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나는 진료실 문을 열고 조용히 인사했다. 내 죄를 고백하려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지난달에 처방해 주신 리튬은 먹지 않았어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가 조울증은 아닌 것 같아서요. 기분이 튀어 올라서 과한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리튬은 잘 모아뒀어요."
"그렇군요. 큰 변화는 없었나요?"
"네. 별 이상 없었어요. 평소처럼 잘 지낸 편이죠."
다행히 그는 나를 탓하거나 처방해 준 약을 먹지 않았다고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기분 변화가 어떤지 앞으로 잘 살펴보라고 이야기했다.
"얼마 전에 자동차 사고가 났거든요. 상대방 과실 100%였는데 사고처리할 때도, 그 이후에도 큰 감정의 변화가 없었어요. 예전 같으면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을 텐데 평온하게 잘 지나갔죠. 다만......"
나는 잠시 숨을 들이켰다.
"불안이 커지면 폭식과 구토를 반복해요."
"어떤 일이 있었나요?"
"학생들 시험기간이었어요. 제 과목 시험을 앞두고 불안이 커져서 시험 전날 엄청 먹고 죄다 토해버렸어요."
"어떤 불안이죠?"
"시험 문제에 오류가 생기면 안 된다, 틀리면 안 된다, 재시험 치면 안 된다. 이런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요."
"그렇군요. 완벽주의 때문이군요."
"맞아요."
"그래서 확인하고 또 확인해요. 다른 선생님과 교차검토도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과 믿음이 없어요."
"아시겠지만 대여섯 번 확인할 것을 두 번만 확인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찜찜함을 견뎌보세요. 이것도 학습될 수 있어요."
"잘 알아요. 지난달에 제 사물함 잠금장치가 고장 나서 어쩔 수 없이 계속 열고 다녔거든요. 잠그고 다니지 않아도 별 일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 뒤로는 그냥 놔둬요."
"맞아요. 이것도 학습된 거라고 볼 수 있죠. 그런 식으로 시험문제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 그 찜찜함을 견뎌보세요."
잠시 뒤 의사가 질문을 했다.
"이때까지 한 번도 시험 문제에 오류가 난 적이 없나요?"
"네."
나는 단호히 말했다. 단순 오타나 시험 시간 안에 수정할 수 있었던 경우를 제외하면 치명적인 오류나 재시험을 친 경험은 없다.
그가 놀라워했다.
"20년 가까이 매년 4번 이상 시험 문제를 내지만 단 한 번도 재시험을 친 적이 없어요."
"아, 대단하네요."
나는 갑자기 슬퍼졌다. 틀리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쓰고 용을 썼는지 정신이 너덜너덜해질 지경이었다.
"그러면 혹시 문제에 오류가 난 다른 과목을 본 적은 있나요?"
"네. 수학 시험이었는데 재시험을 친 적이 있거든요. 그 담당 선생님은 욕을 많이 들으시더라고요. 하하."
나는 겸연쩍게 웃었다.
"학부모들한테 항의도 많이 받고 애들한테 불만도 듣고......"
의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시험문제 출제에 일부러 실수를 하라고 할 수는 없으니 대신 확인하는 횟수만 좀 줄여봅시다. 그렇다고 달라질 게 없잖아요?"
"네, 알겠어요."
사실 2~3차례 검토하고 난 뒤에 이어지는 검토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 달라질 게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의 말 대로 검토하는 횟수를 좀 줄여보기로 한다. 12월에 시험출제를 한 번 더 해야 하니 그때 적용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불안과 강박은 쌍둥이다. 불안이 커지면 강박이 따라온다. 완벽주의 성향도 그렇다. 우울증 치료를 꾸준히 한 덕에 기분이 심하게 처지거나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 다만 불안장애와 완벽주의 성향으로 인한 강박 증상이 감당이 안 된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강박 증상은 폭식과 구토로 이어진다.
자유롭고 가볍게 살고 싶다는 내게 의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무 힘들면 직업을 그만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하지만 쉽게 그럴 수는 없으니 방법을 찾아야지.
내년에 학급수가 줄지도 않는데 내 과목을 감원시켜서(교사 수를 줄였다.) 주당수업시수와 업무가 엄청나게 늘어날 판이다. 게다가 담임까지 맡을 게 뻔한데 감당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올해는 운이 좋아서 담임 반 애들이 순하고 금쪽이도 없어서 잘 버티고 있다. 하지만 정말 운이 좋아서다. 내가 잘해서가 절대 아니다.
옆반 선생님은 어제 교권침해를 당해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심호흡을 했다. 그에게 힘들면 병가를 내라고 조언해 줬다. 교권보호위원회도 열고 선도위원회도 열라고 했다. "별일 아니다"라는 관리자의 말 따윈 무시하라고 위로했다. 나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을 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관리자 때문에 몹시 힘들었기 때문이다.
옆반 선생님을 지켜보며 이 직업이 지뢰밭 건너기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질지 모르겠다. 그럴 때는 도망치는 게 상책이지만 내 직업이기 때문에 버틸 때까지 버텨보기로 한다. 불안도 강박도 완벽주의도 온갖 스트레스도 내가 잘 데리고 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