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 북항 공원을 다녀온 뒤 목이 마른 채로 부산역 앞 건널목을 건넜다. 내게 2시간 30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또다시 어디론가 떠날 순간이다.
나는 '창비 부산'으로 향했다.
출판계 최초로 지역에서 독자를 만나는 복합문화공간인 창비부산은 책과 이야기, 책과 독자, 작가와 독자를 이어주는 문화공간으로 책을 좋아하는 모든 독자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작가의 집필 모습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작가의 방과 모임과 각종 강연을 진행하는 창작홀, 비평홀, 그리고 계간지의 방으로 꾸며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창비부산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부재를 확인하는 일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 『푸른 사자 와니니』 시리즈를 담은 파란색 책 박스가 몇 개 보였다. 청년 한 명이 상자 하나를 번쩍 들더니 계단 위를 성큼성큼 걸어갈 리 만무하고 온 몸의 힘을 쥐어짜듯 힘겹게 발걸음을 뗐다. 두 손이 가벼운 나는 그를 돕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다다다다 계단을 내려와 마지막 상자를 들고 올라갔다.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백 년 된 건물의 계단에 가득 차서 상자 무게를 짐작케 했다. 2층에 들어서자 청년이 다른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했다.
"여기 처음 오셨나요?"
"네."
그는 창비 부산에 대해 소개를 해주었다. 숨을 몰아쉬며 한 음절 음절 겨우 말하는 모습이 힘들어 보였다.
보다 못한 내가 말했다.
"1분이요, 1분만이라도 쉬세요. 나중에 설명을 들어도 돼요."
"괜찮습니다. 제가 힘이 좀 약해요. (살짝 웃음) 작가의 방은 김중미 작가님 책과 작품 세계에 대해..."
미안한 소리지만 그가 말하는 내용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 시간이 얼른 지나가길 바랐다.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세월과 빛에 침식되어 군데군데 벗겨진 벽의 일부, 반들반들한 새 책이 가지런히 놓인 탁자, 난간 받침대 위의 작은 화분, 문 너머 보이는 빛이 환한 공간. 심장이 쿵쾅거렸다. 내 마음은 그의 목소리에서 벗어나 저만치 걸어갔다.
마침내 목소리가 멈췄다. 앞으로 천천히 나갔다.
손을 뻗어 우둘투둘한 문틀과 한때 그곳에 있었을 문을 눈으로 어루만졌다. 강렬한 무언가가 솟구치며 사무치게 외로웠다. 부재한 누군가가 그리웠다.
학창 시절 글 친구들.
어떤 친구는 내 마음이 네 마음을 껴안는다는 잊지 못할 말을 남겼고, 또 다른 누군가는 14살의 나에게 프로스트의 시를 소개했다. 특활시간에는 친구와 함께 학교 벤치나 풀밭에 벌렁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추억이 출렁거리면서 눈앞에 밀려왔다. 그 시절로부터 나는 얼마나 멀어졌는가? 부재한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무언가 이룰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푹 빠져 자습시간과 야자 시간마다 몰래 책을 읽고 글을 쓰던 나는 이제 없다.
이게 삶이라면 얼마나 허무한가?
그래, 끝은 아니지.
부재한 자리에 새로운 삶이 들어섰다. 내 삶에서 저벅저벅 걸어 나간 그들이 진정 잘 지내기를 바라며 몇 되지 않는 곁의 친구들을 떠올린다. 별 다른 희망을 가지지 않더라도 그저 하루 동안의 내 몫을 살아낸다. 별 볼 일 없는 나날이지만 이대로도 꽤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내 삶을 살아내는 일
나는 계속 걸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방이 나타났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가 내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독서는 생의 어려움으로부터 그저 도피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영혼을 채우거나 위로해주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책에 몰입하는 나 자신도 못마땅하게 여겼다. 문제에 직면하기 두려워서 혹은 나약한 내 모습을 감추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느꼈다. 돌이켜보면 죄다 틀렸다.
*물고기들이 또 수면 위로 올라온다. 죽지 않으려고 들이마시는 공기 한 모금. 그 한 모금이 독서이다.
*나는 온 세상에서 휴식을 찾았으나, 한 권의 책과 더불어 구석진 곳이 아닌 어디에서도 휴식을 발견하지 못했다.
- 파스칼 키냐르『떠도는 그림자들』중에서
나는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 건지도 모른다. 삶을 너무나 사랑해서, 생으로부터 도피하지 않기 위해서 책과 글에 몰입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채워진 에너지로 힘을 얻어 꾸역꾸역 삶을 살아냈다. 누가 읽으면 지겨울 법한 내용의 글을 이렇게 매번 다짐하듯 쓰는 이유는 이 모든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자기혐오의 시간과 약을 먹어도 어찌할 수 없는 내면의 우울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
매일 행복할 수도, 매일 슬플 수도 없는 하루.
나는 나름의 방법으로 꽤 괜찮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