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26(일) 구름 조금
아빠는 잠이 많은 사람이다. 새벽 공기 속에서 깨어나는 것보다 포근한 이불속에 머무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 평생 일출을 본 적도, 볼 생각도 없었던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엄마를 만나고 연애를 하는 동안 딱 한 번, 함께 일출을 본 적이 있었다.
20대 시절 청량리에서 막차를 타고 정동진에 갔다. 밤 기차를 타고 정동진역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4시쯤 되었던 것 같아. 근처 카페에서 아빠에게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밤을 새웠지. 얼핏 들으면 잠 올 것 같은 주제인데, 생각보다 정말 흥미로웠어. 책이든, 논문이든 뭔가 재미있는 걸 읽고 나서 엄마한테 이야기해 주는 게 너희 아빠의 오랜 취미란다. 엄마는 그렇게 '인간 오디오북' 덕분에 잠들지 않고 해가 떠오르는 순간을 지켜볼 수 있었어.
엄마는 어릴 때부터 해돋이와 해넘이를 즐겼다. 특히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할 때마다 출근 전날 꼭 일출을 봤어. 아빠랑 다투고 기분이 엉망일 때에도, 여행을 한껏 즐기고 싶을 때도 해돋이를 보았지. 반면, 아빠는 그런 낭만을 좋아하지 않았단다. 함께 여행을 가더라도 일출을 보는 건 언제나 혼자였어. 가끔 떠오른 해를 한참 바라보는 내 모습을 호텔 방 안에서 지켜보거나 사진을 찍어주는 게 다였지. 그래서 그 한 번의 일출 이후, 다시는 함께 떠오르는 태양을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네가 태어나고, 매년 설과 추석마다 우리는 함께 일출을 맞이하게 되었다. 너를 품에 안은 순간부터, 우리의 시간은 달라졌어. 일출과는 거리가 멀던 아빠도 이제는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가족과 함께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게 되었다. 아직 어린 널 생각해 기차보다는 직접 운전하길 택해서였어.
올해도 어김없이 먼 길을 떠났다. 여수까지 가는 긴 여정을 고려해, 막히는 시간을 피하려다 보니 새벽에 출발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피곤한 눈을 비비며 떠나는 새벽, 아빠는 늘 무심히 일출을 맞이한다. 서울 출퇴근으로 단련된 운전 실력을 갖춘 엄마인데도 어둡거나 궂은 날은 꼭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나서지.
어쩌면 아빠에게 일출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해가 떠오를 때마다, 그는 자신의 피곤함을 뒤로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 운전대를 잡는다. 뜨거운 태양이 어둡고 고요한 새벽을 뚫고 떠오르는 것처럼, 아빠의 사랑도 그렇게 조용히, 하지만 변함없이 우리 곁에 머문다.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 맞이하는 순간. 해가 떠오르는 그 찰나의 빛처럼, 사랑도 그렇게 아빠의 하루 속에서 스며들고 있는 것 같구나.
깜깜한 새벽에 부산스럽게 짐을 챙기고 널 둘러업고 차에 탔는데, 고맙게도 곧 곯아떨어졌네. 새근새근 자는 네 얼굴에도 아침 햇살 한 줄기가 드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