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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키 리리 Sep 08. 2024

37. 제 나름의 소심한 복수예요.

토요일 이른 아침.


소파에 조용히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말이 나오기 전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잘 지냈어요. 몸이 처지지도 않고,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


"개학했지요? 학교 생활은 어땠어요?"


나는 반에서 일어난 학폭 사건에 대해 짧게 언급한 뒤 침울한 어조로 대답했다.


"피해자 쪽 학부모님이 그러셨어요. A가 1학기에도 잘못된 행동을 했는데 그때 바로잡았더라면 어땠을까, 하고요. 그 말이 꼭 저를 탓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가뜩이나 반에서 친구를 괴롭히는 일이 일어나서 맘이 불편한데 그 말이 불을 지폈어요. 모든 게 제 잘못인 것 같아요."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나는 그저 뽑기 운이 나빴을 뿐이다. 반 편성이 완성된 학급 명단 가운데 손이 가는 대로 그저 하나를 뽑았을 뿐이다. 나는 1학기부터 온갖 사건사고가 생겼던 학급을 떠올리며 담임으로서의 내 역량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지만 애써 운이 나빴다고 마음을 다독였다.


"리리씨가 정말 잘못한 게 있다면 그저 뽑기를 잘못했을 뿐입니다."


나는 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A와 A의 행동에 동조한 B를 불러서 이런저런 지도를 했는데 그 뒤로 마음이 진정이 되질 않았어요. 과거의 일이 마치 오늘 일처럼 눈앞에 펼쳐졌어요. 2009년에 3명의 학생들이 담임인 저에게 심하게 반항을 했고, 그들과 그들의 보호자는 교권침해에 해당하는 온갖 일들을 저질렀는데 저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어요. 수개월을 그렇게 보내니 앞이 보이질 않았어요. 죽으려고 했지요. 심지어 그들 중 한 명은 그다음 해 제가 수업에 들어가자 1년 내내 수업을 듣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 있었어요."


의사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는 상담을 할 때마다 중요한 내용을 기록한다. 


"남에게 도와달라고 말도 못 했고, 도와달라는 말이 내게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어요. 병원에 가볼 생각도 못했지요. 숨이 컥컥 막히고 심장을 누가 움켜쥐는 것처럼 아팠는데 과거의 순간이 다시 눈앞에 재현될 것 같아서 불안이 심하게 올라왔어요. A와 B가 이제는 반 친구가 아닌 담임인 나를 대상으로 괴롭힐 수 있다는 비이성적인 사고에 사로잡혔어요."


"트라우마군요."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숨을 천천히 쉬며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할 거예요?"


"병가도 낼 생각이고, 교권보호위원회도 열면 돼요."


"그때는 그런 게 없었나요?"


"네."


"그때보다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기가 많이 생겼어요. 대답도 바로 하는 것을 보니 많이 건강해졌어요."


"그런가요?"


나는 약간 어리둥절했지만 그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피해자 쪽 어머니는 학폭 접수를 하시면서 그들이 잘못을 깨닫길 바란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힘든 일이죠. 그들의 태도를 보니 반성하는 것 같지 않았어요. 심지어 다른 애들한테 진 것 같다고 이야기했대요."


"그 학생들에게 불편함을 줘야 합니다."


"네?"


"자신이 이런 행동을 하면 불편함이 생긴다는 걸 알게 해줘야 해요. 반성하는 일은 드뭅니다."


"아, 그렇군요."


씁쓸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교장 선생님이 저에게 내년에 부장을 하라고 또다시 압박을 하셨어요. 지금 담임에 업무도 많고 학교에서 수업도 제일 많이 하는데 왜 자꾸 일을 시키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제가 일을 잘하기 때문이겠죠. 책임감도 강하고."


교장 선생님은 내 병에 대해 알고 있다. 그는 내게 강인해지라고 주문했다. 억울한 마음이 불쑥 솟구쳤다. 올 초엔 부장 하라고 압박을 넣던 교감 선생님이 내게 의지로 어려움을 극복하라고(우울증과 같은 고비를 의지로 극복하라는 뉘앙스) 하셨는데-.


"안 거지요?" 의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네. 하지만 진단서를 내밀어도 교장 선생님이 정하면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해요."


"그러면 휴직해 버려요."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의사가 쉬라고 한다며 나를 팔아요. 거짓말이 아니잖아요. 실제로 지금도 버겁고요. 그러니 힘들다는 이야기를 꼭 하세요."


"알았어요."


나는 그의 말을 꼭꼭 씹어 삼켰다.



"업무 때문에 어떤 선생님과 마찰이 생겼어요. 전 그분에게 전혀 그런 말을 한 적 없는데 그분은 제가 그 말을 했다고 박박 우기시는 거예요. 전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당시 업무 때문에 제가 너무 바빴거든요. 어떻게든 사건을 마무리하고 싶어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어요."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전 그날 너무 우울해서 집에 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어요. 제가 미쳤다고 생각했어요. 업무에 매몰되다 보니 동료에게 심하게 대했구나, 그리고 그걸 기억조차 못하는구나, 하고요. 그런데 말이죠."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며칠 뒤에 그분이 저에게 오더니 자기가 오해했다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더라고요."


의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서요?"


"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어요. 보통 상대방이 사과를 하면 괜찮아요, 이렇게 대답하잖아요? 전 그냥 침묵했어요. 제 나름의 소심한 복수지요. 전 정말 심각했거든요."


"예전 같으면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제 마음을 묻어둔 채 그냥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대답했겠죠."


"확실히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어요."


"그렇죠?"


나는 그를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


그는 나와의 대화를 잠시 곱씹어보더니 약을 그대로 먹자고 제안했다. 내심 약을 줄이길 바랐는데 여전히 제자리다. 


"알았어요. 계속 먹어보죠. 명절 잘 보내시고, 한 달 뒤에 뵐게요."


나는 그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학급에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지만 일단 주말은 푹 쉬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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