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by 키키 리리

글을 쓸 수 없어 멈춘 순간


2020년 2월부터 우울증에 관한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다. 우울증과 같이 살면서 느낀 온갖 감정, 불안한 마음, 나조차 이해할 수 없어 괴로웠던 순간을 붙잡아 글을 쓴다. 그러다가 보름 넘게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던 날이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쓰고 싶은데 누가 목구멍을 틀어막고 놔주지 않았다. 숨쉬기가 힘들고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하얀 화면 위에서 깜빡이는 커서가 눈꼴시도록 미웠다.


바보야, 그냥 포기해버려-


이렇게 약 올리는 것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녀석을 노려볼수록 내가 왜 써지지도 않는 글을 쓰겠다고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굉장히 극단적인 사람이다. 특히 인간관계나 자신에 대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나름의 방식에 대해서. 순간, 이 모든 것을 다 엎어버릴까 하는 충동이 들었다. 이제까지 썼던 글이 꼴도 보기 싫었다. 이게 뭐라고. 이깟 글이 뭐라고 나를 힘들게 하나. 눈앞에 보이는 게 없었다. 홧김에 삭제 버튼을 누르거나 브런치를 탈퇴하고 싶었다.




그저 내 할 일을 할 뿐이지


예전에 쓴 심리상담 일지의 일부이다.


“저는 당신에게 굉장히 우호적이잖아요. 묻는 말에 대답도 잘하고, 어찌 되었든 당신이 나를 돕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그렇지만 모든 내담자가 저 같지는 않잖아요?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열지 않거나 비협조적인 내담자를 만나면 어떻게 해요? 막막하거나 힘들지 않나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상담이 잘 풀리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그는 내 말을 듣더니 싱긋 웃었다. 그리고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찌하긴요? 그저 제 할 일을 합니다.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가죠.”

나는 눈앞에 앉아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내 앞에 있는 상담사가, 유능하다고 믿었던 상담사가, 그의 상담 비결이 그저 자신의 할 일을 열심히 할 뿐이라고 말한 게 정말이야? 나는 그의 대답을 듣고 정말 어안이 벙벙했다.

- 졸고『나는 너무 오래 참았다』 중에서


상담사는 내 정신과 의사가 추천해주신 분이었고, 나 역시 상담받는 내내 그가 공감도 잘해주고, 잘 이끌어준다고 믿었다. 그래서 상담사에게 시련이 닥칠 때 내가 모르는 비결이 분명히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고작 자기 맡은 일을 열심히 할 뿐이라고? 분명 농담일 거야.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 담백하게 떨어지는 그의 발화 속에서 거짓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소리 내어 웃다가 끝내 입을 닫고 말았다. 그의 말은 진실이었고, 나는 너무나 쉬운 답을 어려운 생각 속에서 찾으려 했음을 깨달았다.




과정도, 실패도 내 삶의 일부


나는 우울증을 수년 동안 앓았고, 그동안 몇 번 재발했다. 나는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 그 기대마저 버렸다. 기다리면 나아지리라는 사실을 알지만 이미 너무 많이 기다려서 지쳤다. 나는 내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아무리 후회하고, 반성하고,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었다.


그렇지만 희망이 없다고 해서, 우울증으로부터 결코 벗어나리란 희망을 저버렸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아니다. 꼬박꼬박 병원을 다니며 꾸준히 약을 먹었다. 반년 넘게 심리상담을 받았다. 트라우마 치료도 시작했다. 나를 돌보기 위해 빠짐없이 운동을 하며 틈틈이 글을 썼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상담사처럼 내가 할 일을 열심히 한다. 이 모든 과정이 결국은 나의 일부라고, 내 삶의 일부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글쓰기라고 별반 다를까? 그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니 안 써지면 안 써지는 대로, 쓰기 힘들면 힘든 대로, 쓰기 싫으면 싫은 대로 그것 또한 내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그리고 묵묵히 내 할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 모든 과정을 껴안아서 내 삶이 더 풍성해질지 누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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