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마 2

by 키키 리리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무더운 날씨도 15일쯤 되자 변했다. 하늘은 짙은 회색 구름으로 뒤덮였다. 더운 것은 매한가지였으나 일단 해가 사라졌으니 돌아다닐 만 했다. 게다가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고 있어서 나가기 딱 좋은 날씨였다. 나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내가 바지를 꺼내 입고 나갈 준비를 하자 엄마가 말했다.


“주인집 할아버지가 태풍 온다고 안 하던?”


“몰라, 아침에 할아버지가 이번 태풍은 우리나라를 그냥 옆으로 지나갈 꺼라고 하던데, 중앙기상댄가 거기서 말했대.”


“그래도 빨리 들어와라. 하늘이 심상치 않은데.”


“응, 알았다.”


나는 엄마의 당부에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난희네 집으로 달려갔다.


대문을 열자 난희가 보였다. 그 애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방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다.


“나가자.” 나는 신이 나서 말했다.


“할머니 와야 돼. 할머니 슈퍼 갔다.”


“곧 오실 거다. 저녁땐 비 올 것 같아서 지금 아니면 못 논단 말이야. 나가자.”


나는 난희가 있는 방 앞에서 발을 쾅쾅 굴렀다.


난희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를 따라나섰다. 우리는 늘 그러하듯이 방파제로 나갔으나 징그럽게 생긴 갯강구 무리를 쳐다보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난희는 도무지 흥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야, 너 점심 안 먹었나? 와 그리 힘이 없노?”


“몰라. 밥 많이 안 먹었는데……. 좀 더 재미난 일 없나?” 난희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 그럼 아이스크림 사 먹자. 내 주머니에 돈 있다.” 내가 막 이런 말을 던졌을 때, 누군가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마 어디쯤에서 우리를 계속 지켜보던 사람인지도 모른다.


“아저씨가 더 재미난 거 알고 있는데, 같이 갈래? 유람선도 타고, 맛있는 짜장면도 먹을 수 있어.”


순간 난희의 눈이 반짝거렸다. “배를 탈 수 있다고요?”


난희의 물음에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내 난희에게 건네주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계절에 맞지 않는 긴 바지와 셔츠를 입은 아저씨는 내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엄마는 내게 낯선 사람이 말을 건네면 절대 대꾸도 하지 말고 무조건 그 자리를 피하라고 했다. 혹은 강제로 손을 잡거나 몸을 잡아끌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치라고 말했다. 나는 엄마한테서 배운 대로 아저씨를 째려보면서 뒷걸음질 쳤다.


“난희야, 가자.”


하지만 그 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미 난희의 손은 아저씨의 팔을 잡고 있었다.


“난희야, 가자고. 할머니 기다린다.”


“니가 할머니한테 말해라. 엄마, 아빠가 위험하다고 만날 배 못 타게 한단 말이다. 내 배 타고 놀다가 갈게.”


불행히도 이것이 내가 난희에게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안 된다. 집에 가자.”

“난희야, 가자고.”

“난희야, 제발.”


난 아마 필사적으로 난희를 말렸을 것이다. 그것도 여러 번 소리를 치면서. 아저씨는 모르는 사람이었고, 엄마는 그런 사람을 조심하라고 말했으니까.


그러나 난희는 아저씨의 팔을 잡고 봉고차에 올라탄 뒤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당황한 나는 난희네 집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직 오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집으로 뛰어가서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르짖었다.


“엄마, 엄마.” 나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동생에게 젖을 물리던 엄마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나를 맞이했다. 엄마 얼굴을 보자 울음이 터져 나왔다. 컥컥대며 한참을 운 다음에야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할 수 있었다. 내가 난희더러 아저씨를 따라가라고 부추겼다고. 아저씨를 따라가면 재미있는 일이 많을 것이라고. 도대체 왜 그랬을까.


아니,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난희를 말렸다. 난 아마 난희를 말렸을 것이다. 따라가지 말라고 사정하고 애원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믿고 싶으니까. 그러나 엄마 얼굴을 보자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말이 흘러나왔다.


훗날 엄마는 내게 "니가 한 짓 중에 가장 악랄하고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었다."라고 이야기했다.


내 말을 다 들은 엄마는 내게 잠자코 있으라고 했다.


“니가 난희한테 아저씨 따라 가보라고 한 말은 절대 입 밖에 내선 안 된다. 알겠나?”


“왜? 왜 안 되는데?”


“엄마가 알아서 할 테니 니는 가만히 있거라.”


나는 대답 대신 마당으로 나가 바다 쪽을 쳐다보았다. 바다 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깃배도 유람선도 보이지 않았다. 파도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몸이 자꾸 뒤로 밀려났다.


“영준아, 들어오라니까.”


엄마는 잔뜩 신경이 곤두서서 소리쳤다. 나는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음을 느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단지 난희 할머니에게 빨리 말해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집 밖에 한 발자국도 못 나가게 막았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방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불안하게 앉아있었다.


바람 소리는 점점 더 커지더니 집에 있는 창들이 모조리 덜컹거렸다. 급기야 비가 퍼붓기 시작했는데, 빗줄기는 거의 사선으로 땅바닥에 내리 꽂혔다. 한참 뒤에 그 비를 뚫고 난희 할머니와 어머니가 우리 집에 나타났다. 두 사람은 비에 홀딱 젖어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영준아, 영준아. 난희 못 봤나? 암만 찾아도 난희가 없다.”


우리 집 문 앞에서 나를 부르는 그들에게 엄마가 재빨리 문을 열어주었다.


“얼른 들어 오이소. 비를 완전히 다 맞으셨네요.”


엄마는 내게 눈짓을 하며 잠자코 있으라고 주문했다. 엄마는 내가 말한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그들에게 이야기했다. 심부름 다녀오던 내가 난희를 봤다고. 그 애가 어떤 남자와 함께 차에 올라타서 사라졌다고. 엄마는 아는 사람이나 친척 삼촌이 놀러 와서 난희를 데려간 것인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말도 덧붙였다.


엄마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난희야, 난희야.”를 연거푸 외쳐댔다. 얼마나 고통스럽게 울어대는지 지켜보는 엄마의 얼굴은 시커멓게 변해버렸고, 나 역시 무서운 생각을 떨칠 수 없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정신을 먼저 차린 쪽은 난희 어머니였다. 그녀는 내게 난희를 본 시각과 차량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집으로 전화를 해서 남편에게 파출소에 가보라고 했다. 그들은 엄마에게 내가 뭔가를 기억해내면 꼭 알려달라고 부탁한 뒤 집 밖으로 나섰지만 이내 다시 들어오고 말았다. 빗줄기는 더 거세졌고 파도가 거대한 악마처럼 아가리를 벌린 채 해안가로 몰려오는 바람에 지금 당장 밖에 나가는 일은 매우 위험했다.


“바람이 좀 잦아들면 그때 내려 가이소.” 엄마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게다가 아버지마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시내에 있는 직장에서 꼼짝없이 밤을 보내야 한다고 연락을 했기 때문에 그들을 만류하는 엄마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태풍 셀마(THELMA)가 우리나라에 별 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고 대한해협 쪽으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기상대의 예보와 달리 태풍은 그날 밤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맹렬한 기세로 남부지방을 강타했다. 셀마가 지나가던 그날 밤은 몹시 무서웠는데 약한 지붕 사이로 비가 줄줄 샜고, 위협적인 파도가 우리집 유리창을 후려친다는 착각을 할 정도로 비가 많이 내렸다.


하지만 가장 두려웠던 점은 이렇게 끔찍한 날씨 속에서 난희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난희의 할머니는 밤새 난희의 이름을 웅얼거리면서 자다 깨다를 반복했고, 엄마와 난희 어머니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난희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도했다.


날이 밝아오자 태풍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심지어 예의 그 뜨거운 7월의 해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늘에 떠올라 땅을 활활 불태우고 있었다. 우리는 아침밥을 먹는 것도 잊은 채 난희네 집으로 다 같이 걸어갔다. 동생을 등에 업은 엄마가 내 손을 꼭 잡았다. 길은 산에서 흘러내린 흙으로 질퍽거렸고, 뿌리째 뽑힌 나무와 여기저기 부서진 채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입간판이 군데군데 보였다.


난희네 집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집 내벽까지 무너진 탓에 만약 사람이 안에 있었다면 화를 피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난희 아버지가 파출소에서 발이 묶이는 바람에 화를 면했다는 점이었다. 난희 할머니와 어머니는 생사를 알 수 없는 난희와 부서진 집 때문에 삶에 대한 의욕을 완전히 상실한 듯 보였다.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아이고, 아이고”를 외치는 할머니를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난희는 그날 오후 집에서 한참 떨어진 바닷가 방파제 아래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엄마는 내게 난희가 태풍 때문에 심하게 다쳐서 결국 죽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난 믿지 않았다.


이사 가는 날 아침, 난희 할머니가 나를 찾아와 난희에게 그 몹쓸 짓을 한 놈의 얼굴을 기억하냐고 물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엄마가 “얘는 멀리서 봐서 잘 알지 못해요.”라고 중간에서 말을 가로챘지만.


우리 가족은 그 해 여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부산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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