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광사
누구나 볼 수 있는 브런치에 우울증에 관한 글을 계속 쓰고 있으니 가끔 심리문제와 관련된 메일을 받는다. 우울증, 무기력, 회피, 불안장애 등. 물론 당사자가 이런 메일을 보내지 않는다. 그를 걱정하는 또 다른 누군가, 바로 가족이 보낸다.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의 애타는 마음과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단 한 번도 메일을 편히 읽은 적이 없다.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바라며 내 조언이 사랑하는 가족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그 바람을 소중히 여겨서 움직이는 커서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사연 속의 당사자는 나와는 너무 다르고 내게 효과가 있었던 방법이 그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란 보장이 없다. 나 역시 그를 돕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 마음이 때론 너무 부담스러웠다. 날 항상 짓눌렀던 '책임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발목을 낚아채려고 했다. 더구나 정성스레 쓴 메일에 상대방이 잘 받았다는 답장조차 없으면 우울했다.
내가 보낸 메일이 상대방의 마음에 차지 않았으리라.
내가 그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겠지.
화살이 줄곧 나를 향해 날아왔다.
2년 전, 우울증이 정말 심할 때는 집 근처 절에 가서 108배를 했다. 무릎이 후들거리고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이 눈물로 뭉개졌지만 절에 가면 마음이 편안했다.
이번엔 다른 절로 향했다. 108배를 하기보다는 그저 걷고 싶었다. 절 뒤의 오솔길. 호젓하고 조용한 길 위에서 너덜거리는 마음을 바싹 말리고 싶었다. 그저 집에 앉아서 자신만 탓하기에는 날씨가 정말 좋았다.
부산진구 15 마을버스를 타고 삼광사 입구에 내렸다. 조금 걸어올라 가자 그만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익히 알던 절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서 놀라웠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이곳저곳을 다니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때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멍하니 서 있거나 있지도 않은 소망을 빌어볼까 고민을 했다.
시간이 점점 흘렀다. 내게 남은 시간은 3시간 정도였다. 아이들이 하교하기 전까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삼광사의 크고 화려한 모습에 넋을 놓고 있다가 오늘 내가 여기에 온 이유를 상기했다.
살면서 타인을 원망하거나 남 탓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했을 때, 우울증을 무려 10년이나 앓는다는 사실을 아프게 생각할 때, 항우울제를 먹어도 나아지지 않는 나를 볼 때. 그 모든 순간들마다 나에게 화살을 쏘았다. 화살을 쏘는 이유는 과녁에 된 대상을 맞추기 위해서이다.
그동안 나는 스스로를 얼마나 죽여왔을까?
화살을 내려놓고 싶었다.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화살을 쏘고 싶지 않았다.
삼광사 '힐링 숲길'로 향했다. 아름답고 화려한 삼광사 뒤편으로 작고 조용한 숲길이 있다. 편백나무와 차나무, 소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둘레길을 천천히 걸었다. 나무 기둥에 낀 초록색 이끼와 땅 위로 드러난 구불구불한 뿌리, 청명한 초록 잎사귀, 반짝이는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손바닥을 활짝 펴서 손가락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게 두었다. 뻗은 나뭇가지 모습대로 땅 위에 생긴 그림자를 밟았다. 윙윙거리는 벌, 울음소리만 들리는 뻐꾸기, 직박구리, 곤줄박이, 멧비둘기를 나무들 사이에서 찾았다.
뜬금없지만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화살을 내게 쏘아대며 자기 비난에 빠져 있기에는 찰나의 순간이 눈부셨다.
소설 『스피릿 베어』에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곰과 사투를 벌이다가 거의 다 죽게 생긴 콜이 바닥에 누워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아름답다! 손 언저리의 촉촉한 이끼와 짓눌린 풀조차 아름다워 보였다. 그 정교한 생김새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이걸 왜 진작 몰랐을까 하는 아쉬움에 잠겼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것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살아왔나? 아름다운 것들을 얼마나 많이 파괴해 버렸던가?
- 벤 마이켈슨 『스피릿 베어』 중에서
콜은 타인에게 화살을 쏘았지만 그와 나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극한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을 때 비로소 삶이 아름답다고 느낀 것. 고요한 숲길을 걸으며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것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살았는지 후회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나 자신을 화살을 쏘아대며 파괴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후회했다.
천천히 길을 따라 걸으며 풀숲 사이에, 나무들 사이에 화살을 내려놓았다. 바람과 햇살과 비가 뾰족한 화살촉을 부드럽게 마모시켜 더 이상 누구도 아프게 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오솔길을 따라 길이 등산로로 이어지는 곳까지 걸어 올라가 다시 내려오길 두어 차례 반복했다. 올라간 길을 다시 내려오고,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갔다. 이 단순한 반복이 좋았다.
입을 열어 무언가 좋다고 말한 적이 언제였을까? 생각나지도 않을 만큼 까마득했다.
좋다
내가 좋다
아름답다
삶이 아름답다
나는 고요히 되뇌며 내가 놓아둔 화살이 무사히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길 바랐다. 그 누구도 아프게 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고, 탓하지 않고 그저 지나가길 바랐다. 무엇보다도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기를, 내게 메일을 보낸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누군가도 평안하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