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배운 싸움의 본질

23.01.03 날씨 구름 조금

by 김이서


"아니야", "싫어요", "하지마"


요즘 네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야. 네가 말이 늘고 생각이 자라면서 우리 일상에 소소한 전쟁이 벌어졌어. 넌 알몸으로 도망쳐서 이불속에 숨고, 내가 이불을 걷으려 하면 쉬지 않고 발차기를 하지. 두 살 밖에 안 됐는데 왜 이렇게 힘이 센지 당해낼 수가 없어. 그래서 엄마는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단다.


옷을 미리 꺼내 두고 이불에 숨어들기 전에 상의를 먼저 머리에 씌우고, 네가 책장 앞에서 책을 만지작거릴 때 기저귀랑 바지를 재빨리 입히지. 실패하면 창문을 열어버려. 그러면 "엄마 추워요"라며 네가 먼저 옷을 입혀달라고 오거든.


그러다 오늘은 엄마가 한 방 먹었지 뭐야. 욕조에 물이 너무 많아지면 위험하니까 샤워기를 잠그고 나왔더니, 조금 있다가 네가 날 부르더라고. "엄마! 물 쪼끔만 나오게 해 주세요." 귀여운 손짓에 엄마는 결국 물을 쫄쫄 틀어줬는데, 넌 바로 "많이! 많이!"라고 외쳤지. 사실 넌 처음부터 물을 조금만 틀 생각이 없었던 거야. 엄마를 욕실 안으로 부르는 게 네 목적이었구나!


원몬아,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아주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싸움의 기술을 배우는 것인지도 몰라.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물리적인 싸움이 아니더라도 경쟁, 협상, 자신과의 싸움까지 크고 작은 다툼을 피할 수 없거든. 그래서 엄마는 싸움을 나쁜 것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해야 할 싸움을 피하는 게 나쁠 때도 있단다. 때로는 지더라도 싸워야 하고, 져도 쉽게 저서는 안될 때가 있어.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단다. 싸움에서 중요한 건 철저한 준비와 결단이란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 시도처럼 명분이 있더라도 준비가 부족하면 쉽게 물러나 상대의 기세를 키워줄 수 있어. 너와의 작은 다툼에서나, 세상을 흔드는 큰 사건에서나 싸움의 본질은 다르지 않아.


싸움을 만들라는 이야기가 아니야. 이유 없이 싸움을 만드는 것만큼 어리석고 비열한 일이 없다. 싸우지 않고 이기면 가장 좋고, 싸워야 할 때는 지혜롭게 선택해 용감히 임해. 너만의 방식대로 똑똑하고 매력적으로 이기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


엄마의 이런 바람을 쓰고 보니 아빠랑 다퉜을 때가 생각나서 조금 부끄럽네. 엄마도 더 현명하게 싸우는 법을 배울게. 너와 함께 조금씩 나아가는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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