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에 옷을 두 번이나 갈아입을 정도로 식은땀을 흘리며 잤다. 그러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더 이상 오전 내내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가슴을 끈으로 꽉 조이는 듯한 통증이 사라졌으며, 숨이 가빠오는 증상도 없어졌다. 긴 불안과 고갈된 듯한 느낌, 스스로 기쁨과 즐거움을 약탈하며 산다는 절망감도 자취를 감추었다.
세 번째 우울증 삽화는 40일 남짓 지속되었는데 여타 다른 삽화와 기간은 비슷했다. 앞선 두 번의 삽화는 모두 약을 복용하고 있지 않을 때 일어난 일이다. 약을 복용했더라면 괜찮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은 항우울제를 먹고 있는 동안 발생해서 걱정이 되었다. 항우울제 말고도 파란 알약(아*****)을 먹다가 너무 졸음이 쏟아져서 약을 뺐는데 이게 문제였다. 약을 빼거나 바꿀 때 최소한 한 달 이상은 먹어봐야겠다.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단기간에 성급하게 약을 조절하면 문제가 일어나는 것 같다.
이번 삽화는 정말 힘들었다. 블라인드를 내리고 스스로 어둠 속에 가두었다. 내 마음속 한 구석에서는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오랫동안 없어지고 싶었다. 사는 건 너무 지치는 일이야, 나는 그리 믿었고 웃음도 잘 짓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것도 즐거운 일이 없었다. 소소한 행복을 찾으라는 말이 미친 소리 같았다. 운동을 하라는 말도, 좀 걸으라는 말도,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도, 햇볕을 쬐라는 말도, 지금을 살라는 말도 모두 내 맘 같지 않은 위로였다. 분명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위로하는지 알았지만 귓가에서 모조리 튕겨나갔다.
나는 응달만 디디고 다녔다. 사시사철 해가 드리지 않는 곳만 골라 서 있었다. 그곳에는 모든 것이 얼어붙고, 어둡고 칙칙할 것만 같지만 꼭 그렇지 않다. 어둠은 따뜻하고, 더 어두운 곳은 포근했다. 내 몸에 꼭 맞게 재단된 옷처럼 말이다. 내 손에서 뻗어나간 모든 것이 잿빛으로 변해도 그것 또한 좋았다.
움직이지 않아 이곳저곳에 불어난 살처럼 보기 싫은 것도 없어서 하루에 두 번씩 토하기도 했다. 내가 가진 구토의 역사는 말하자면 길지만 이제는 살을 빼기 위해서 토한다. 구토가 주는 기이한 위로 따윈 없다. 왜 이 지경이 되도록 스스로를 방치했냐고 따지지 말자. 나도 모른다. 시간이 그리 만들었고, 내가 그리 선택했다. 그렇게 게워내고 나면 위가 아팠다. 목이 따가웠다. 이러다가 위장에 탈이 나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과 싸웠다. 이게 얼마나 피로하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사람들은 알까? 자신을 잘 다독여서 전진하는 사람들은, 그들은 나와 같은 고통을 모를 것이다. 아니, 잘 알지도 모르지. 고통 없는 사람이 어딨을까? 다 그렇게 번민하며 고뇌하며 사니까. 다만 그들과 나의 차이점은 그들은 전진하고 나는 후퇴한다고, 뒤로 뒤로 뒷걸음질 치다가 결국은 벼랑 끝에 서서 꼬꾸라질 거라는 점이다. 이런 비극적인 생각이 온몸을 뒤덮어도 죽을 수는 없었다. 죽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계속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은 컸지만. 그건 분명 달랐다. 사라졌다가 기력이 좀 회복되면 돌아오고 싶었다. 돌아와서 평범한 일상을 살고 싶었다.
오늘 아침 아이의 손을 꼭 잡고 학교에 바래다주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뼛속까지 바람이 파고들었지만 어쩐지 아이의 손을 놓기 싫어서 평소와는 다르게 학교 정문까지 같이 걸었다. 둘째 녀석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어?" 하며 놀라워했다. 그러다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신나게 나와 걸었다. 뭔가 입을 열어 엄마에게 물어보면 엄마가 달아날까 봐 두려워서 그랬을까? 나는 지금처럼 아이의 곁에 오래오래 남아 있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헤어질 때 "나중에 만나." 하며 평소처럼 인사를 했다. 아이가 아무 일 없이 학교에서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다시 온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자기 전 우리 세 식구는 늘 인사를 한다. "잘 자, 사랑해." 이 말이 각자의 입에서 돌림노래처럼 모두 떨어져야 잘 수 있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안 된다. 나는 곁에 두 아이를 두고 잘 수 있어서 조금 행복했다. 멀리 떨어져 사는 남편까지 있으면 더 좋겠지만 현실상 불가능하다. 남편 없이 아이 둘은 부지런히 길러내는 나를 내가 꼭 껴안아주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 일 한 가지 더. 공모전 결과를 확인했다. 내 이름은 없었다. 몇 군데 응모한 공모전은 다 떨어지고, 올 한 해 간절히 원하는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간절히 원한 일은 공모전이고 당선이고 수상이고 그 무엇도 아니고 이렇게 소소한 일상을 글로 옮길 수 있는 이 시간임을 알고 있다. 미친듯한 속도로 가라앉을 때, 무서운 속도로 아래로 곤두박질칠 때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이 시간을, 이 평온한 아침을 나는 무엇보다도 그리워하고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