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을 공개하다

by 키키 리리

삶은 고통이다


삶은 고통이라는 사실을 나는 일찌감치 깨달았다. 지나온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온통 지뢰밭이었다. 우울증은 여러 차례 재발했고,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제일 심각했던 일은 폭식 후 구토였고 이 문제를 나는 지금도 해결하지 못했다.


시작은 입덧이었다. 임신 초기부터 출산 직전까지, 나는 입덧에 시달렸다. 수개월을 내릴 수 없는 배 위에서 멀미하는 기분으로 지냈다. 육지는 멀고, 바다는 넓었다. 조금 전에 내 몸으로 들어간 음식이 분해될 겨를도 없이 다시 몸 밖으로 빠져나올 때, 그럴 때마다 나는 치를 떨었다. 의사는 입덧이 심한 산모의 아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똑똑하다는 믿기 힘든 말을 하며 나를 위로해줬고, 누군가는 네가 너무 예민한 탓이라며 힐난했다.


무엇으로도 나의 고통을 덜 수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임신이 종료되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겨우 2.5kg이었다.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3살 아이와 젖먹이 갓난쟁이를 홀로 돌보는 일은 나를 점점 미치게 했다. 무언가 제때 먹을 수 있는 시간 따윈 없었다. 자주 체했고, 자주 토했다.


우울증은 점점 심해졌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지만 토하는 일은 오로지 내 의지가 장악한 영역이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만큼 토할 수 있었다. 손가락 하나면 충분했다. 무릎을 꿇고 혓바닥을 길게 뺐다. 손가락을 세워서 목구멍을 찌를 만큼 깊이 집어넣었다. 날카로운 무언가로 나를 찌른다는 생각은 했다. 공격의 대상도 나였고, 공격의 주체도 나였다. 내가 나를 파괴하는 이 경이로운 순간에, 나는 완전히 도취된 상태였다. 역겨운 냄새와 지저분한 토사물, 시뻘게진 눈과 경련하듯 흔들리는 몸. 믿기 힘들지만 나는 그 순간이 참 좋았다. 위를 쥐어짜는 듯한 고통 때문에 걸을 힘 따윈 없었다. 화장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있으면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슬퍼서 우는 건 아니었다. 이유는 몰랐다.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집 『환상의 빛』 추천사에 김혜리 기자가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은 살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저 죽고 싶어서 죽을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생의 무도한 불가해함은 가혹한 허방인 동시에 매일 몸을 일으켜 다시 살게 만드는 요염한 신기루-환상의 빛이라는 것


소설 속 주인공인 유미코는 이유도 없이 죽어버린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첫 아이가 태어난 지 석 달밖에 되지 않았고, 여자와 돈 문제도 없고, 술도 도박도 하지 않던 남편이 왜 자살을 했는지 유미코는 알 수 없었다. 끝내 이유를 찾지 못한 유미코에게 인간은 살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저 죽고 싶어서 죽을 수도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을까? 나는 이 문장을 끝도 없이 읽었다.


모든 행동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했던 사람들에게 나는 저 말을 돌려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내가 토한다는 사실을 밝혔을 때, 여태껏 만난 정신과 의사 3명과 상담사는 모조리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살을 빼고 싶어요?”


나는 물론 아니라고 말했다. 살을 빼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토하고 싶어서 토한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이야기했다.


토하는 행위가 주는 불가사의한 위안.


구토는 나를 고통 속에 밀어 넣었지만 동시에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게 만드는 존재였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차라리 설명할 수 있다면 나았을까? 토하는 행위 너머 들려오는 주위 사람들의 불안한 목소리. 내가 헤아릴 수 없는 경계 너머의 행동에 도취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안을 느꼈다. 나는 그들에게 고통과 걱정을 안겨주기 싫었다.




뜻밖에 찾아오는 따뜻한 순간


힘들고 불가사의한 고통 속에서 헤맬 때 가끔은 잊지 못할 순간을 만났다.


나는 늘 혼자 글을 쓰고 혼자 읽었다.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내 글은 컴퓨터 저장 파일로 남아 있다가 휴지통에 버려지곤 했다. 그러자 당시 같이 근무했던 교감 선생님이 이렇게 제안했다.


“그렇게 좋은 글을 혼자만 보지 말고 공개해봐요. 블로그 같은 거 하나요?”


이 말을 듣는 순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을 해보리라 다짐했다.


다음 해 나는 육아휴직을 했고, 브런치에 우울증에 관한 글을 써서 올리기 시작했다. 힘들고 지친 마음을 토로하기도 하고, 먹고 토하는 일을 쓸 때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가 쓴 글에 댓글을 잘 달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섣불리 말을 걸거나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괜찮냐는 질문을 했다가 오히려 누가 될까 봐 그렇다. 누구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지만 누구라도 댓글을 달아주기를, 무어라 말해주기를 내심 바랐다. 이 알 수 없는 감정이 글을 쓰는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외로웠을까?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다는 비이성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서 글을 쓸 때마다 미칠듯한 외로움이 나를 따라다녔다. 외롭고 외로웠다.


어느 날, 누군가가 짧은 댓글을 남겼다.


- 당신의 글을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그저 한 문장이었다. 다른 말은 없었다. 코끝이 시큰해졌다. 저 짧은 문장 때문에 감정이 요동쳤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앞으로 만날 가능성도 없고, 이름도 사는 곳도 모르는 누군가가 적어준 짧은 문장. 나는 그 문장 옆에 앉아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누군가가 나를 오랫동안 지켜보고 관심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파커 J.파머는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에서 친구 빌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저자는 심각한 우울증에 걸렸고, 매일 오후 자신의 집에 들렀던 빌은 충고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 그저 “네가 얼마나 힘든지 느껴진다.” 거나, “네가 더 강해지는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파머는 빌을 통해 누군가 자신을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고 한다. 소멸 직전의 자신에게 생명을 주는 것과 같은 기적을 만났다고 말이다.




골방에서 나와요


만약 교감 선생님의 조언을 듣지 않고 예전처럼 골방에 틀어박혀 혼자 글을 쓰고 혼자 읽는 생활을 반복했다면 저런 기적을 만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기적이 일어날 리는 없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마음을 빨랫줄에 빨래를 널 듯 하나하나 널어놓자 생각지도 못한 순간을 맞이했다.


- 당신의 글을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글 쓰는 일을 포기하고 싶고 우울증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에 휩싸일 때마다 빨랫줄에 우울을 하나씩 널어놓는다. 그러면 가슴속에 작은 불씨를 지핀 듯 온기가 느껴진다. 내게 저 댓글을 달아준 이는 오늘도 내 글을 읽고 있겠지. 그러니 그 사람을 생각하며 오늘도 내일도 꾸준히 글을 쓰리라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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