관리하는 사람도, 스님도, 보살님도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스님이 불공드리는 소리만 어디선가 들렸다. 내가 문이 활짝 열린 절에 무단 침입한 사람 같아서 살금살금 안마당으로 들어가 가만히 섰다. 금수사는 한국전쟁 당시 피난 온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 곳으로 산허리에 자리 잡은 많은 주택들처럼 분위기가 소박하고 평화로웠다.
잠시 후, 작은 연못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물이 졸졸졸 흐르는 소리를 들었다. 햇빛은 눈부셨고 물은 맑았다. 떨어진 풀이며 꽃잎이 물 위를 뱅글뱅글 돌며 떠다녔다. 손을 뻗어 한 개를 집어 올리려다가 그만뒀다. 수면 위에 어른거리는 내 얼굴과 나를 지켜보는 작은 부처상이 눈에 들어왔다.
금수사를 나와서 도로길로 가지 않고 위쪽으로 난 작은 샛길로 발길을 돌렸다. 길없음이라고 적힌 표지판 앞에서 오기를 부렸다. 여기로 오면 안 된다고 강한 경고장을 날리는 듯한 인상을 받아서 '정말 길이 없나? 내가 길이 없다고 못 갈 줄 아느냐?' 이런 못된 심보로 뚜벅뚜벅 걸었다.
길은 얕은 언덕 위로 이어졌고 길 끝에는 작은 공원이 있었다. 서너 분의 주민이 공원 공터에 만든 텃밭에서 일하고 계셨다. 뒤돌아서 앞을 바라보니 산 밑에 자리 잡은 금수사 지붕이 보였다. 더 이상 나아갈 길은 없었지만 뒤돌아서 바라본 풍경은 나쁘지 않았다. 여기 오지 않았으면 눈에 담지 못할 장면이었겠지.
이리하여 오늘 목표로 한 목적지를 다 둘러보았다. 시간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다시 도로가로 나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86번 버스를 타고 자갈치나 남포동에 내릴 셈이었다. 지난 4월보다는 햇살이 뜨거워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미 걸은 길이라서 새로울 것도, 색다를 것도 없었다. 오직 나무들만이 더 푸르게 빛났다.
그러다가 한 곳에 못 박힌 듯 멈춰 섰다. 그곳은 한 달 전이나 지금이나 내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앞으로 곧게 뻗은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이 길을 왜 그토록 좋아했던가? 길 위에서 팔짝팔짝 뛰며 신선한 공기를 흠뻑 마시던 내가 떠올랐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경이로운 풍경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서 재빨리 사진을 찍었다. 만약 차가 다니지 않는 길이었다면 신나게 내달렸겠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두 눈 속에 풍경을 꾹꾹 담아두던 내가 떠올라서 기분이 좋았다. 두 시간 넘게 뜨거운 햇살 아래 걷던 지친 다리는 어느새 활기를 되찾았다.
솔직히 말하면 기대했던 만큼 전망대 위에서 바라본 풍경이 색다르지 않았고, 금수사에서 홀로 거닐던 시간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가보지 않았던 장소들을 방문했다고 내 초량 여행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여행에서 완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던 나를 기억하는 일이 더 소중했고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일까?
그와 나 사이에 이별이 존재했다고, 그 이별이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서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한 관계라고 생각하는 일은 미련한 짓이겠지. 만남이든 이별이든 '제대로'라는 말이 어울리기에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너무나 복잡하고 서로 말할 수 없는 각자의 사정이 존재한다. 그들을 다시 만나 묻지 못한 질문을 하고 그 까닭을 듣는 게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리라. 그들과 함께 했던 짧고 긴 시간. 그 시간 속에서 부드럽게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곁을 내주던 날을 기억하는 일이 지금의 내게 더 위안이 되었다.
나는 오늘 하늘길 전망대와 금수사를 거쳐 잠시 잊고 지내던 멋진 풍경 앞에서 마음의 짐을 훌훌 털어냈다. 미완의 이별일지언정 그것은 그것대로 놓아두고 다음 길을 향해 부지런히 걷는 일만이 내 운명임을 안다.
나를 지나간 모든 사람들에게 평온과 행복을 빌며 86번 버스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