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통해 방법을 찾다

by 키키 리리

우울할 때마다 글을 쓰지만


나는 우울할 때마다 글을 자주 썼는데 다른 사람들이 읽기엔 힘들고 벅찬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며칠 전에 또 토하고 말았다. 몸에 상처를 내거나 머리를 벽에 박는 식의 자해 행위는 더 이상 하지 않지만 구토만은 도무지 멈출 수 없다. 저녁을 잔뜩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식빵에 딸기잼까지 발라 먹었으니 속이 견디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문제는 이런 폭식 행위가 스스로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배부른 상태에서 조금만 정신 차리면 토하고 싶다는 생각을 멈출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날도 있다.

수면 아래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뱀장어나 물뱀, 그런 길고 미끌거리는 녀석들이 떠올라서 끈적끈적하고 기분 나쁜 점액질이 목구멍에서 떨어져 나올 때까지 손가락을 넣고 웩웩거린다.

구토 후의 기분은 상쾌하다 못해 날아갈 지경이다. 목까지 차올라 넘실거리는, 채 위장으로 직행하지 못하고 내 속을 끝없이 더부룩하게 만드는 그것들을 모조리 뱉어내고 나면 기분은 언제나 좋았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쓰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다르게 살고 싶었으나 항우울제로는 부족했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나는 드라마를 즐겨보지는 않지만 조금씩 나와 닮은 듯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국 드라마 <노멀 피플>을 보고는 뭐라도 쓰고 싶었다. 왜 드라마를 보는 내내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 들었고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는지 이유를 찾고 싶었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해 봐도 또렷하게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결론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채 무작정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메리엔은 자신을 미워하고 질투하는 오빠에게 끊임없이 무시당하지만 별달리 저항하지 않았다. 동생에게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아들을 그저 내버려 두는 메리엔의 엄마 역시 정상이라 보기 힘들었다. 급기야 오빠는 메리엔의 코뼈까지 부러뜨리고 그들의 엄마는 지켜만 볼 뿐이다.

나는 몇 년 전부터 타인의 어린 시절과 양육환경을 그의 성격이나 방어기제와 연관 지어 해석하려고 했다. 아마 내 우울증이 그런 요인들로부터 빚어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메리엔을 이해하기는 한결 쉬웠다.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지만 끊임없이 자기 비하에 시달리는 메리엔이 가학적인 성행위에 빠지자 그것 또한 너무나 메리엔다운 선택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메리엔은 알고 있었다. 그것이 나쁜 것임을, 자신을 너무나 지치게 하고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메리엔이 처음으로 섹스를 한 상대는 코넬이었다.

코넬: 네가 원하면 멈출 수 있어.
메리엔: 그럴 일은 없어.
코넬: 만일 아프거나 그러면 멈출 수 있어. 어색하지 않아.
메리엔: 고마워.

메리엔이 마음속으로 늘 그리워하고 돌아가고 싶었던 곳은 코넬의 옆자리였다. 드라마에서 저 장면은 딱 한 번만 등장했고 메리엔의 회상 속에서 다시 나온 적은 없지만 나는 내내 코넬의 목소리가 메리엔을 따라다녔다고 믿었다. 자신의 멍든 팔을 바라볼 때도, 누군가와 사귀고는 있지만 여전히 텅 빈 것 같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때도 메리엔은 항상 그를 그리워했다.

메리엔이 자신의 손을 묶고 눈을 가리려는 남자에게 더 이상 못하겠다고 말하자 그는 메리엔의 말을 무시했다. “이게 네가 원하는 거였어.”라고 말하는 남자에게 메리엔은 생기가 하나도 없는 얼굴로 “지쳤어.”라고 말했다.

마침내 코넬이 메리엔을 구한 것일까?

코넬 역시 메리엔을 몹시 사랑했고, 메리엔이 자기 자신을 비하하며 자괴감에 빠질 때마다 그렇지 않다며, 넌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언뜻 보기에는 코넬이 메리엔을 구한 것처럼 느낄지도 모른다. 한쪽 면만 바라보고 산 사람에게 다른 면이 있음을 알려주었으니까. 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열어주었다고 해도, 다른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고 해도 그쪽을 향해 걸을지 말지는 결국 자기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결국 메리엔을 구한 사람은 메리엔 자신이었다.


여기까지 쓰고 나자 내가 이 드라마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찾은 기분이었다. 먹구름 뒤에 빛나는 태양을 찾은 것처럼 머릿속이 환해졌다.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결국 고통 속에서 나를 꺼내 줄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울한 내가 글을 쓰고 매일 일정한 시간에 운동을 하고 자기 전 책을 읽는 행위는 사소해 보이지만 내가 나를 구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기왕 우울한 감정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면, 고통스러운 과거 속에서 미운 모습을 찾았다면 자신을 구할 수 있는 방법 역시 쓸 수 있다. 당신은 이미 해답을 알고 있다. 단지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뿐이다.




글쓰기가 답을 찾도록 도와주다


이렇듯 글쓰기는 차분히 나를 마주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고통스러운 과거를 쓰기 시작하면서 당시 내가 보지 못하거나 알지 못했던 진실을 찾도록 도와준다.


아이를 낳고, 몇 달 뒤에 병원을 방문했다. 내 상태를 보다 못한 남편이 등을 떠밀었다. 나는 거부하지 않았다. 스스로 제어가 안 되었다. 그냥 방치한다면 끔찍한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의사는 모유수유를 끊고 항우울제를 복용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당시 나는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적어도 아이에게 1년 동안은 모유 수유를 해야 한다. 상황이 바뀌면 저절로 기분이 나아진다. 예를 들어 아이가 조금 커서 밤에 통잠을 자거나 나를 도와줄 사람이 함께 한다면 자연스럽게 우울증은 사라진다.

지금 생각해보면, 터무니없어서 웃음조차 나지 않는다. 남편도 주위 가족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들이 내 상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보다는 우울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었다. 결국 3년이 지나서야 나는 항우울제를 처음으로 복용하였다.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린 가장 큰 이유는 아이 때문이었다. 나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3년 동안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짜증과 무기력은 그림자처럼 달라붙어서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런 상태를 초래한 나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피할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존재는 나였다. 단순하고 명백한 사실을 나는 잊고 살았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테다. 당장 모유수유를 끊고, 약을 복용하고, 나를 돌봤을 것이다. 그토록 긴 시간을 우울과 불안 속에 나를 던져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후회스러운 과거가 떠올라 힘들었지만 내가 나를 위해 진정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끝에 썼다. 쓰면서 다짐했고, 다짐하면서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똑같은 상황이 또다시 닥친다면 그 무엇도 아닌 오로지 나에만 집중해서 살기로 말이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러한 생각을 끄집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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