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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김구난방

입춘(立春)

우리에게 따스한 햇살이 쏟아질 것이다

by 김이서

제법 긴 설 연휴가 끝났다. 묵직한 몸을 이끌고 일주일 넘게 쉬었던 운동을 하러 나섰다. 공동현관을 나서자마자 찬바람이 휘몰아친다. 바닥에 쌓인 눈이 채 녹지도 않았다. 입춘(立春), 봄이 시작된다는 뜻이지만, 정작 오늘은 한겨울처럼 춥다. '봄이 온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친다. 이쯤 되면 입춘은 기온이 변화하는 때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봄을 준비하는 시간 아닐까. 운동을 하려면 일단 헬스장에 가야 되는 것처럼.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옛사람들은 입춘이 되면 대문이나 문설주에 입춘축을 붙였다. 글씨를 쓸 줄 모르는 사람은 남에게 부탁하여 써붙였다고 한다. 봄을 맞아 따스한 볕이 들 듯, 한 해 좋은 일이 가득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땅이 아직 얼어붙어 있어도, 그 아래에서는 새싹이 움트고 있음을 믿었던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봄은 이미 땅속에서 서서히 일어서고 있다고.


삶도 그런 것 같다.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뚜렷한 성과가 없어 보이는 때에도,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차가운 계절을 지나야 만 꽃이 피는 것처럼, 고독한 시간들이 쌓여야 비로소 새로운 장이 열릴 수 있다.


그러니 오늘 같은 날은 춥다고 봄을 의심하지 말자. 올해의 첫 절기가 막 깨어나 아직은 겨울 같지만, 봄은 틀림없이 오고 있다. 강추위를 뚫고 한 걸음 내디딘 오전이 있기에, 오후의 햇살이 더 눈부시다. 새해 다짐과 멀어지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따스하게 스민다.


입춘축을 붙이던 마음처럼, 올해 소망을 되새겨 본다. 어느새 우뚝 일어선 봄을 마주하길.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따스한 햇살이 쏟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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