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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키 리리 Jul 20. 2023

나는 그저 운이 좋았다

어제 같은 연구실을 쓰는 A선생님께서 반에 지도하기 힘든 학생이 있다며 눈물을 흘리셨다. 그 학생은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이며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반 학생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도움을 줘야 할 학년 부장 교사는 힘듦을 호소하는 A선생님께 일을 크게 키우지 마라고 말했으며, 학교 상담사는 그 학생을 지도하지 말라는(?) 해결책을 내놓으셨다. 담임 입장에서 이게 말도 안 되는 해결책임을 안다. 그는 한 학기 동안 너무 시달리고 어디서도 도움을 받지 못해서 자신이 정신과치료를 받고 싶다고 호소하셨다.


나를 비롯한 동료교사들은 그의 힘듦을 묵묵히 들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의 호소를 들어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내가 한 생각은 그 학생을 내년에 내가 맡으면 어쩌지? 란 걱정이었다.  


내가 20년 가까이 교사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에게 쌍욕을 들은 적도, 학생이 내게 물건을 집어던진 적도 있고, 진상 학부모 때문에 온갖 민원에 시달리다가 교장실에 불려 간 적도 있다. 익명으로 이뤄지는 교원능력개발평가 만족도 조사 서술형에서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적힌 것도 보았다. 너무 힘들 때는 학교에 가다가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여긴 적도 있었으며 내일 아침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매일 빈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스에 나오지 않고 자살당하지 않고 여태껏 살아 있는 걸 보면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올해 우리 반 학생들은 대체로 좋고 나의 지도를 잘 따른다. 나는 그게 내 능력이 좋아서 그렇다고 믿지 않는다. 그저 뽑기 운이 좋았을 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운에 기대어 살 수는 없다. 




얼마 전, 서울 모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자신이 수업하던 교실에서 자살하셨다. 그 소식을 듣고 울었다. 그는 신규교사였다. 그는 왜 학교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 


그의 힘듦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선배교사로서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교사가 온갖 진상들의 민원에 시달릴 때 그 누구도 편이 되어주지 못한다. 학교 관리자는 대체로 이런 문제에 무심하거나 교사 편이 아니다. 교육지원청도 마찬가지다. 




나는 몇 년 전에 전국중등교사노조에 가입했다. 회비만 내는 회원이지만 나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믿으며 연대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를 돌보지 않으면, 위하지 않으면 누가 위해줄 것인가? 아무도 없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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