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수업이 끝난 뒤 집에 돌아오자 엄마는 약에 취해 잠을 자고 있었다. 하루종일 커튼을 걷지 않아 낮과 밤을 잘 분간할 수 없는 안방 침대에서 엄마는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항우울제로 뭔가를 바꿀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도 나도 그것을 알고 있다. 다만 이미 예정된 결과를 좀 더 유예할 수 있으면 다행일까.
나는 냉장고 문을 열고 무와 소고기를 꺼내 국을 끓인 뒤 식탁에 홀로 앉아 저녁을 먹었다. 엄마는 요리를 거의 하지 않았다. 가끔 정신을 차리면 베란다 밖을 멍하니 쳐다보거나 방 안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하지만 엄마는 집 밖으로는 도저히 나갈 수 없다고 말한다. 머리를 빗고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미는 행동은 마치 수백 가지 일이나 되는 것처럼 무겁고 복잡하게 느껴진다고. 아버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 역시 엄마를 도울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도 서로를 돕지 못한다.
부모님은 몇 해 전 이혼을 했고, 서로 연락을 거의 하지 않았다. 가끔 아버지가 생활비나 학비 문제로 전화를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드물었다. 두 분의 불화는 울산에서 부산으로 돌아올 시기쯤부터 시작되고 있었는데 이유는 정확히 몰랐다. 두 분 다 자식 앞에서는 철저히 냉정하게 행동하셨고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침묵으로, 무관심으로 서로를 끊임없이 밀어냈다. 아마 난희 때문이라고 짐작은 한다. 물론 내가 알지 못하는 두 분 사이의 일이 존재하겠지만.
그러나 내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난희의 죽음 앞에선 우리 모두가 공범이라는 사실이다. 아버지 역시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울산에서 다시 부산으로 그렇게 빨리 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주일 뒤 윤희를 만났다. 강의실 문을 열고 나타난 윤희는 몸매가 여실히 드러나는 청바지에 올이 굵은 흰색 니트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나와의 재회를 꽤 고대한 것 같았다.
“한영준!”
윤희는 강의실 입구에서부터 큰 소리로 내 이름을 외치더니 성큼성큼 뛰어왔다.
“안녕, 영준아!”
“제발 조용히 좀 말해.”
나는 당황했다.
“왜 그래? 나, 안 반가워?”
“부탁이야. 사람들이 힐끔거리잖아.”
“대체 왜 그러니? 사람들이 너를 보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
윤희의 말에 눈꺼풀이 바르르 떨렸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안 거야?”
“네 이름을 어떻게 아냐고? 지난번에 교수님이 '한영준.' 이렇게 부르니까 네가 '예.'하고 대답했잖아.”
윤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식으로 대꾸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윤희는 주위를 유유히 둘러보더니 내 어깨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봐. 다 너를 쳐다본다고. 엄청난 미인을 곁에 두신 비결은 뭡니까? 다들 이런 눈빛이야. 네가 고개만 들면 다들 손을 들어 질문할 기세야.”
윤희가 옆에서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거의 듣지 않았다. 얼른 저 녀석들의 시야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누군가 나를 쳐다보거나 수군대면 이상하게 위축이 되었다.
수업이 시작되자 윤희는 가지고 온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노트 사이에 숨겨서 읽기 시작했다. 교수님이 몇 번 눈치를 주는 듯 보였으나 윤희는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걸지도.
나는 수업 중간중간 곁눈질로 윤희를 훔쳐보았다. 윤희가 교수님에게 혼나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으나 곧 신경을 끄고 말았다. 과도한 자신감과 발랄함으로 뭉친 윤희는 매력적인 여자였지만 나와는 애초부터 다른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수업이 끝난 뒤 우리는 구내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는 컵라면과 삼각 김밥을 손에 들고 식당 바깥에 위치한 벤치에 앉았다. 라면이 붇기를 기다리면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오늘은 책이 바뀌었대. 아웃 오브 아프리카.”
내 말은 들은 윤희는 피식 웃으면서 “눈썰미 하나는 끝내주는군.”이라고 중얼거렸다.
내가 잠자코 있자 윤희가 입을 열었다.
“3년 전 여름, 저를 만난 일이 이제는 기억나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윤희를 쳐다보았다.
“바닷물에 뛰어들어 죽을 뻔한 남자가 있었지.”
그 순간 윤희는 감격스러운 장면을 맞이한 듯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때 네가 같이 울어줘서 정말 다행이었어. 나, 정말 슬펐거든.”
윤희는 그때 일을 생각하는지 우울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1997년은 난희를 위해 바닷가를 찾기 시작한 첫해였다. 이미 개장한 해수욕장은 번잡하기 짝이 없었고 누군가를 위해 조용히 기도를 하거나 울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그나마 해운대나 광안리에 비해 덜 복잡할 것이라고 찾아간 송정 역시 부산하긴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저녁 먹고 찾아간 바다였기 때문에 해수욕객들은 어느 정도 빠져나간 뒤였고 군데군데 자리를 펴놓고 술판을 벌이는 사람들과 폭죽놀이를 하는 고등학생들만 더러 보였다.
그런데 누가 만취한 상태에서 갑자기 바다로 뛰어들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말릴 틈도 없이 말이다. 사람들이 그를 건져 모래사장에 뉘어 놓았을 때 구경꾼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었는데 평온한 얼굴이었다. 바닷물에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 위를 어지럽게 덮고 있었으나 너무나 편안해 보여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순간 난희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그 아이도 저렇게 편안한 얼굴로 죽었기를 바라고 있는 나 자신이 느껴졌다. 비겁하기 짝이 없었다. 그 아이는 절대 편하게 죽지 못했을 것인데 어쩌자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순간 구경꾼들 틈에 섞여 있던 한 여자가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바로 내 옆에 서 있던 여자였다. 그녀의 울음소리는 이상한 방식으로 나를 잡아끌었는데 과거에 내가 저지른 잘못으로부터 나를 꼼짝할 수 없게 묶어놓았다. 그리고 결국은 내가 난희를 위해 울도록 만들었다.
나는 난희가 하늘에서 평온하게 지낼 수 있기를 기도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내 죄가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닫자 눈물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죽은 줄 알았던 그 남자가 깨어나자 내가 너를 안고 방방 뛰었지. 얼마나 기뻤는지 너는 짐작도 못할 거야.”
“맞아. 기억나. 그때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너는 짐작도 못할 거야.”
내가 윤희의 말투를 흉내를 내자 그녀가 깔깔대며 웃었다.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난 뒤에도 넌 바닷가에 하염없이 앉아 있더라. 내가 말을 걸고 싶었는데, 얼굴이 너무 슬퍼 보여서 차마 다가갈 수 없었어.”
“그때 왜 그렇게 울었던 거야? 아는 사람이었어?”
“아니. 몰라. 모르는 사람.”
“왜 그랬어?”
“그냥 슬펐어. 이유는 없어. 그저 기억나는 건 내 슬픔에 네가 공감해 주고 같이 울어줘서 고마웠다는 거야. 나는 그게 미치도록 필요했거든.”
윤희의 얼굴을 보자 차마 난희 때문에 울었다는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난희에 대한 이야기를 그녀에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는 3월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불어터진 라면을 먹었다. 윤희는 지난 만남처럼 열심히 아주 열심히 밥을 먹었다. 컵라면과 삼각 김밥 3개를 먹어치운 윤희는 트림을 “끄윽.”하고는 쑥스러운 듯이 얼굴을 붉혔다.
나는 짐짓 모르는 척 남은 라면을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오후 수업 있니?”
“2시에 있어. 공학미적분학.”
윤희는 자못 실망한 기색이었다. 잠시 고민에 빠진 윤희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그거 빼먹고 나랑 어디 좀 가자.”
“또 어디? 어디를 가는지 정확히 이야기를 해 줘야 따라가지.”
내가 묻자 윤희는 내 귀에 가까이 다가오더니 커다랗게 소리쳤다.
“우리가 처음 만난 곳!”
윤희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게다가 주변 벤치에 앉은 학생들이 죄다 쳐다보는 바람에 빨리 자리를 뜨고 싶었다. 당황한 내가 대답을 망설이고 있자 윤희가 또다시 다가왔다.
“알았어, 갈게. 제발 조용히 말해.”
“근데 넌 왜 그렇게 주위 눈치를 많이 봐? 하고 싶은 말도 꾹꾹 누르고, 해야 할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그런 식이라면 난 하루도 못 버텨.”
윤희의 말을 듣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갑자기 왜 그래?”
“지난번에도 그러던데 넌 참 아는 척을 많이 한다.”
“그만해.”
“다른 사람 인생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하지 마. 네가 보는 것이 항상 옳다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삶을 마음대로 평가하고 재단할 수 있다고 믿지 마.”
나는 윤희에게 잔뜩 쏘아붙이고는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음 강의실이 있는 건물로 걸어갔다.
그날 수업은 머릿속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놀라고 상처받았을 윤희의 얼굴이 계속 떠올라 마음이 괴로웠다. 사실 내가 화가 난 것은 윤희의 말 때문이 아니었다. 윤희는 정확하게 내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고 나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저 엄마에게 “그때 왜 그랬어요?”라고 묻고 싶었고, 내 말을 들은 엄마가 “너를 위해서였단다, 아들아.”, “미안하다.”, “우리 난희를 위해서 기도하자.” 따위의 말을 해주길 기다렸다. “넌 너무 어렸고, 난희에게 그렇게 말할 수도 있었어.”란 말을 해주길 기다리고 기다렸다.
하지만 엄마는 그렇기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죽기 전 내게 남긴 말은 이것이었다.
“넌 끔찍한 일을 저질렀어. 아주 악랄하고 비난받아 마땅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