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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키 리리 Jan 09. 2023

내가 가진 좋은 점

브런치 앱을 삭제했다. 자주 가던 다음카페 앱도 삭제했다. 그 두 가지만 지웠는데 시간 부자가 되었다. 빈 시간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혜윤 작가의 <<아무튼, 메모>>,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을 읽었다. 국어 교사가 쓴 <<우리들의 문학시간>>도 읽었다. 읽으며 그들의 차분한 글솜씨를, 폭넓은 식견을,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를 부러워했다. 


또 무엇이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부러운 감정을 억누르고 질투를 숨기느라 속이 상했다. 다행히 얼굴은 상하지 않아서 우울증이 재발하기 전인 2019년 봄쯤의 체중으로 돌아갔다. 둥글둥글해진 얼굴만큼 마음 또한 둥글둥글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 주머니 안에는 여전히 시기와 질투, 불안, 공허함과 무력함 따위가 잔뜩 들어있다. 내 주머니는 심연이다. 바닥이 없다. 요즘 가장 큰 괴로움은 이 질투로부터 비롯된다. 앞서 말한 국어교사가 쓴 수업 일기 책. 국어교사가 과학고에서 문학 수업을 진행하며 적은 수업 관련 책이다. 학생에게 문학을 통해 성장을, 자람을 선물하려는 그의 열정과 따뜻함이 부러웠다. 내게 없는 그 온기가 몹시 부러웠다. 그리고 밝음. 기꺼이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흡수하려는 학생들의 선함과 수용 능력 또한 부러웠다. 이렇게 남이 가진 좋은 것만 부러워하다가 내 인생의 한 페이지가 이렇게 넘어가는구나, 생각했다. 


생각이 흘르고 흘러 내가 가진 좋은 점은 무엇일까? 하고 고민했다. 고민해야지만 내가 가진 좋은 점이 겨우 떠오른다는 사실이 서글프다가도 그나마 떠오르기라도 한다면 참 다행이겠거니 여겼다. 눈을 감고 안간힘을 썼다. 이 대목에 이르러 어디선가 나를 아끼는 독자나 친구들이 한 소리씩 하겠다. 넌 이런 점이 좋아, 이런 점을 이미 가지고 있지-. 불행히도 그들의 목소리는 내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내적 동력으로만 움직인다. 주위에서 격려하고 칭찬해도 '진짜일까?', '거짓말이겠지.', '입에 발린 말이야.'라고 그 진정성을 의심한다. 못난 마음이다.




제기랄, 나도 좋은 점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게 좋은 점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좋은 점을 찾을 수 있는 마음이 존재했으면 좋겠다.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든, 좋은 점을 많이 가지고 있든 상관없다. 내게 그런 눈이, 시선이 여전히 남아서 내 안에서 빛나고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떠오르는 자기 파괴적인 생각과 눈 감으면 들리는 끔찍한 목소리를 지워냈으면 좋겠다. 고요히 방안에 혼자 앉아 있으면 '넌 못난 인생이야.', '실패자야.', '넌 쓰레기야.'라는 살기등등한 생각들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거나 출판사로부터 거절 메일을 받은 뒤에 드는 못난 생각들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한 글자씩 타이핑하면서 나는 내가 가진 좋은 점을 천천히 찾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살아있다. 


어떻게 살든 상관없이, 그냥 살아있기만으로도 참 다행이라는 점이다. 내게 좋은 점은 없다. 잘 모르겠다. 그건 나중에 찾아봐야지. 살아있기로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된 거라고 믿는다. 살아 있기 때문이 많은 것이 가능하다는 소설 <<허구의 삶>> 마지막 문장이 그리운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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