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떨고 있니?

25.02.07(금) 맑음

by 김이서

잠자기 전, 우리가 가장 가까워지는 시간이 찾아왔다. 함께 책을 읽으며 고요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 밤이 참 좋다. 포근한 이불속에서 우리 둘은 나란히 앉아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지켜보고 있었다.


"산봉우리에 있는 저 나무를 돌아서 다시 여기로 오는 거야. 자, 출발!"


그 순간, 몸이 아주 살짝 흔들렸다. 미세하지만 분명하게 바닥이 흔들렸다. 나는 곧바로 멈칫했다. 마치 낯선 장소의 공기를 살피는 것처럼 신경을 곤두세웠다.


‘갑자기... 지진이?’


몇 해 전에 울산에서 큰 지진을 겪은 기억이 떠올랐다. 익히 알고 있는 공포감이 스며들었다. 보고서를 쓰고 있는데, 느닷없이 바닥이 좌우로 요동친 그날.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대책 없이 흔들렸던 그 순간으로 빨려 들어간 듯했다. 허둥지둥 공터로 뛰쳐나왔지만 불안을 가눌 길이 없던 그 순간은 내 안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두려움을 아이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는 내 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엄마, 계속 읽어주세요.”


그 한 마디가 내 숨을 고르게 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저 이야기를 이어 달라는 평온한 얼굴. 나는 두려움을 내려두고 너에게 돌아왔다. 잠시 널 바라보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다시 책장을 넘겼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에게 나는 '세상'일지도 모른다고. 지금 이 방 안에서, 내가 숨을 고르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게 곧 '괜찮다'는 신호가 되는 거구나.


세상이 흔들려도, 아이는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곁에 있었기 때문에. 아이는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 믿음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무서움보다 더 큰 것, 바로 아이의 신뢰였다.


돌이켜보면 그때도 그랬다. 그곳에서 오래 일하던 분들이 "괜찮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허허 웃으며 일상을 이어가던 모습. 논리로 설명되지 않았지만,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일 하는 그들을 보며 안심했다.


나는 한 문장 한 문장을 꼭꼭 씹어 읽어나갔다. 여느 때처럼 책을 읽으면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두려운 마음을 밀어내듯, 더 정성껏 이야기를 이어갔다. 목은 바짝 마르고, 다리는 바들바들 떨렸지만 경주를 멈추지 않고 엉금엉금 나아가는 거북이처럼.


그리고 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난 널 지켜내는 사람이야.' '세상이 흔들릴 때, 네가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이야."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10분 남짓한 이 밤, 또 하나의 다짐과 깊은 기억이 남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 작은 존재가 나에게 이토록 큰 용기를 건네고 있다는 사실을.


"이 밤을 버틴 건 나였지만, 나를 붙잡은 건 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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