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황하면 말을 잘하지 못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무례한 요구를 하거나 함부로 행동할 때,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밀어붙일 때 심장이 쿵쾅거리고 얼굴이 새빨개진다. ‘이게 아닌데…….’라고 머릿속으로 생각하지만 이미 상황은 끝난 뒤였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면 ‘왜 멍청하게 듣기만 했을까?’라며 자책했다. 상대방에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실망 때문에 밤새 잠을 뒤척였다. 매번 이런 상황을 만날 때마다 억울함과 속상함 때문에 쉽게 우울의 구렁텅이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만성적인 불안과 우울, 강박적 사고에 시달렸다. 우울은 표출하지 못한 감정을 억누를 때도 발생한다. 내가 억울한 상황을 만날 때마다 더 우울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작년에 지필평가 문제 때문에 동 교과 선생님과 의견 충돌이 있었다. 시적 화자를 시인과 동일시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였다. 내가 출제한 시는 윤동주의 <서시>였다. 시인의 고뇌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실제 수업할 때 윤동주의 생애를 통해 그가 왜 부끄러움 없이 살고자 했는지, 왜 모든 죽어가는 대상을 사랑하고자 마음먹었는지 설명했다. 하지만 동료 선생님은 내 의견에 반대했다. 자전적 소설이라고 해서 작중 서술자와 작가를 동일시할 수 없다는 근거를 들었다.
결국 문제를 수정했다. 하지만 끝까지 그의 의견에 수긍할 수 없었다. 다투기 싫어서 그의 견해를 받아들이는 척했지만 내면은 반발심으로 가득 찼다. 작품에 따라서 시적 화자와 시인을 동일시할 수 있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 사건은 일어난 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나를 괴롭혔다. 그의 강한 어조와 확신에 찬 표정이 쉽게 소화되지 않았다. 그가 “왜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물어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서시>에서 시인과 시적 화자가 일치한다고 생각했는지 단 한 번이라도 물어봤으면……. 하지만 그건 나의 욕심이자 잘못이었다. 타인은 당연히 나를 배려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존재라는 사실은 잘못된 믿음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의견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자책과 억울함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구하기 위해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찾아야 했다. 일단 억울한 순간을 적은 뒤, 그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찾기로 했으면 다른 누구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직 내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 어차피 상대방은 내가 이런 행동을 하는지조차 모른다. 자신의 의견을 숨기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일이 몸에 밴 사람일수록 과감하게 털어놔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위해서다.
나는 그 상황에 최대한 몰입해서 쓰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과 의견이 다릅니다. 그렇게 말씀하셔서 당황스러워요. 소설이라는 장르가 작가의 상상력과 허구를 바탕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시와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윤동주의 <서시>는 시적 화자가 시인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부끄러움이 없는 삶에 대한 화자의 의지가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윤동주의 삶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그렇게 설명했고요. 시에 따라 시인과 시적 화자가 일치할 수도 있습니다. 제 의도대로 출제하는 것이 맞습니다.
나는 온점을 찍고 깜빡이는 커서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불편하고 애매모호한 감정을 찾아서 당황스럽다고 표현하고 내 견해를 자세히 밝혔다. 상대방에게 이런 말을 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흔들며 무시해버렸다. 껄끄러웠지만 이 사건을 그냥 묻어두지 않고 끄집어내서 다시 마주한 내가 용기 있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보통 고통스러운 내면을 담아내는 글쓰기를 치유의 과정으로 본다. 글을 쓰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글을 쓰면서 나를 다독일 수 있다. 내가 무언가를 했어야만 한다고 믿은 순간을 붙잡아 글을 쓰면서 하지 못했던 말을 쏟아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설령 잘하지 못하더라도 시도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글로 쓰지 않으면 그냥 후회로 보낼 뻔한 사건이 글로 써서 표현하자 그 일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사건으로 탈바꿈했고, 스스로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격려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