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키 리리 Jan 14. 2023

요즘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

언제부터인가 삶이 멈춰있다는 생각을 했다. 브런치는 꼴도 보기 싫고, 피드에 올라오는 다른 글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브런치를 떠나고 싶지만 윤상의 노래 <이사>에 나오는 가사처럼 '전부 가져가기에는 너무 무거운' 글이 많아서, 거기에 달린 댓글들이 소중해서 늘 주저앉았다. 그때부터였을까? 삶이 멈춰있거나 점점 멀어진다고 느낀 것이.


브런치 공모전에 똑 떨어지고 난 뒤, 난생처음 쓴 글이 한 권의 '브런치'가 되어 수상과 출간까지 이어졌다는 다른 분의 글을 읽으며 나는 글을 놓아버렸다. 구독자 수도 조금씩 빠지고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도 시들해졌다. 고쳐야 할 글도, 써야 할 글도 없는 주제에 닥치고 쓰면 그만이련만 팽팽한 줄이 날카로운 칼날에 끊어지듯 탁 끊어진 마음을 다시 이어 붙이려니 품이 많이 든다. 자리에 앉고 마음을 가다듬고 타닥타닥 불꽃을 살리듯 타자를 치는 일이 복잡한 연산처럼 어질어질했다.


난 왜 글을 쓰는가? 교사로 사는 일이 너무 지긋지긋하고 힘들어서 작가가 되고 싶었을까? 20대 후반 무렵 영광도서에서 하는 에세이 공모전에서 수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글은 내 도피처라고 썼다. 여전히 그로부터 한 뼘도 성장하지 못한 나의 글쓰기는 여전히 도피에 불과하다.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내 삶이지만 내 삶이 아니라고 믿었던 인생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글을 썼다. 책을 낸 뒤 어디서든 비중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허영심이었다. 




3년 전 심리상담을 반년 넘게 받았고, 작년엔 트라우마 상담을 몇 회 받았다. 두 상담자가 공통적으로 말한 부분이 있다. 글쓰기가 당신을 살렸다고, 글을 쓰면서 힘을 기르고 삶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을 길렀다고 말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 말엔 동의한다. 나를 살렸지만 그게 뭐라고 그게 뭐가 대수라고. 나는 여전히 이렇게 살고 있고, 별 볼 일 없는 상태인데.


나는 언제나 나와 불화했다. 늘 다른 곳에 가고 싶었고,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집값도 오르지 않는 변두리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고, 직장과 집이 가까워 나를 아는 이들이 많은 곳에서 모자를 꾹 눌러쓰며 도망치듯 거리를 걸었다. 등 뒤로 끊임없이 문이 닫히고 내 앞으로도 많은 문이 닫힌 채로 놓여 있다.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원했을까? 어떤 삶을 꿈꿨을까? 아니 꿈꿔본 적은 있을까? 


그래, 다른 삶을 꿈꿨지. 다른 생이 나를 기다린다고 믿었다. 5년 뒤면, 10년 뒤면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토록 오랜 세월 같은 곳에서 삶을 보내며 그제도 어제 같고, 어제도 오늘 같은 하루를 살고 있으리라 생각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조금씩 글을 쓰곤 했다. 망한 내 소설들, 시작만 화려한 습작 노트들, 갈기갈기 찢어버린 일기장. 몇 달 전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모조리 버렸다. 소설은 더 이상 쓰지 않기로 다짐했다. 이유는 별 것 없다.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작가로 불리고 싶어서 쓰는 글은 나조차도 매력적으로 읽을 수 없어서 실패했다. 일기장은 자의식과 자기 연민으로 흘러넘쳤고 그렇게 구질구질한 글을 보는 건 낯뜨거웠다.


남은 건 에세이 하나. 브런치에 쓴 온갖 글들. 나는 내 병을 팔았다. 우울증 말이다. 이상하게 우울이 극에 달해 감정이 흘러 넘칠 때면 글이 술술 풀렸다. 버지니아 울프처럼 주머니에 돌을 잔뜩 집어넣고 강물에 뛰어드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아니면 실비아 플라스처럼 가스 오븐에 머리를 넣고 자살하는 장면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들의 죽음을, 우울을 내 삶과 동일시하면서 스스로 뽐냈다. 내 예민함이, 평범하지 않는 감각이, 생의 이면을 뚫어지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내게 있다고 믿었고 그것들이 나를 내 삶과 불화하게 만들고 글을 쓰게 만들었다고 착각했다. 그 착각 속에서 내 영감이 팔딱팔딱 튀어 오르는 물고기처럼 솟아오를 때야만 글이 써졌다. 


요즘은 모든 것이 평온하고 조용하다. 들끓던 감정은 약 덕분인지 가라앉았고, 이런 내가 낯설어 글조차 잘 써지지 않는다. 영감이 죽었다. 난 천재가 아닌데, 글쓰기 근육을 부지런히 키워야 하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데 영감 타령을 하고 있으니 웃기는 노릇이지만 진심이다. 영감이 죽어서 아무것도 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의 나는, 모레의 나는 글을 쓰겠지. 이토록 형편없는 인간에 불과하지만. 


3월에 복직을 하고 하루하루를 허덕이며 정신없이 보내는 와중에 또 우울의 구렁텅이에 처박힐 테고 그럴 때면 또 글을 쓸 것이다. 지금과 다른 삶을 꿈꾸며 여전히 비중 있는 인간이 되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하얀 화면 위에 타닥타닥 타자를 치며 글을 쓰는 행위를 놓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글쓰기가 나를 또 살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가진 좋은 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