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실에서 점심을 먹고 나면 항상 15분가량 운동장을 걷는다. 햇살을 쬐며 걸으면 우울증 회복에 도움이 된다기에 몇 년 전부터 시작했다. 보통은 동료들과 같이 걷지만 오늘은 혼자 걸었다. 그러다가 밥 먹고 급식실에서 나오는 우리 반 서연이(가명)를 만났다.
자기소개서에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라고 적었던 서연이.
단짝 친구가 자기 험담을 해서 그 친구와 결별한 서연이.
반에는 친한 친구가 전혀 없는 서연이.
늘 혼자 있는 서연이.
지각이 잦은 서연이.
고등학교 졸업 후 네일숍을 운영하고 싶다는 서연이.
말수가 적은 서연이.
늘 책을 읽는 서연이.
자신은 공부를 못해서 친구가 없다는 서연이.
지난주 금요일에 울고 있기에 다가가서 까닭을 물으니 대답이 없던 서연이.
나는 "우리 서연이, 밥 잘 먹었니?"라고 말하며 아이의 팔을 슬며시 잡았다. 그렇게 우리는 20분을 같이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아이의 진로와 친구 관계에 대한 고민을 들어주었다. 자신의 단점만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에 안타까움을 느꼈고, 서연이가 가진 좋은 점을 하나씩 말해주었다. 그러자 서연이는 "하핫"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그 웃음소리가 좋았다.
우리 반 반장은 중국어 시간에 혼자 앉아 있는 서연이 옆자리를 채워주었고, 서연이가 친구 때문에 속상할 때면 서연이 곁에 다가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했다. 서연이가 누군가와 마찰을 빚거나 몸이 아플 때면 내게 다가와 서연이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서연이가 말했다. "반장은 꽤 괜찮은 아이 같았어요."
나는 서연이 곁에 반장이 있어서, 서연이가 그 아이의 고마움을 알아봐 줘서 좋았다.
운동장을 쉴 새 없이 도는데 지나가는 학생들마다 내게 "감자쌤! 싸랑해요~", "감자쌤, 감자쌤!"하고 나를 부르며 인사했다.
서연이가 말했다.
"인기가 굉장히 많으시네요."
"내 수업이 좀 재미있잖아?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설명도 재미있게 하고."
서연이가 내 말을 가만히 듣더니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 그래도 좀 힘들어 보여요."
나는 놀랐다.
"그래 보여?"
"네. 내성적이시잖아요."
"맞아. 교실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셈이지."
교실 문만 닫고 나오면 온몸이 해파리처럼 흐물흐물해진 채 교무실로 향하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헤어지기 직전 서연이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 발걸음이 너무 빨라요."
"아니 나는 네 속도에 맞추는데?"
우리는 싱긋 웃고는 각자 교무실로, 교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