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다

by 키키 리리

당신에게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신간, 신곡, 신작 영화 소개에 종종 나오는 문장이다. 이 책을 선택한 당신에게, 지친 당신에게,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당신에게, 사랑 때문에 마음이 아픈 당신에게, 미래가 보이지 않아 답답한 당신에게. 이런 추천 대상 뒤에 구름에 달 가듯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는 단어 ‘위로’. 위로를 도움이라는 단어로 바꿔도 상관없다.


나는 2020년 2월부터 브런치에 우울증과 관련된 글을 꾸준히 올리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진입장벽이 있다. 일단 자신이 쓴 글 3편과 자기소개, 활동계획을 담은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통과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브런치에는 주식, 부동산, 경제, 건강, 요리, 독서, 역사, 과학, 예술, 문화, 종교, 외국어 등 온갖 분야의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부터 시, 소설을 쓰는 사람, 소소한 개인의 일상을 올리는 사람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다.


나는 우울한 내면을 토로하는 글을 꾸준히 썼다. 그래서 내 글이 하찮게 느껴졌다. 우울한 내면을 토로하는 글은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글을 쓰는 나 자신이 못나고 부족해 보였다. 슬픔과 불안, 우울로 가득 찬 글을 쓰면서 꽉 막힌 감정이 물 흐르듯 흘러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몇 번이나 했지만 ‘과연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심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내가 쓰는 글이 타인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에 때문에 쓰고 싶은 글을 맘대로 쓸 수 없다고 생각하자 슬픔이 밀려왔다. 내 본성을 거스르는 행위 같았다.


파커 J. 파머는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에서 자신에게 충실하지 않다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남발하고, 나쁜 재료를 써서 집을 짓고, 다른 사람을 고통 속에 빠뜨린다는 말이다. 내 안에서 자라지 않는 어떤 것을 주려고 할 때 그 행위는 나를 고갈시키며 다른 사람에게도 해가 된다는 저자의 말을 나는 기억해야 했다.


나는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글을 쓴다. 우울한 내면을, 들끓는 욕망과 생각을, 상처받은 마음과 상처받은 순간에 대해서 쓴다. 코끝이 시큰거리고, 눈물이 나온다. 아주 어릴 때부터 감성적인 글을 쓸 때면 자주 울었다. 다 쓴 뒤에는 어려운 암호로 꼭꼭 숨겨둔 마음속 비밀을 풀어놓은 것 같아 홀가분했고 기뻤다.


그런데 왜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써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나는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야 사랑과 인정을 받는다고 믿었다. 내 존재 자체가 아니라 나란 존재가 줄 수 있는 도움을 통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좀 더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나를 지치게 했고, 그 좋아하던 글쓰기마저 괴로운 대상으로 인식시켰다. 나를 소진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 없는 무언가를 억지로 만들어서 주려고 할 때 사람은 고갈된다는 파머의 말이 맞았다.


나는 생각을 바꿔야 했다. 그리고 계속 질문을 던져야 했다. 나는 왜 글을 쓸까? 왜 쓰는 거지? 답은 하나였다. 나를 돌보기 위해서였다. 나를 위로하고 나를 챙기기 위해서였다. 상처받은 내 마음을 표현하고 어루만지기 위해서였다.


내가 나를 챙기고 나를 먼저 돌보는 일은 결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자세였고, 다른 이를 돌보고 그에게 위로를 건네는 행동은 그다음이었다. 내가 나를 돌보는 일이 어때서? 다른 이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거창한 비전 따윈 없다고, 식견이 얕다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쓴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다


처음 심리상담을 시작할 때 극도의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심리상담을 받을 정도로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상황을 살폈을 때,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겪고, 약을 복용 중이었다.


상담받는 내내 안절부절못하다가 끝내 상담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 문제가 별로 심각하지 않은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 비해서 말이죠.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가정폭력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은 것도 아니에요. 남들 보기엔 무난하기 짝이 없는 삶이죠. 지극히 보통의 삶 말이에요. 그래서 이런 상담이 필요할까 의구심이 들어요. 이 문제로 여기 오기 직전까지 고민했어요.”


내가 입을 닫자, 상담사는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죠? 그리고 누구나 자신의 짐이 있어요. ‘나’ 자신이 제일 중요하죠.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그렇게 하면 돼요.


상담사의 마지막 말이 어쩐지 큰 위로가 되었다.


정신과 의사는 역시 항상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남 눈치 보지 마세요.”


두 사람 모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다.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그렇게 하면 된다고 말이다. 나는 우울한 내면 풍경을 그리는 글을 쓰고 싶고, 그런 글쓰기가 내게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내가 잘 쓸 수 있고, 쓰고 싶은 글을 쓸 수밖에.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글을 쓴다고, 누군가를 위로해주지 못한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었다. 우울증 환자로서 내 마음을 돌보고 살피는 일이 우선이니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맘껏 쓰는 일이 더 중요했다. 그것이 우울증 환자이자 글쓰기를 좋아하는 내가 기억해야 할 마음가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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