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내가 나를 껴안을 수 있다면

오륙도 스카이워크

by 키키 리리

나는 주로 부산의 원도심을 걸었다. 산복도로나 부산역 근처의 초량, 감천문화마을이나 흰여울 문화마을이 그렇다. 세월과 함께 이리저리 깎이고 풍화된 오래된 주택. 손만 뻗으면 왠지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내 어린 시절의 동네가 대체로 그런 집들과 함께 형성된 까닭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원도심을 걸을 때마다 부처님의 커다란 손바닥 안에 있는 것처럼 포근했다.


사람이 낡은 탓일까? 혼자 싱긋 웃고는 그렇지는 않을 거라며 스스로 생각을 바로잡았다. 살아보지 않은 세월과 장소에 대한 근원적인 그리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겠지. 나에게는 부산의 원도심이 그랬고 누군가에겐 음악이, 책이 그런 존재일 거다.


이날도 부산의 '닥밭골 벽화마을과 민주공원'을 가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변덕쟁이처럼 마음을 바꿨다. 내가 가려던 방향과는 다른 장소, 오륙도로 향했다. 부산에 오랫동안 살면서 오륙도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머리를 스쳤다.


선택에 많은 이유를 찾으려면 실행이 늦다. 오후 1시 30분까지는 집에 돌아와야 한다. 그냥 직진이다.


반소매 티셔츠 위에 올이 성긴 카디건을 걸친 채 집을 나섰다.




내 고향, 부산


27번 버스를 타고 오륙도 스카이워크 정류장에 내렸다. 해파랑 편의점을 지나 오륙도 스카이워크로 향했다. 해운대 쪽을 바라보니 그리 화창하지 않은 날씨와 낮게 깔린 구름이 무겁게 느껴졌다. 여기까지 왔는데 날씨가 흐려서 속상해질 찰나, 아래쪽에서는 파도가 커다랗고 하얗게 부서졌다. 파도가 절벽 바위에 부딪쳐 하얀 포말과 함께 흩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며 연거푸 탄성을 질렀다. 얼굴을 향해 정면으로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눈을 쉴 새 없이 깜빡였지만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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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어 좋았고,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어서 더 오래 서 있었다. 집에서 1시간 거리에 이토록 멋진 바다를 볼 수 있는 지역에 산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소중하게 느껴졌다. 바다와 산, 강과 들판, 숲과 오솔길, 큰길과 작은 길, 사람이 많은 길과 적은 길, 내가 가본 길과 가보지 않은 길. 그 모든 공간이 제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부산에 살지만 아직도 가보지 않은 수많은 장소들을 떠올리면 여전히 많은 보물을 품고 있는 옛날의 보물선처럼 부산이란 공간이 묵직하게 느껴진다.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곧 제법 넓은 광장에 들어섰다. 그곳에서 오륙도를 볼 수 있었는데 안내판의 오륙도 사진과 눈앞의 오륙도를 번갈아 살펴보았다. 아무리 헤아려봐도 2개밖에 없는데 6개의 섬이 저기 있다니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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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너그럽게 대하는 일


오륙도 스카이워크는 2012년 9월에 착공을 시작하여 2013년에 10월에 개장하였고 특수 제작한 유리를 사용하여 안전하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강화 유리가 긁힐까 봐 안내원 분의 지시에 따라 덧신을 신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의 은하수 다리와 북항 친수공원 다리 위에서 바닥이 유리로 된 곳을 몇 차례 지나간 적이 있다. 내가 잘 건널 수 있을까, 잠시 걱정했지만 나 말고는 관광객이 거의 없어서 천천히 발을 뗐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뒤로 잡아끄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나를 확 놓아서 절벽 위에 던져놓았다. 아래를 보지 않으려고 애를 쓸수록 고개가 자꾸 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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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익숙해졌는지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핸드폰을 들고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두려움은 저만치 달아났고 이 투명한 공간 위에 내가 멀쩡히 서 있는 데다가 사진까지 찍을 여유가 생겨서 스스로 대견하다고 믿었다.


요즘 나는 자신을 굉장히 후하게 대접하려고 노력 중이다. 작은 일에 성취감을 느끼고 잘했다고 자주 칭찬한다. 흔한 말로 '뇌를 뺀 상태'로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낸다.


20220608_103442.jpg 오륙도 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본 풍경


사실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인생의 허무와 자기 파괴적인 생각에 사로잡힌다. 내가 쓰레기 같다고 느끼거나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치부하거나 '이렇게 살다가 결국 죽겠지.'라는 자포자기한 심정과 격렬히 맞붙는다. 손으로 애써 잡은 끈을 놓아버리면 눈물이 차오르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 평생 이런 감정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그렇지만 계속 손으로 끈을 잡고 있다.


전날 저녁에 다음날 갈 곳을 검색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애들을 챙겨 학교로 모두 보낸 뒤 집을 나선다. 운동화만 신으면 그만이다. 그러면 어느새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새롭고 낯선 곳을 걷는 나를 발견한다. 하늘을 걸을 수는 없지만 땅 위를 걸으며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낀다. 걸으면 기분이 좋고, 자꾸자꾸 걸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인생의 고난이나 힘듦이 걷는다고 사라지지는 않지만 걷는 행위 자체가 어느 순간부터 나를 살리고 있었다.




오, 아버지


스카이워크에서 돌아와 해녀촌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스카이워크를 바라보았다.


20220608_104156.jpg 아래에서 바라본 오륙도 스카이워크


내가 나를 껴안을 수 있다면 바로 이 순간이리라.


눈을 커다랗게 뜨고 이 풍경을 마음속에 오랫동안 담아놓았다. 흐린 하늘이 점점 개고 있었다. 그 뒤 이기대 산책로를 따라 막 걷고 있는데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리리야, 어딨노? 감만동 OO반점으로 온나."

"네?"

"검색해봐라. 버스 타면 될 거다."

"어, 한 50분 걸리겠는데요?"

"그래? 식당 근처에 있을 테니 천천히 와. 지금 버스 타고."


오, 아버지!


나는 걸어온 길을 되돌아 달려나갔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을 향해 힘껏, 아주 힘껏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