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부터 우울증과 함께 살고 있다. 병원 진료, 심리 상담, 약 복용, 운동, 글쓰기 등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졸업’의 그날은 여전히 요원하다.
지난 세월 동안 난 늘 제자리걸음이었을까? 이런 질문을 하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심하고 인생의 패배자 같았다. 하지만 내가 놓친 부분이 있었다. 자신의 변화를 스스로 찾기란 상당히 어렵다. 우리가 매일 보는 사람의 몸무게 변화를 잘 알아채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타고난 기질과 성장환경은 사람의 성격 형성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다. 내가 왜 이렇게 인생의 패배자처럼 살고 있는지 궁금할 때마다 유년의 동네를 찾아갔다. 그 뒤에 매번 글을 썼다. 똑같은 장소를 방문하고 쓴 세 편의 글을 비교해보자. 시간상 차이가 있을 뿐 쓴 사람도, 방문한 장소도 같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① 2020.2.28.
아주 가끔 내 유년 시절을 보낸 동네를 찾아간다. 8살 봄부터 15살 여름까지 살았던 곳.
버스에서 내리면 맞은편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다. 교문 앞의 거대한 나무와 스탠드, 운동장, 친구와 같이 뛰어다니던 화단. 이 모든 것이 시간을 뚫고 눈앞에 그대로 펼쳐진다. 가슴이 더욱 뛴다. 그리고 발걸음을 돌려 살던 집으로 향한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제법 멀었다. 지금 내가 걸어도 20분은 넘게 걸린다. 이 먼 거리를 걷던 내가 생생하게 생각난다. 나는 혼자 걷지 않고, 어린 시절 나와 함께 걷는다. 그 시절의 내 얼굴이 보고 싶어서 잠시 멈추기도 한다.
불현듯, 어떤 장면이 떠오른다. 선생님에게 맞아서 팔에 멍이 들었다. 왜 맞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와 다른 부반장, 반장. 이렇게 3명은 교실 앞으로 나왔다. 선생님은 단단하고 굵은 나무 회초리를 들고 있다. 교실은 조용하다. 겁먹은 내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팠지만 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 이후로도 몇 차례 더 맞았다. 그때는 손바닥이었고, 회초리가 지나간 내 손가락은 붉고 선명한 줄이 그어졌다. 그런 날에는 피아노를 치기 힘들었다. 나는 아직도 선생님의 얼굴과 이름을 잊지 않고 있다. 짧은 머리카락과 갈색 안경테. 혹은 검은 안경이었을 수도. 지금의 나와는 몇 살 차이 나지 않았으려나. 시간이 기억을 지우는 바람에 선명하지는 않다.
또 다른 기억. 손을 아무리 들어도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내가 더 잘하는데, 다른 친구가 대회에 나갔다. 선생님은 내게 뭔가를 말했고, 고작 열 살 남짓한 나는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치과에 다니느라 집에 돈이 없다고. 내 머릿속에서 나온 대답이었지만, 진짜였다. 어금니가 몇 개 썩어서 엄마랑 치과에 여러 번 갔다. 결국 엄마는 학교에 갔고, 내가 정말 그렇게 말했냐고 확인하셨다. 엄마 마음이 어땠을까?
나는 생각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 알지? 네가 잊을까 봐 다시 한번 천천히 말할게. 네 잘못이 아니야.
나는, 어린 시절 내가 다녔던 모든 곳을 걸으면서 생각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때 내가 치료받았던 2층 치과는 빵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신기하게도 건물 입구에 치과 간판은 그대로 걸려있다. XX치과의원.
다시 발걸음을 돌려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어린이 도서관이 있던 곳. 부드러운 카펫과 키가 낮은 책꽂이 사이로 숨바꼭질하듯 친구와 장난치고, 아무 데나 걸터앉아 책을 봤다. 조금 떠들어도 괜찮았고, 낄낄대며 웃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가보니 공사 중이었다. 계절이 바뀌면 다시 와야겠다.
나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픈 기억보단 행복한 기억이 더 많았다고 믿고 싶다. 홀로 걸을 때가 많았고, 우산 없이 집으로 돌아올 때도 있었으며, 책이 유일한 친구이던 순간도 있었다. 말이 없어서 ‘나’를 표현하는 것에 몹시 서툴렀다. 아무리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았던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 차라리 아무것도 묻지 않은 편을 택했다. 그 작고 차가운 세상 속에서 내게 온기를 주던 순간들을, 다음 방문 때 좀 더 찾아봐야겠다.
- 졸고『세상엔 기쁨이 많다』 중에서
② 2021.3.15.
지난해 초, 나는 버스를 타고 그곳에 다녀왔다. 유년의 동네. 오랜 기억이 간혹 나를 울게 만드는 그 시절로 말이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낡고 오래된 연립주택 앞에 섰을 때 나는 내가 흘려보낸 시간을 모두 거슬러 작은 아이로 돌아가 있었다.
여덟 살의 나도, 그 이후의 나도 늘 베란다 앞에 서서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봤다. 한때 쌀이며 온갖 잡곡을 팔던 가게는 사라지고 주인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보다 더 늙은 개 한 마리가 앉아 있던 돌만 덩그러니 나를 기다렸다. 나는 집을 올려다봤다. 30년이 지나 바라본 집은 너무 작았다.
그 세월 동안 나는 좀 더 커졌을까? 밥과 반찬을 부지런히 먹고 훌쩍 자랐을까? 평생 간직해야 할 보석 따위를 잃어버린 것도 아니면서 왜 해가 바뀔 때마다 이곳에 찾아올까? 답을 찾을 수 없어서 나는 어린 내가 다니던 모든 길을 따라가 보기로 작정했다.
피아노 학원을 마치고 어둑어둑해진 골목길을 따라 집까지 오면 나는 내가 맞닥뜨릴 공포 앞에 오랫동안 머뭇거렸다. 1층 입구와 2층, 3층 계단의 중간 참에 전등 스위치가 있었다. 움직임을 감지해서 자동으로 켜지는 전등이 아니라 손으로 스위치를 움직여야지만 불이 켜졌다.
나는 커다랗게 심호흡을 하고 1층에서 2층으로 재빨리 올라갔다. 등 뒤에서 무서운 사람이 쫓아올 것 같았다. 나는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걸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2층 스위치를 켜고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뒤 다시 스위치를 내렸다. 3층에 위치한 집을 향해 재빨리 뛰어 올라가 현관문을 열면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환한 불이 켜진 집 안에는 동생과 엄마가 있었다. 그들은 내가 왔다고 딱히 반겨주거나 인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들이 나를 기다렸다고 믿었고, 긴 어둠을 통과하면 환한 곳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돌 위에 앉아 다시 질문을 던졌다. 왜 2층 스위치를 켜 두고 집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어린 마음에 내가 쓸 동안만 전등을 켜 두면 되지 계속 켜 두면 낭비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낭비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내가 알 턱이 없었겠지. 어둡고 끝나지 않을 터널을 혼자 걸을 때마다 나를 위해 어딘가 전등 스위치 하나가 숨겨져 있다는 걸 믿었지만 그저 순간의 위안만 줄 뿐 온전히 스위치에 내 마음을 기대지 않았다. 계속 켜 두면 될 것을. 스스로 내려두고는 아무도 나를 몰라준다고, 나만 외롭다고 울며 돌아다녔다. 바보같이. 아니 바보였다. 그렇게 바보였던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었고, 다시 아이가 되어 집 앞에 서 있다.
또 어디를 가야 할까?
가기 싫다고 말하지 못해서 6년을 꼬박 다닌 교회는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놀이터에 나가 놀지 않는 딸을 걱정한 엄마의 전등 스위치 같은 곳. 걱정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었던 엄마는 내가 교회에 잘 나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얻었을까? 일요일 아침, 만화를 보는 동생을 부러워하면서도 나는 끝내 가기 싫다고 말하지 못했다. 엄마가 내 손에 건네준 헌금 100원을 손에 꼭 쥐고. 어쩌면 엄마의 불안과 걱정을 내가 덜어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그런 마음으로 거절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리 착각하는 것도 꽤 좋다고 믿는다.
나는 다시 집 앞으로 돌아갔다. 집 옆에 새로 건물을 짓고 있었다. 슬쩍 쳐다보니 교회를 새로 짓는다. 닫힌 문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교회와 집은 거리가 무척 가까워 정말 엎어지면 코가 닿을 정도가 되었다. 그토록 달아나고 싶었던 곳이 내가 그리워하던 집 옆에 세워지니 기분이 이상했다. 사람도, 장소도, 기억도 내가 달아나려고 할수록 가까워졌고, 가까워지려고 노력할수록 멀어졌다.
그 옛날에 교회가 바로 집 옆에 있었다면 엄마는 나와 함께 교회에 갔을까? 그럴 리는 없다. 엄마는 지쳤고, 일요일이라도 쉬어야 했으니까. 아마 난 덜 슬펐겠지. 집에서 나와 혼자 교회를 향해 걸어갈 때면 짧은 길이 길게 느껴졌고 매번 도망가고 싶었다. 교회가 바로 집 옆에 있었다면 난 도망가겠다고 생각조차 못했을 거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어 밥벌이를 하고 우울의 터널에 진입하면 전등 스위치를 계속 올려두고 약도 꼬박꼬박 먹는다. 때론 스위치를 내린 채 어둠을 향해 스스로 걸어가기도 하지만 그 시간은 짧고 늘 그러하듯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 않다고 믿으며 힘들면 힘이 든다고 말할 줄도 안다.
나는 어린 내가 돌아다닌 그 모든 곳을 따라 걸으며 한나절을 보냈다.
조만간 이 모든 기억을 짊어지고 나는 또다시 옛 동네를 혼자 돌아다닐 테다. 할아버지와 할아버지보다 더 늙은 개가 앉아 있던 돌 위에 앉아 옛집과 새로 지어진 교회를 오랫동안 바라볼 테다.
③ 2021.8.4.
눈을 뜨니 오전 6시였다. 가방에 우산과 생수병 하나 넣고 집을 나섰다.
유년의 동네.
어린 시절 추억에 흠뻑 취해 오늘도 그리 돌아다닐 수 있으리라 믿었다. 어느 정도 낭만과 향수와 자기 연민에 빠져 걸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몇 달 전, ‘할아버지와 할아버지보다 더 늙은 개가 앉아 있던 돌 위에 앉아 옛집과 새로 지어진 교회를 오랫동안 바라볼 테다.’라고 쓴 대로 나는 내가 살던 오래된 연립주택과 근처에 새로 지은 교회를 바라보았다.
어린 내가 떠올랐지만 금방 사라졌다. 대신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집 바로 옆 모래 놀이터는 주차장으로 변했고, 뒤편 화단은 철문으로 막혀 자물쇠까지 잠겨 있었다. 화단 입구에는 과자 봉지 몇 개와 풀들이 어지럽게 엉켜있었다. 관리실 할아버지가 근무하던 작은 경비실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눈 감으면 30년 전 풍경이 그대로 펼쳐졌지만, 눈을 뜨면 내가 모르는 곳이었다. 모든 것이 생경했고 기어이 나를 내쫓으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선녀, 신, 장군, 사주’ 이런 단어들이 곳곳에 널려있었다. 알록달록한 깃발과 작고 작은 집들. 그 한가운데에 크고 화려하게 지어진 교회를 바라보니 굉장히 이상했다. 종교의 문제가 아니었다. 과거의 기억 속에도, 작년 기억 속에도 결코 들어있지 않은 장면이었다. 달리 표현하면 이 동네가 더 이상 내 유년의 기억 속 장소가 아니라는 점, 작년에 분명 보았을 장면을 내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을 찾지 못했고, 내가 보았으나 보지 못했던 무언가 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어서 여기를 뜨고 싶었다. 오래 앉아 바라보고 자시고 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나는 도망쳤다.
저 낡고 오래된 주택 안에 여전히 내 어린 시절이 갇혀 있었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무슨 바람이 불어 여기까지 왔는지 후회했다. 아침도 굶은 채 이미 몇 시간을 걸은 뒤였다. 지쳤고, 새벽에 내린 소낙비로 신발과 바지까지 눅눅했다. 습기 많은 공기는 불쾌했다.
발걸음을 돌려서 재빨리 온 길을 되돌아가다가 그토록 다니기 싫었던 피아노 학원이 있던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내 기억 속 간판 모양 그대로 지하엔 OO다방과 1층 슈퍼가 보였다. 피아노 학원은 사라졌지만 슈퍼와 다방은 변함없었다. 물건 몇 개 없는 슈퍼 출입문 앞에 임대라고 써 붙인 노란 종이가 보였다. 잠시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 머물렀다. 8살부터 13살의 내가 주말을 제외한 매일을 딛고 다녔던 계단이라고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졌다. 누가 보지 않는 틈을 타서 사진 몇 장을 찍고 걸음을 옮겼다.
나는 더 이상 이곳을 찾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직감했고, 이내 슬퍼졌다. 내 안의 무엇이 변했는지 이 동네의 무엇이 변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순례자처럼 이곳을 찾아 방랑하던 날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어떤 것은 그냥 그대로 두는 것이, 과거는 과거로 두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기어이 과거의 상처를 후비고 파헤칠 필요는 없었다. 양손을 꽉 쥔 채 이미 가진 것을, 내가 놓쳤다고 믿은 것을, 내가 무언가를 상실했다고 믿은 것을 움켜쥘 필요는 없었다.
나는 손을 펼쳐서 내 손바닥을 들여다봤다. 짊어진 기억을 놓아줘야 할 적당한 때라는 게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만나기 위해서 손바닥을 활짝 펼치는 일이 두렵지 않았다. 그 손바닥 안으로 무엇이 들어올지 몰라도, 내가 무엇을 만나게 될지 몰라도 말이다.
18개월 동안 똑같은 동네를 찾아갈 때마다 쓴 세 편의 글. 차이점이 느껴지려나? 첫 번째 글보다는 두 번째 글에서 유년의 상처를 좀 더 상세히 쓸 수 있었다. 사실 상처를 자세히 쓰는 것은 몹시 힘들다. 힘든 그 순간을 다시 마주해야 하며 용기가 없으면 어렵다. 두 번째 글까지는 내 안의 상처에 집중했다면 세 번째 글에서는 비로소 보지 못했던 다른 풍경들이 눈 속에 들어왔다.
세 편의 글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니 내가 그동안 많이 성장했음을 느꼈다. 상처를 대하는 방법이 달라졌고 수 없이 많은 힘든 순간 속에서 나를 위로해주던 순간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더구나 손바닥에 꾹 움켜쥔 과거를 놓고 새로운 내일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는 내 모습이 떠올라 스스로 기특하다고 여겼다.
나는 여전히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평생 약을 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패배감에 젖어 매일을 살다 보면 무기력해지고 우울에 젖어들기 십상이다. 게다가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고 느끼기 쉽다. 그럴 때 자신이 꾸준히 쓴 글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는 내면의 변화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변화는 한꺼번에 찾아오지 않는다. 빨리 찾아오지도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꾸준히 쓰고 자신을 돌아보는 일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매번 같은 걸림돌에 넘어져 울던 내가 넘어진 자리에서 옷을 툭툭 털고 일어나 씩씩하게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걸림돌이 없는 인생을 기대하는 건 무리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대처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될지도.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쓰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