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식빵 물고 현장을 뛰어다니는 건축가가 될 거야

현장에는 먼지가 많아서 식빵을 먹을 수 없단다 얘야.

by 곰민정



건축학과는 조금 특별하다.

사람들은 경영학과에 진학한 사람에게

어쩌다 그 학과를 선택했냐고 물을 때보다

건축학과 학생에게 같은 질문을 던질 때

더 초롱초롱한 눈으로 특별한 답을 기대한다.


그 기대에 부응해 보려고 이런저런 답변들을 짜 맞춰 보기도 했다.


• 어렸을 때 레고를 좋아했다.

엄마 아빠의 보금자리는 레고 공장 근처였는데,

공장에서는 비싼 레고 세트 (ex. 해리포터 마법의 성)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 레고 조각들을 쓰레받기로 쓸어 싸게 팔았단다.

그걸 가지고 놀았던 나는 자연스럽게 설명서를 따라 하는 레고가 아니라

내 맘대로 분해하고 해체하고 설계하는 레고 놀이를 했는데,

그게 내가 건축과에 가게 된 실마리일지도 모르겠다.


• <신동엽의 러브하우스>가 너무 감동적이었다.

건축학과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절대다수가 이 이야기를 쓴다.

요즘 건축과에 가는 아이들은 무얼 보고 갔는지 궁금하다.


• <내 머릿속의 지우개>의 정우성이 너무 멋있었다.

하여튼간 미디어가 문제다.

미디어에는 멋있는 건축가들이 너무 많이 나온다.

그 당시 친구들이 '이거 마시면 나랑 사귀는 거다?' 이야기할 때

나는 현장에서 목수 연필 들고 먹 튀기는 정우성이 되고 싶었다.

왜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치만 어느 하나도 '아하!'싶게 건축과 진학을 설명하지 못했다.

훗날 그 시절을 뒤돌아보니 쑥스러운 몇 가지 굵직한 이유들이 보였다.


1) 특이한 걸 하고 싶었다.

그 시절 나는 좀 관종이었던 것 같다.

4차원이란 소리를 자주 들었는데, 꽤 즐겼던 것 같다.

수업시간에 벌칙으로 노래를 불러야 할 때도,

내가 아는 가장 특이한 노래를 부르곤 했다.

이글 파이브 - 오징어 외계인...

그 사건으로 아직도 내 친구들은

나에게 저 노래를 시킨다...


2) 어른들한테 반항하고 싶었다.

딱히 어른들에게 티 나는 '사춘기'적인 행동을 하진 않는

조용하고 성실한 모범생 타입의 학생이었지만,

마음속에는 은근한 분노 혹은 반항기가 있었다.

건축과에 진학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우리 부모님을 제외한(엄마는 심지어 좋아했다. 멋있다고.)

거의 모든 어른들은 같은 이야기를 했다.

'거기 맨날 밤새고 박봉이래. 여자가 하기 힘든 일이다.'

나는 항상 그 이야기를 여유롭게 웃으며 귓등으로 흘려 들었다.

그 정도 역경(?)은 내가 가뿐히 이긴다고.

훗날 이 시절의 내 머리채를 잡고 싶어 질 때가 종종 있었다.


3)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바쁜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언제 어디서 뭘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건축가라는 직업이 제 때 밥 챙겨 먹기 어려운

바쁜 직업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하. 지금은 안 바쁜 사람이 장래희망이다.



그 당시 나는 점수 맞춰서 대학에 가는 게

정말 바보 같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조금 더 바보 같기도 하다.


여튼 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나는 진짜 건축가에 대해서는 아는 거 코딱지만큼도 없이,

필기 노트 한 켠에 말도 안 되는 사과모양 집 도면을 그려가며,

건축학과에 대한 꿈을 쑥쑥 키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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