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대해 쓸 수 있다면 용기가 생긴다

by 키키 리리

두려움을 깨는 일이 두렵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하던 2020년 2월 무렵, 나는 고민에 빠졌다. 우울한 내면을 담아내는 글을 어떻게라도 쓰고 싶었는데 이유는 단순했다. 자기표현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 욕망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림으로, 음악으로, 몸짓으로 표현하지만 내겐 글이 중요한 방편이었다.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어디까지 쓸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교사. 불우하지 않지만 결핍 많은 유년 시절을 보냈고 타고난 기질은 예민하기 그지없다. 사람들이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웠다. 교사는 마음이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당시 썼던 글을 살펴보자.


나의 세 번째 정신과 의사는 자신의 공황장애를 털어놓았다.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나는 그를 이해했다. 그 역시 일반 사람과 똑같구나, 아니 매일 사람들이 토로하는 힘든 일만 듣고 앉아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어떻게 이겨냈는지 고백한 책이 종종 출간된다.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독자의 공감을 얻는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의사와 똑같은 위치에 있는가? 나는 나의 정신적 문제를 공개적으로 고백할 수 없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름도, 얼굴도, 직업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내 브런치를 오래 봐 온 사람들은 내 직업을 짐작하고 있을지도.

제발 모르는 척해주길 바란다.


어떻게든 내 직업을 감추기 위해 노력했다. 심지어 알게 되더라도 모르는 척해달라고 말하는가 하면 학교에서 겪은 힘든 일을 시시콜콜 말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두리뭉실하게 '직장'이라고 퉁치며 내가 교사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우울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른 이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라는 의사의 조언을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싶었다. 학교에서 겪은 힘든 일이나 어렵고 서러운 일을 자세히 적으며 엉킨 마음을 풀고 싶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보다는 자기표현 욕구가 더 컸다. 브런치에 '우울하지만 매일 출근합니다'라는 매거진을 만들어 우울증을 앓는 교사가 학교에서 겪은 일을 천천히 올리기 시작했다. 내가 걱정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솔직한 고백이 사람들의 공감을 샀고, 따뜻한 응원의 댓글을 받았다.


내가 브런치 프로필에 '교사'라는 키워드를 선택하기까지 1년쯤 걸렸다. 처음엔 절대 밝힐 생각이 없었다. 사람들은 대게 우울증을 앓는 사람을 정신력이 약하고 마음이 여린 존재라고 생각한다. (면전에서 내게 그런 소리를 한 사람도 있다.) 자신이 맡은 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교사인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웠다. 이 공간에서 나를 직접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내 글을 읽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현실 세계의 '나'란 존재가 어디 사는 아무개인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웠다. 나를 이상한 존재로 생각할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나의 세 번째 정신과 의사는 공황장애 때문에 약을 복용 중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자신의 병을 거리낌 없이 밝힌 점 때문에 놀랐다. 그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지만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한다. 심지어 의사의 따뜻한 말과 마음 덕분에 환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나는 그의 병이 일에 지장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 이런 생각을 나에게 적용하지 않았던 걸까? 의사도 의사 이전에 한 인간이며, 충분히 아플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가혹하게 평가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걸까? 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지만 충분히 열심히 일했는데.

자신을 가혹한 검열 위에 올려놓은 건 나였다. 그렇게 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나를 아끼지 않고, 너그럽게 대해주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기대 숨 쉴 수 있을까? 온전히 내 아픔을 이해해 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 게다가 내가 전전긍긍할 만큼 남들은 나에 대해 오래 생각하지 않는다. 타인이 나를 보고 뭐라고 생각하든 말든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들에겐 '한 때, 한 순간'일 뿐 그들의 말은 나를 영원히 따라다니지 않는다. 의사가 이런 걸 고민했더라면 내게 자신의 병을 밝히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교사이지만, 한 인간으로서 충분히 마음이 아플 수 있다. 그럴 수 있지.


렇게 글을 쓰면서 나는 내 안의 견고한 벽을 하나씩 깨뜨렸다. 그러자 용기가 생겼다. 절대 할 수 없으리라 믿었던 행동을 실천하고 난 뒤에 생긴 용기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석과도 같았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점을 극복하고 난 뒤에 얻은 결과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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