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생들에게 사랑받는 선생이며 중증 우울증 환자다. 인기 많은 교사와 우울증 환자가 어찌 한 사람일 수 있겠냐는 질문을 하겠지만 내 영업 비밀은 다음과 같다.
일단 교실에 들어가면 “안녕!”하고 힘껏 소리쳐 인사를 했다. 설명할 때마다 그림을 그렸다.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아주 단순하고 직관적인 그림이었다. 학생들은 이토록 엉망진창인 그림을 이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처럼 신나게 웃었고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재미있게 수업을 듣는다면 그림이든 춤이든 노래든 뭐든 할 태세였다. 하품하는 학생들이 하나둘씩 생기면 40년 넘게 살면서 겪은 별난 일이나 재미있게 읽은 소설 이야기를 곧잘 들려주었다. 재미를 위해 1인 다역을 맡아 연기를 했고, 춤도 췄다.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려고 노력했으며 틈틈이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어 수업을 좋아하지 않는 학생이 있었다. 그의 교과서에 ‘국어 극혐’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훈계하는 대신 “국어가 싫어?”라고 묻는 게 끝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대부분의 학생들은 내가 진심으로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교실 밖으로 나오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옆자리에 앉은 동료와 이야기를 하기 싫어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거나, 업무에 치일 때면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 같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했다. 폭식 후 토하고, 무언가 맘에 들지 않으면 자해를 했다. 대인기피증도 심해서 2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들을 수년 동안 만나지 않았다. 불안장애에서 시작된 강박증 때문에 스스로 미쳤다고 느낄 때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는 너무나 다른 두 모습 사이에서 종종 길을 잃었다. 거대한 간극을 좁힐 수 없었다. 웃음을 팔고 이야기를 팔고 나를 팔아야 겨우 고개를 드는 나의 관중들. 교실 안에서는 외롭게 서 있는 광대였고, 교실 밖에서는 10년 가까이 우울증을 달고 사는 인생의 패배자였다.
쉼이 필요했다. 내게 쉼은 글쓰기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는 내 삶의 일부분과 같았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우울이 차오르는 날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죽어가는 마음을 활자로 살려냈다.
이상한 건 퇴근하려고 가방을 둘러맬 때부터, 교문을 나서며 터덜터덜 집으로 향할 때부터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이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으나 나는 울고 있었다. 갈 곳 잃은 슬픔이 입을 틀어막고 나를 흔들고 있었다. 비실비실 웃음이 터져 나왔으나 나는 울고 있었다.
정신없이 자판을 두드리다가 옆에 앉은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문서에 점 하나 찍는 것밖에 없어서 나는 울었다. 혼자 운동장을 걸으며 물웅덩이에 비친 하늘을 바라보곤 나는 울었다. 눈이 아파서 울었고,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울었고, 도무지 슬픔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서 한참을 울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슬픔을 견디는지, 어떻게 슬픔을 버리는지, 어떻게 슬픔을 껴안는지 알 수 없어서 울었다.
누가 내게 가르쳐줬으면-
이렇게 바라지만 아무도 내 목소리를 듣지 않아서 슬펐다. 내가 들고 있는 교과서 그 어디를 살펴봐도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 따윈 없다.
에잇, 이따위 교과서.
선생이란 작자가 교과서 욕을 한다. 나는 피식거리며 학생들이 이 모습을 볼까 봐 힐끔거렸다. 그러다가 또다시 에잇, 이게 어때서. 혼자서 웃고 울고 떠들고 욕하며 정신 사납게 글을 쓴다.
그러다가 깨닫는다. 나는 내가 닳아 없어질 것 같으면 글을 쓴다는 사실을. 어디든 털어놓지 못하는 마음을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에 아무렇게 펼쳐놓는다는 사실을. 가끔은 내가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힘든지 알아달라고, 누가 나 좀 안아달라고 크게 외치듯 쓴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슬픔을 이겨내는지, 어떻게 슬픔을 껴안는지, 어떻게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지 아는 게 아니라 그저 부지런히 글을 쓰고 싶다는 사실을.
이렇게 글을 쓰고 나면 가라앉은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유시민 작가는 『글쓰기 특강』에서 내면에 있는 생각, 감정, 욕망을 제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삶이 답답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털어놓고 싶은 감정, 드러내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털어놓고 드러내야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믿었다.
교사로 살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삶을 끊임없이 마주하고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지친 마음을 표현할 방법은 무수히 많겠지만 내겐 글쓰기가 제일 편했고, 글쓰기를 통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다.
심리상담사와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제게 글 쓰는 재능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에요.”
사실 ‘재능’이라고 말했지만 글 쓰는 일을 좋아하고, 즐긴다는 의미가 컸다. 내 말을 듣고,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그런데 자꾸 세상에서 도태되는 것 같아요. 재테크니 부동산이니 주식이니 이런 것에 도통 관심이 없어요. 물론 올해 초에 관련 책을 몇 권 사서 읽었지만 재미가 없었어요. 무엇보다 읽기 싫었어요. 너무 괴로웠어요.”
“맞아요. 좋아하는 일만 해도 짧은 인생인데, 싫어하는 일을 하려니 괴롭죠.”
그는 내 감정이 삐걱거린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글쓰기가 이제껏 당신 삶을 지탱해주었어요. 그것만큼 소중한 일이 어딨어요? 그게 당신 삶이에요. 다른 누구와 비교할 필요는 없어요. 당신은 그저 당신의 삶을 살면 돼요.”
상담사 말대로 글쓰기가 내 삶을 지탱해주었다. 혼자 빈방에 앉아 힘들게 쓴 글이 나를 구원하고 있었다. 글을 쓰고, 고치고, 다시 쓰고 세상에 내놓는 과정을 통해 새롭게 에너지를 얻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