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되려고 온 거 아니거든요
몇 년 전, 어느 대학교에서 구조개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학생 수가 급감하는 현실에서 대학이 살아남을 전략을 고민했고, 많은 교수님들을 인터뷰했다.
모두가 위기에 공감했고 그만큼 절실했지만, 법학과 교수님들은 좀 달랐다. 로스쿨 유치 실패 후유증인지, 본업이 변호사라 그런지 학과 존속에 회의적이었다.
"솔직히 학생들한테 뭘 할 수 있다고 말하기가 좀 그래요."
법학과를 졸업하고 법조인이 되지 않은 나였기에, 그의 말에 스민 무력감이 내 것처럼 아프게 느껴졌다. 주말밤낮 없는 시간이 흐르고, 3가지 개혁안이 나왔다.
교수님들과 한 차례 치열한 설득 과정이 끝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청회가 열렸다. 강당은 학생들로 가득찼지만, 분위기는 싸늘하고 무거웠다. 변화와 혁신은 필요하지만, 깎여 나가는 게 우리 학과일 순 없었다.
법학과는 폐지를 면했으나 정원이 크게 줄었다. 학교는 로스쿨 유치의 실패로 인해, 법학과의 미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을 반복했다. 긴 침묵이 수긍이라고 여겨질 무렵, 저 뒤편에서 한 학생이 참지 못하고 크게 소리쳤다.
"변호사 되려고 법학과 온 거 아니거든요!"
그 학생의 외침 앞에 누구도 선뜻 입을 떼지 못했다. 그녀가 법학과에 진학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얼마 전 교보문고 웹사이트에서 진행 중인 이벤트를 보았다. '법을 공부하는 마음'이라는 타이틀로 헌법, 법학일반, 생활법률 관련 책들이 큐레이션 되어있었다. '이게 장사가 되다니, 오호 통재라' 싶다가, 문득 그날의 외침이 머릿속을 울렸다.
법조인들이 법을 가장 지키지 않는 세상이라면, 법을 공부한 사람들이 법조계가 아닌 곳에 더 많아야 하지 않을까.
세상이 야만과 혼돈으로 되돌아갈 때, 돈도 안 되는 법을 공부한 사람들의 역할이 절실하지 않을까.
말이 안 되는 일이 일상이 되는 순간에도, 권리와 의무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날, 그 학생의 외침은 우리가 외면해온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는지 모른다. 법을 공부하는 진짜 이유는, 침묵이 가장 쉬운 순간에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