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민정 Jun 23. 2023

나다운 건 어떤 걸까?

2023년 6월 23일 금요일 곰민정 작업일지




고등학교 때, 공부가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산책하듯 도서관에 갔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게으름 예찬', '느림의 미학'. '느림', '게으름'만 보면 책을 빌려 나왔다. 엄마는 날 보고 안 그래도 느린데 어쩌자고 저런 책을 자꾸 읽냐고, 느린 걸 정당화하지 말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사실 빌리고 보면 다 글이 너무 많아서 읽은 책이 없지만, 표지만 보고 있어도 흐뭇한 마음이 들었더랬다. 


편안함이 좋아서 실내건축학과를 갔다.

나는 내 몸의 편안함을 정말 정말 좋아한다. 폭 감싸듯 편안한 구석 소파, 보들보들한 촉감의 옷, 뜨끈뜨끈한 온돌 바닥. 가끔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집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좋은 공간을 만들어서 거기 내가 쏙 들어가야지 하는 마음이 훨씬 더 컸다. 


지향은 결핍과 닿아있다. 

예민하고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느림, 편안함을 좋아하는 건 내가 예민하고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라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눈치를 보느라, 예민하느라 에너지를 많이 쓴 나는 느리고 편안하고 게으르게 지렁이 같이 살고 싶다. 






한지에 그림을 그리면 기분이 좋다. 

번짐은 도무지 내가 원하는 방향 대로 되지 않는다. 아무리 내가 예민하게 곤두서있어도 어이없는 방향으로 번져나가기 일쑤다. 그래서 한지에 작업을 하면 그냥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마음 놓고, 내 눈이 담은, 내 마음이 담은 것들을 한지 위에 올려본다. 


한지랑 있다 보면 조금은 지렁이가 되는 기분이다. 




사과, 곰민정, 2023
기린은 사과가 먹고 싶어, 곰민정, 2023
토끼는 귀가 큰 쥐일까?, 곰민정, 2023
콩알눈 토끼, 곰민정, 2023
기지개 켜는 고양이, 곰민정, 2023
고양이는 당신을 보고 있다, 항상, 곰민정, 2023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 내가 그린 것을 기록하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