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증 환자다. 환자라는 사실을 매번 의식하지는 않지만 가끔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가 많다. ‘우울증 환자라서 그런가?’라고 무심히 지나치려 해도, 밤에 자려고 누우면 내 행동이 마치 틱톡에 나오는 짧은 영상처럼 쉴 새 없이 재생된다. 스위치를 내리듯 생각을 멈추면 좋겠지만 쉽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그 장면을 글로 썼다.
초저녁이었다. 재활용 쓰레기가 잔뜩 담긴 커다란 바구니를 양손 가득 들고 집에서 나왔다. 저쪽에서 학생 2명이 뭐라고 수군거리면서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돌리고 그들을 지나쳤다. 그들은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짧게 내 이름을 불렀다.
“OO샘!”
나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그들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도망치듯 그 자리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달아났다.
나는 그들이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임을 단번에 알아챘다. 나는 직장에서 무척 가까운 곳에 살며, 아파트 주위에서 학생들과 종종 마주친다. 나는 학교 밖에서 학생들을 만나면 인사를 나누지만 그날은 무슨 연유인지 그들을 끝내 외면했다. 내 행동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당시에는 무조건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심리상담을 받을 때, 상담사는 내게 “왜 그렇죠?”라는 질문을 계속 던졌다. 특히 대답하기 힘들 정도로 집요하게 파고들 때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직장에선 거의 말을 안 해요. 그저 일과 관련된 말만 하고, 최대한 입을 닫죠. 그리고 묵묵히 일만 합니다.”
“왜 그렇죠?” 그가 내게 물었다.
“저를 드러내기 싫어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서 저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저 역시 누군가가 친밀하게 다가오면 부담스러워요.” 나는 내가 떠나보낸 사람들을 떠올려보았다.
“왜 드러내기 싫어요?” 그가 재차 물었다.
나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한참 생각했다.
“두려워요. 나를 표현하려면 말을 해야 하죠. 제가 말을 하기 위해서는 굉장한 용기를 내야 해요. 그런데 상대방이 제 말을 열심히 들어주는 것 같지 않으면 눈치를 보죠. 그리고 제 말이 재미없을까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시시껄렁한 이야기에 불과할까봐 걱정해요.”
나는 완벽주의 성향이 말하기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대화를 원활히 잘해야 한다는 생각,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이런 생각들이 나를 억누르고 있었다.
- 졸고『나는 너무 오래 참았다』 중에서
나는 학생들을 만났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왜 학생들을 외면했을까? 도대체 왜 모자를 눌러쓰고 얼굴을 돌린 채 재빨리 도망쳤을까?
나는 헐렁한 옷차림에 양손 가득 쓰레기를 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말 그대로 집에서 뒹굴다가 슬리퍼를 끌고 나온 자연인이었다. 반면 학교에서 나는 어떻지? 나름 옷도 갖춰 입고 깔끔한 모습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후줄근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끊임없이 의식했다.
그러면 그다음 질문을 해야 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어때요?”
이 질문은 굉장히 중요하다. 부정적이고 그릇된 사고방식을 깰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후줄근한 내 모습, 쓰레기를 잔뜩 들고 있는 나를 봤다고 해서, 선생님이 이상하고 초라하다고 비난할까? 예전에 학생들이 말했다. 학교 밖에서 우연히 선생님을 만났을 때, 좀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달려와서 인사하는 이유는 선생님을 만나서 반가웠기 때문이라고, 서먹하거나 별로 친하지 않은 선생님이라면 절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갑자기 학생들에게 미안해졌다. 학생들에겐 내가 어떤 옷을 입고 무엇을 들고 있는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선생님을 만나서 반갑고 신기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들이 나를 비난하고 흉 볼 이유는 없었다. 내가 이상하다고 욕할 이유도 없었다. 그들은 나를 탓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왜 저렇게 후줄근하게 입었을까? 쓰레기 잔뜩 들고 있네. 별로다.’ 이렇게 비난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는다.
나는 글을 쓰면서 완벽주의에 갇혀 여전히 인간관계에 서툰 자신을 발견했다. 서글프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나에게 이 말을 해야 했다.
‘나를 탓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아.’
코끝이 시큰해졌다.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한 장면을 붙잡아 글을 쓰니 내 마음에 자리 잡은 두려움과 잘못된 생각, 그리고 이런 불안 속에서 나에게 해줄 위로의 말을 찾게 되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