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싶다는 마음을 버리다

by 키키 리리

글 앞에서 주저하는 이유


나는 우울이 바닥을 치거나 당장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면 서둘러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러나 깜빡이는 커서만 몇 시간째 노려보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지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우울한 마음을 글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온갖 걱정이 나를 짓눌렀다.


정신과 의사는 글쓰기가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 우울이 올라오는지 알아챌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글을 쓰면서 쏟아낸 감정으로 인해 속 시원한 홀가분함도 느낄 수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글의 개요는 집을 지을 때 설계도와 같다고, 튼튼한 집을 짓고 싶으면 반드시 작성해라고 말했다. 글쓰기가 마음먹은 대로 이뤄지지 않자 ‘처음-중간-끝에 어떤 내용이 들어갈지 간략히 메모라도 하면서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제대로 된 단계를 거쳐야 제대로 된 글 한 편을 쓸 수 있으리란 믿음 말이다.


나는 노트를 펴놓고 열심히 끄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쓰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무엇을 써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 나 역시 끝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붙잡고 눈앞에 명료한 문장으로 펼쳐놓으려니 어려웠다. 내가 글을 잘 쓸 수 없으리란 걱정과 더불어 개요조차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실망감이 점점 커졌다.




위대한 힘도 장애물도 내 안에


나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세상천지에 완벽한 인간이란 존재할까? 모든 일을 완벽하게 계획하고 준비하기란 불가능하다. 난 불가능한 일을 현실화시키려고 기를 쓰고 노력했다. 심지어 정신과 의사와 상담할 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순서까지 정해놓아야 마음이 놓였다.


의자에 앉아 비스듬히 벽을 바라보았다. 뭘 말해야 할까? 얼른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내 이름이 언제쯤 불릴까? 예약 시간은 훌쩍 지났는데. 혹시 나를 잊었나? 아니네,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이 아직 남아 있네. 이 문제는 이렇게 말하고, 저 문제는 저렇게 말해야지.’ 질문과 다짐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채웠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퇴근길 꽉 막힌 도로가 내 머릿속 같다. 마음을 비우는 일도,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일도 어렵다. 쉬운 일은 쉽게, 어려운 일은 더 쉽게. 나는 숫자를 세며 질문과 걱정을 잊어버리려고 애를 썼다. 그럴수록 생각이 나를 꼭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번엔 오른쪽 다리를 마구 떨었다. 다리를 떠는 행동이 몸에 좋다고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났다. 주위를 힐끗 보니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드디어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천천히 그리고 커다랗게 내쉬었다. 의사가 예의 그 질문을 한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좀 어지러워요, 지금.”

“왜요?”

나는 내가 지금 느낀 불안과 원인 분석까지 거침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진료실에 들어오면 제가 느낀 문제를 제대로 말해야 할 것 같아요. 그거 생각하고 기억하느라 애를 많이 썼어요. 불안과 강박이죠.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알아요. 완벽주의 성향과 관련 있고…….”

돌연 그가 웃었다. “으헤헤헤.”

나는 깜짝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3년째 그를 만나고 있지만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웃음소리였다. 아주 친숙하고 편안한 대상 앞에서 낼 법한 웃음. 사회적 체면이나 이미지를 고려하지 않고, 어색한 상황을 부드럽게 만들거나 적당히 할 말을 찾지 못해 일부러 웃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 순간이 재미있어서 웃는 웃음. ‘이 환자가 우울증을 오래 앓더니 반은 전문가가 되었네.’ 이런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문제점을 말하고 스스로 원인 분석까지 하는 환자가 신기해서 그랬을까?

나는 그의 웃음소리가 정말 좋았다.

“만약 당신이 생각한 문제를 이 시간에 다 말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생길 것 같아요?”

아, 익숙한 상황이다.

내가 걱정과 불안으로 미칠 것 같을 때 상담사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나의 걱정이 괜한 것임을 일깨워주려는 질문이다. 또 이 말을 했더니 의사가 “으헤헤헤.” 하고 웃는다. 해결책이 뭔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제 자신에 대해 꽤 잘 안다고 ‘착각’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도 내가 웃겨서 그와 같이 웃었다.

“적절한 조언을 못 듣거나 약 처방을 제대로 못 받을 수 있어요.”

“만약 중요한 문제를 말할 기회를 이번에 놓쳤다면 전화로 진료 예약을 다시 하면 됩니다. 약 처방의 경우도 용량 조절을 급격하게 하지 않으니 큰 상관이 없고요. 당신이 설령 당신의 문제를 잊었더라도 제가 어느 정도 질문을 통해 문제점을 끄집어낼 수 있어요. 음, 저에게 오는 환자분의 2/3 가량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이 자리에 앉으시고요. 어떤 분은 말할 내용을 메모해오기도 해요.”

이번엔 내가 커다랗게 웃었다. 내 걱정이 얼마나 하찮았는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니 정말 불안하다면 메모를 해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진료실에서조차 나는 정신과 환자로서 문제를 완벽하게 털어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약간의 공황 증상까지 겪는 일도 다반사였다.


글을 쓸 때는 더 심했다. 완벽하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완벽하게 개요부터 짜 놓아야 한다는 믿음. 이 생각은 내 마음이 만든 장애물이었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 스트립 주연의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잘 알려진 카렌 블릭센의 자전적 이야기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나오는 내용이다. 케냐에서 커피 농장을 운영하던 카렌은 어느 날 작은 아프리카 영양 한 마리를 키우게 된다. 스와힐리어로 ‘진주’를 뜻하는 룰루는 점점 자라서 집 밖의 초원을 향해 가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껑충거리며 춤을 췄는데 그런 룰루를 보며 카렌은 장애물도, 장애물을 뛰어넘을 힘도 네 안에 있다고 말했다.


넌 우리가 네가 뛰어넘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장애물을 쌓아 놨다고 여기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란다. 우리가 어찌 높이뛰기 명수인 너에게 그런 장애물을 쌓을 수 있겠니? 우리는 아무런 장애물을 쌓지 않았단다. 룰루, 위대한 힘도 네 안에 있고 장애물 또한 네 안에 있단다.

- 카렌 블릭센 『아웃 오브 아프리카』, 71쪽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은 결국 내가 쌓은 것이었다. 왜 완벽한 글을 쓰려고 하지? 그게 정말 중요하니? 나는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네가 진정 글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니? 답은 하나였다. 단순한 기쁨. 내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일의 기쁨. 글 쓰는 행위가 주는 순수한 기쁨.


나는 마음을 바꿔야 했다. 내가 만든 장애물을 없앨 힘을 발견하고 싶었다. 만약 완벽하지 않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나는 의사가 내게 했던 질문을 글쓰기로 바꿔서 자문했다.


“내가 만약 완벽한 글을 쓸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글을 잘 쓸 수 없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주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완벽이라는 대상은 한낱 허구일 뿐인지도 모른다. 도달할 수 없는 아주 높은 이상만을 그린 채 겁만 집어먹고 나를 들들 볶아대는 일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글을 쓰고 싶다는 자신의 마음에만 집중하다

우리는 살면서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지나치게 집중할 때가 많다. 완벽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믿음. 그 믿음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완벽이란 무엇인가?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인가? 우리는 완벽함에 부합하지 못한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면서 살지 않는가?


우울증 환자인 내가 무언가 애를 써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무기력하고 의욕 없이 하루를 보내기 십상이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나를 칭찬해야 한다. 완벽한 글을 쓰겠다는 것은 허황된 욕심이다. 나는 불완전한 인간이고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우울한 마음을 글로 표현함으로써 실타래처럼 배배 꼬인 마음을 풀어놓고, 마음의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내 마음을 돌보고 우울을 환한 햇살 아래 널어놓고자 노력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글을 쓰고 싶다는 나의 마음, 오롯이 그 마음만 들여다보며 나를 사랑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제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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