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울과 불안

by 키키 리리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가 말했다. 6주 만에 병원을 방문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요즘은 좀 어떠세요?"


"한 2~3주가량 죽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렸어요. 별 다른 이유가 없는 데도 말이죠. 삶은 그냥 무난하게 흘러가요. 큰 고민도 고통도 없고요."


"어떤 계기가 있을까요?"


"전혀요."


"언제부터 그랬나요?"


"4월 말부터 그랬어요."


"그러면 어떤 패턴이 있을까요? 언제 그런 생각이 드는지 한 번 떠올려보세요. 환절기라서, 봄이라서, 생리 전이라서...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거든요."


곰곰이 생각해 봐도 내게 어떤 패턴이 있는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계절을 타지도 않고, 생리증후군도 딱히 없다. 나는 그의 답답함을 덜어주고 싶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그저 사라지고 싶었는데 이번에는 진짜 죽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삶이 버겁더라고요. 숨 쉬는 것도요. 타인에게 제 상황을 들려줬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배부른 소리 한다'였어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제 이야기를 털어놓는 건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은 정말 이해를 못 합니다. 우울증을 오래 앓았던 사람은 특별한 계기가 없어도 뇌가 그 방향으로 가는 경향이 있어요."


"... 점심 먹고 햇볕을 쬐면서 15분가량 걸어요. 이번주에는 퇴근 후에도 걷기 시작했죠. 달리기도 했고요. 그러니 어느 순간 죽고 싶다는 생각에서 벗어났어요."


"아, 그렇군요. 참 다행입니다. 스스로를 돌보는 일을 잘하셨네요. 정말 힘들고 기력이 없으면 몸을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조차 안 들거든요."


나는 하루 종일 잠만 자던 지난가을, 겨울을 떠올려보았다. 그때는 정말 무기력해서 운동화를 신고 집밖으로 나가는 일을 엄두에도 내지 못했다. 이번에는 그 지경이 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어제는 학교에서 체육대회를 했거든요. 자진해서 교사 출전 경기를 나가서 뛰기도 했어요."


내 말을 듣던 의사는 놀라워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 순간이 지나면 또 우울이 찾아오죠. 자살한 연예인들이 죽기 전날까지 열심히 활동하다가 자살하는 심정이 이해가 가요."


그는 계속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도 있지만 지난번에 약을 줄인 게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높아요. 다시 약을 늘려보는 건 어떨까요?"


"싫어요."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작년 12월에 새롭게 처방받은 약(A)을 먹고 5kg가량 살이 쪘기 때문에 더 늘리기 싫었다. 게다가 약을 끊는 게 내 목표다.


"어떤 사람들은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평생 관리하기도 하죠. 소량이라도 약을 먹어요. 그러니 1차 목표는 소량이라도 약을 먹으면서 상태를 유지하는 걸로 잡으면 어떨까요?"


"네."


나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하지만 정말 약을 끊고 싶긴 했다.


"지난번에 줄인 약(A)을 다시 늘리기 싫다면 항우울제만이라도 조금 늘려봅시다. 체중 증가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면 A를 늘리면서 식욕억제제를 쓸 수도 있어요."


나는 식욕억제제를 먹어본 적이 없지만 그 약을 먹기 싫었다. 우리는 항우울제 용량만 늘리는 것으로 일단 합의를 보았다. 그는 계속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죽고 싶었다는 10년 차 우울증 환자가 앞에 있다면 나라도 그런 표정을 지었을 테다.


"좀 빨리 만날까요? 2~3주 후예요."


그가 왜 이런 제안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네."


"퇴근 후에도 시간 되시죠?"


"네."


"상황이 좋지 않으면 빨리 오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일어날게요."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3주 후에 예약 시간을 잡고 싶었지만 내가 방문하려는 날은 예약이 꽉 차서 결국 4주 후에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것으로 결정 났다.




세상엔 마음이 아픈 사람이 너무나 많고, 나도 그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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