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한 때 그렇게 젊었다

동생과 6,000원씩 모아 케이크를 샀던 날

by 김이서

엊그제 어린 시절 아빠께 썼던 편지를 발견했다.


"아빠, 생신을 축하드려요. 동삼이와 제가 6,000원씩 모아서 케이크를 샀어요. 꽃은 화원이 문을 닫아 못 샀어요. 아빠 항상 건강하시고, 화목한 가정 만들어나가요. 사랑하는 아빠의 하나뿐인 딸이 39 번째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1996년 10월 9일. 어린 내가 쓴 짧은 문장 속에서 아빠는 젊었다.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다. 나는 동생과 함께 케이크를 사기 위해 6,000원을 모았고, 화원이 문을 닫아 꽃을 사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그땐 그것이 생일을 축하하는 데 있어 중요한 문제였던 것 같다.


39 번째 생신이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목이 콱 막혀왔다. 어느새 눈앞이 흐려졌다. 사실, 온종일 울컥했다. 아빠가 한때 지금의 나처럼 젊은 사람이었다는 걸, 나는 기억하면서도 어쩐지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자라는 동안, 아빠는 늙어버렸다는 사실이 내 눈물샘을 고장 낸 것 같았다.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흘러버린 걸까.


하루를 꼬박 생각해 보았다. 아빠가 나이 들어서 슬픈 것만은 아니었다. 마침 그날, 아빠의 전화가 감정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택배 왔지? 그거 손가락 관절에 발라라." 아빠는 보낸 약을 잘 받았는지, 손은 좀 어떤지 궁금했을 텐데, 정작 나는 그게 뭔 줄도 모르고 며칠을 그냥 두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어디가 아픈지도 잘 모르면서, 난 아빠의 보살핌을 숨 쉬듯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아픈 건 오히려 나이 든 아빠일 텐데. 아빠가 나를 키우느라 젊음을 내어주었는데, 나는 여전히 아빠에게 기대고 있는 것만 같아 미안했다. 아빠가 날 걱정하는 건 여전한데, 내가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아픈 데는 없어?'라고 물어본 게 언제였을까?


저녁 무렵 영상통화를 걸었다.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말은 차마 입 밖에 못 내고, 발견한 편지이야기를 해주었다. 동생과 6,000원씩 모아 케이크를 샀다는 이야기에 아빠는 순간 눈을 반짝였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 듯,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렸다. 엄마는 "아! 젊었다, 젊었어!" 하며 활짝 웃었지만, 아빠의 눈동자는 이내 깊어졌다. 기쁨에 그리움과 아쉬움이 덧칠해진 듯한 모습이었다.


늦지는 않았겠지. 이제라도 아빠를 조금 더 챙기면서 살아야겠다. 어릴 때의 내가 아빠에게 쓴 편지처럼, 지금의 나도 아빠에게 남겨본다. "아빠 항상 건강하세요. 그리고 이젠 조금 더 자주 연락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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