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을 입으면 설이 온다

25.01.18(토) 맑음

by 김이서

설날을 일주일 앞둔 오늘, 미리 일산에 다녀오기로 했단다. 연휴 중 아빠가 출근해야 해서 말이야. 우리 가족에게 설이 조금 일찍 찾아온 셈이지. 이른 아침부터 서랍장을 열고 곱게 접힌 한복을 꺼냈다. 알록달록 고운 옷을 담으며 채비를 하니, 설 연휴를 다 못 누려 속상한 마음도 온데간데없구나. 한복에는 늘 설렘이 있는 것 같아.


설날이면 일산에서는 한복을 입고 세배를 한단다. 어릴 때나 입던 한복을 결혼 후 매년 입게 될 줄은 몰랐어. 네 할아버지께서 한복을 사랑하셔서 자연스레 생긴 가풍이야. 엄마와 아빠의 한복도 결혼할 적에 할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거란다. 처음엔 조금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몇 년째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졌다.


일산에 도착해 한정식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전복에 한우에 진수성찬이었는데, 네가 회 빼고는 못 먹는 음식이 없어 귀여움을 받았단다. 식사 후에 네 할머니가 사주신 딸기 케이크를 들고 집으로 가 다과를 즐겼다. 설을 앞둔 달콤하고 따듯한 시간이 무르익을 무렵, 우린 한복으로 갈아입고 세배를 준비했지.


드디어 엄마와 맹연습(?)했던 세배를 선보일 시간이었어. 처음에는 방향도 헷갈려 엉뚱한 쪽을 보고 절을 하더니, 몇 번의 연습 끝에 제법 모양새를 갖추었지. 엄마와 아빠 가운데 서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인사말 끝에 이마에 양손을 올리고 넙죽 엎드리는 널 보고 네 할머니는 사진 찍기 바쁘셨단다. 너의 세배는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사랑스러운 몸짓, 귀여움의 향연이었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버님이 두루마기 안쪽에 한자로 이름이 적힌 것을 보여주셨어. "원래 아버지 것인데 둘째한테는 너무 크고, 막내한테는 작아서 내 옷이 됐지."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셨단다. 네 아빠 역시 처음 알게 된 사실이라 놀란 눈치였어. 부드럽고도 두터운 질감이 질 좋은 겨울 양복 같았단다. 세대를 거쳐 내려온 두루마기를 보며, 한복이 단순한 옷이 아니라 가족의 시간을 품은 귀한 유산임을 깨달았지.


가끔은 익숙한 문화 속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어릴 적 한복을 입으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워 어깨를 목에 붙여 올리고 상체를 쪼그린 채 우두커니 서있곤 했어.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릴 땐 마냥 불편했던 한복이, 이제는 그 옷을 입는 순간 설날이 왔음을 실감하게 해주는 특별한 옷이 되었어.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나서야 받아들인 문화는 이제 내 일부가 되었단다. 어머님이 매주시던 옷고름도 스스로 맬 줄 알게 되었고, 너와 함께하며 더욱 소중한 것이 되었다. 한복을 입고 세배를 올리며 말로 하기 어려운 감사와 존경을 몸으로 전할 수 있어 좋은 것 같아. 이 전통을 간직해 가며 또 다른 유산으로 남겨 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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