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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키 리리 Jan 04. 2023

좋은 목적지가 되기로 한다  

문득 인생이란 편지를 보내서 기다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수신인이 있든 없든, 편지 내용이 있든 없든 무언가를 보내는 일. 기어이 무언가를 보내고 보내서 기다리는 일이라는 생각. 얼마 전 학교에서 전화가 왔고, 교감 선생님이 요청하신 대로 업무 희망서를 작성해서 그의 메일로 보냈다. 일주일이 지나도 여전히 '읽지 않음'이라는 네 글자가 선명하게 화면에 나타났다. 


나는 내가 선택한 업무가 그대로 받아들여지리라곤 믿지 않았다. 그 역시 그리 말했으니까. 다만 두려움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에서 비롯된다. 그 불안을 밀고 던져서 이리저리 굴렸다. 눈덩이처럼 커질 줄 알았는데 찰진 수제비 반죽처럼 작고 동그랗게 변했다. 약 덕분일까? 나는 이제 내 불안을 조금 익숙하게 다룰 수 있다. 


그러나 교감 선생님이 며칠 째 읽지 않는 내 업무 희망서는 여전히 신경 쓰인다. 그 메일에 담긴 내 마음이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해 여기저길 떠돌아다닐 거라 생각하니 조금 쓸쓸하다. 간절히 내 마음을 담아 발송했는데 그는 무슨 바쁜 일이 있는 걸까? 일주일이 되도록 읽지 않는다. 문자를 보내볼까?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 모든 걸 관둬버렸다. 그의 말대로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일이니까. 




기간제 교사를 뽑기 위해 내 업무 메일을 공고문에 게시한 적이 있었다. 이 업무를 맡은 첫 해에는 메일함에 가득 찬 지원자의 서류를 정리하느라 답장을 할 생각을 못 했다. 이듬해부터는 몇 십통씩 도착한 메일에 일일일 답장을 했다. 당신의 지원서는 잘 도착했으며 1차 합격자의 경우 개별 연락이 갈 것이라고, 지원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내용을 복사-붙이기 해서 보낸 답장이었다. 


그들에게 나는 좋은 목적지였을까? 


인생이 기다림이라면 그 기다림이 닿을 목적지가 있을 테고 난 내가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좋은 목적지였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할 만큼 여유가 없었다. 늘 일에 치여 있었으니까. 


오늘도 메일함을 읽어보니 여전히 '읽지 않음'이란 글자가 나를 반긴다. 나는 그저 웃고 말았다. 내 의견과 상관없이 일이 진행되나 보나, 하고 여겼다. 업무로 많이 바쁘신갑다, 하고 부드럽게 생각했다. 적어도 내 병명을 밝혔을 때, 교감 선생님의 반응은 따뜻했으니까. "아이 키우느라 많이 힘들었어요?" 


그는 오늘도 내 메일을 읽지 않았지만 내 기다림이 좋은 목적지에 닿을 거라 여긴다. 그리 믿고 싶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기다림들이 좋은 목적지에 닿기를, '새해엔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랍니다.'라는 말처럼 실현 불가능한 뻔한 말에 불과할지라도 그리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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